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외국인 승려

▲ 사진출처=픽사베이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순도(順道)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고구려로 건너온 승려이다.

소수림왕 2년(372년 6월) 진(晉)나라 왕 부견(符堅)이 순도를 시켜 불상과 불경을 고구려에 전했다고 기록돼있다. 이에 소수림왕은 부견에게 사신을 보내 감사의 뜻을 표하고 순도로 하여금 왕자를 가르치게 했다.

순도가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느 나라를 거쳐 언제 고구려에 들어왔는지 기록은 모호하다. 때문에 부견의 명에 의해 고구려로 왔다는 기록이 있고, 부견의 사신에 합류해서 함께 고구려로 들어왔다는 기록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 본토 사람이 아닌 호승(胡僧)인 것만은 확실시되고 있다.

고구려에 왔을 때 모든 군신들이 예를 갖춰 정중하게 성문(省門)이라는 곳으로 영접했다. 거처하고 있었던 절은 375년에 창건한 성문사(省門寺)이며, 뒤에 흥국사(興國寺)라고 이름을 바꿨다.

순도가 고구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승려이다. 단순히 고구려에 불교를 전파했다는 역할 때문이 아니다.

순도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해준 것으로 인해 고구려는 새로운 나라로 우뚝 설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소수림왕의 전왕은 고국원왕이다. 고국원왕은 백제의 팽창에 긴장을 했다. 이에 백제 근초고왕과 더불어 한강 유역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결국 패배를 하면서 전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고구려의 국력은 급속도로 쇠약해졌다. 아울러 5부족 연맹체인 고구려이기 때문에 각 부족을 하나로 통합해서 중앙집권체제로 전환을 시켜야 할 숙제를 안고 있었다.

소수림왕은 불교를 통해 쇠락한 고구려의 국력을 다시 되찾으려고 했다. 아울러 중앙집권체제로 전환을 시키려고 했다.

순도는 그 역할을 한 셈이다. 소수림왕 이후 광개토대왕이 만주 벌판을 재패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 바로 순도 승려의 역할이다.

쓰러져 가는 고구려에게 순도는 혁혁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비록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못했지만 분열된 5부족을 하나로 묶어내서 광대한 영토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로 인한 민족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든 발판을 마련한 사람이 바로 ‘순도’ 승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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