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3호분의 주인공은 누구?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북한의 황해도 안악군 용순면 유순리에는 무덤이 하나 있다. 바로 안악3호분이다. 이 무덤은 고구려 당시 만들어진 무덤이다.

그런데 이 무덤은 발굴된 지 50여 년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

높이가 6미터에 달하고 길이가 무려 33미터에 이르는 이 안악3호분의 주인공이 누구냐는 것이다.

이 안악3호분의 주인공을 놓고 역사학계의 논쟁이 뜨겁다. 1949년 발굴할 당시에도 벽화들이 많았다는 것에 한 번 놀라고, 두 번째로는 그 선명성에 더 놀랐다.

아궁이를 갖춘 고구려식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여인의 모습, 부엌 옆에는 고기를 저장하는 창고, 외양간, 우물 등 집구조가 상세히 묘사됐다.

그리고 역사학자들이 가장 놀란 부분이 바로 연호였다. ‘영화 13년’이라는 연호가 적혀 있다. 이는 서기 357년. 고구려 벽화로서는 연호가 적혀 있다는 것은 이 무덤의 제작시기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동수’라는 사람이 지낸 관직에 대해 열거하고 있다. 평동장군을 비롯해 여러 지방의 태수를 지낸 인물이다.

동수의 출신을 밝히고 있는 3번째 구절에서 동수는 고구려사람이 아니라 요동출신의 중국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이 묵서명은 주인공이 있는 방 입구를 지키는 장하독이라는 관직을 가진 인물의 머리위에 써 있었다 .

이 묵서명이 과연 묘지명인지 여부는 지금까지도 논쟁이 되고 있다. 묵서명에 나타난 동수라는 인물은 4세기초 고구려는 활발한 대외정책을 펼치면서 요동진출을 꾀하고 있었을 때의 인물 중 하나다.

고구려는 선비족 모용씨가 세운 전연과 치열하게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당시 전연은 치열한 왕위쟁탈전이 벌어졌고, 이를 계기로 무리들이 고구려로 망명을 한다.

고구려 역시 적대국인 선비족의 망명객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상황에서 동수가 고구려로 망명을 했다고 ‘자치통감’은 자세히 적고 있다.

문제는 자치통감에 나오는 동수와 안악3호분의 동수는 동일인물이냐는 것이다. 역사학계는 안악3호분의 구조가 중국식과 유사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중국 한나라 영향을 받은 전통적인 중국양식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안악3호분의 중인공이 동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북학 학자들은 무덤의 주인공은 동수가 아니라 고구려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묵서명의 위치가 묘지명으로 보기에는 석연찮다는 것이다. 묵서명이 주인공의 묘지명이라면 무덤의 가장 반듯한 공간에 격식을 갖춰서 쓰는 것이 상식인데 문밖에 장하독이라는 인물의 머리 위에 썼다는 점이다.

또한 황해도 즉 고구려 중심에 중국 사람의 무덤이 크게 건축이 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왕의 무덤 규모라는 것이다. 때문에 중국인 동수가 아니라 ‘고구려왕’의 무덤이 아니겠냐라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안악3호분 위치가 황해도라는 점을 주목한다면 고구려 미천왕이 점령한 지역이 점령한 지역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천왕의 무덤이 아니겠냐라는 추론을 하고 있다.

어쨌든 안악3호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아직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구려의 대외정책 특히 이민자 정책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고구려는 ‘한핏줄’로 이뤄진 국가가 아니라 ‘다문화’ 국가라는 것을 안악3호분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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