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한 중국 황제, 고구려가 융성할 수 있었던 이유

▲ 사진출처= KBS 역사저널 그날 캡쳐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황제의 망명은 일개 백성의 망명과는 다르다. 그 세력이 이주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구려 시대 중국에서 고구려로 넘어온 황제가 있었다. 바로 풍홍.

고구려 장수왕 때 북연(北燕)의 황제 풍홍이 고구려에 망명을 요청한 사건이 발생했다.

고구려와 북위(北魏) 사이에 위치해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북연은 북위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결국 고구려에 망명을 요청했다.

북위 역시 436년 고구려에 북연을 침공하겠다는 사실을 알려오는데 강대국 북위와 우호관계인 북연 사이에서 고구려는 한쪽을 선택밖에 없었다.

장수왕은 결국 풍홍의 망명을 수락한다. 장수왕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따져서 풍홍을 받아들인 것이다.

한때는 중국의 화북지방을 장악하던 전연과 후연을 이은 북연이다. 장수왕으로서는 풍홍을 받아들이면 고구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풍홍은 북연의 황제이다. 즉, 한 사람이 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세력이 망명하는 것이다.

장수왕은 풍홍의 망명을 받아들였고, 풍홍을 북연의 수도 용성에서 고구려로 망명을 하면서 주민들을 동쪽나라인 고구려로 이주하도록 했다. 그 행렬의 길이가 80리에 이어졌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했다.

즉, 풍홍이 단순히 혼자만 망명을 한 것이 아니라 세력이 망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행렬이 5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5만명은 일개 국가의 국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북연의 국민 상당수가 고구려로 넘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이후 상황이 변화했다. 풍홍은 장수왕이 자신을 황제라 부르지 않고 풍군으로 부르며 황제로 대접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또한 고구려 안에서 황제처럼 행세를 했다.

이에 장수왕은 풍홍 태자를 볼모로 삼고 강력 대응하자 풍홍은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재망명을 요청했다.

풍홍은 고구려의 지원을 받아 북연을 되찾을 생각이었지만 장수왕은 북위가 동쪽으로 진출하지 않는 한 북위와 맞설 이유가 없다.

이에 풍홍은 나라를 되찾을 길이 없어졌고, 또한 장수왕이 자신을 신하처럼 취급하고 있다고 판단해서 결국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풍홍이 송나라로 재망명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장수왕은 결국 풍홍을 제거했다. 풍홍과 그의 군사들은 장수왕에 의해 제거됐지만 그의 백성은 고구려에 남아서 고구려의 뿌리가 됐다.

황제 한 사람의 망명은 그의 백성들도 망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구려로서는 상당히 도움이 된다.

즉, 고구려는 북연 사람을 받아들임으로써 보다 융성한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됐다.

광개토대왕에 이어 장수왕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문자명왕이 고구려의 가장 큰 제국이 된 것도 이처럼 장수왕이 다른 나라 사람들을 과감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다문화가 필요한 이유를 고구려 장수왕의 풍홍 망명 사건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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