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다문화 이혼사례

▲ 사진출처=픽사베이

翩翩黃鳥(편편황조)

雌雄相依(자웅상의)

念我之獨(염아지독)

誰其與歸(수기여귀)

펄펄 나는 꾀꼬리는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운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까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학교생활을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시(詩)’다.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이 지었다는 시가이다. 원가는 전해지지 않았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조에 4언 4구의 한역시와 창작동기가 전해질 뿐이다.

유리왕에게는 왕비 송씨가 있었다. 또한 하희(禾姬)와 치희(雉姬)라는 계실(繼室)이 있었다. 두 여자가 사랑을 다투어 서로 화목하지 않자, 왕은 동서에 두 궁을 짓고 각기 살게 했다.

그런데 화희는 골천 사람이었고, 치희는 한인(漢人) 즉 중국사람이었다. 왕은 기산으로 사냥을 나가서 7일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두 여자가 서로 다투게 됐다.

그 과정에서 화희가 치희에게 “너는 한가(漢家)의 비첩(婢妾)일 뿐인데, 무례함이 어찌 이리 심한가”라고 꾸짖자 치희가 부끄러워 원한을 품고 도망쳤다. 이에 왕이 말을 달려 쫓아 갔으나, 치희는 노해 돌아오지 않았다.

유리왕은 궁으로 돌아가는 도중 나무 밑에 쉬면서 꾀꼬리가 날아 모이는 것을 보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황조가를 지었다고 한다.

‘삼국사기; 기록을 그대로 믿고 한역가의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화희와 치희의 싸움은 그야말로 다문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리왕은 다문화의 충돌이 실패를 한 것이다.

어쩌면 황조가는 우리나라 다문화의 첫 번째 이혼 사례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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