강온작전으로 왜인들을 귀화시키다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세종대왕은 세종 8년(1426) 삼포개항을 단행했다. 세종 원년 대마도 정벌 이후 대마도주 소 사다모리(宗貞盛)의 요청에 따라 기존에 개방했던 웅천(진해)의 내이포, 부산포 이외에 울산의 염포를 추가로 개방해 일본인에게 교역을 허락한 일이 있다. 이른바 유화책으로 삼포개항을 한 것이다.
계해조약에 따르면 포구마다 왜관을 설치, 왜인에 대한 무역을 관할하고 또 그들의 접대장소로 삼았다.
하지만 3포에는 왜인이 왕래할 수 있어도 상주할 수 없었고, 왜인은 무역·어로가 끝나면 귀국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 법규를 어기고 3포에 상주하는 왜인이 날로 증가, 세종 말년 부산포에 약 350명, 내이포에 약 1500명, 염포에 120명이 상주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에 조정은 대마도주에게 여러 차례 상주 왜인의 귀환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훗날 삼포왜란을 일으킨 원인이 바로 왜인들의 상주였다. 물론 삼포왜란의 주원인이 왜인들의 상주였지만 그만큼 조선은 왜인에게도 개방적인 나라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흔히 조선은 폐쇄적인 나라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 어느 나라와도 무역을 할만큼 개방적인 나라였다. 다만 조선말 들어서 쇄국정책으로 인해 폐쇄적인 나라로 인식이 될 뿐이었다.
삼포개항은 세종대왕의 국제적 안목과 왜인도 감싸안은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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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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