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주의·속인주의, 그 법률적 해석은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고려시대 정종 때 여진족 추장 살해사건이 발생했다. 여진족 추장 고도화(高刀化)는 문종말년에 15부락을 이끌고 고려 군현으로 편입했다.

고려 중기에는 많은 여진부락들이 고려에 귀부를 요청했다. 이에 고려는 부락의 우두머리에게 도령(都領)이란 직위를 내리고 부락민을 통솔하게 했다.

고려 정종 4년(1038년) 부락 내부에서 도령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위주(威州)·계주(鷄州)에 사는 여진족 구둔(仇屯)과 고도화(高刀化)가 도령장군(都領將軍) 개로(開老)와 재물 문제로 다투다가 그가 술 취한 틈을 타서 때려죽이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를 재상들로 하여금 사건의 처리를 의논케 했다. 이에 시중(侍中) 서눌(徐訥) 등 여섯 명은 비록 여진이 이민족이지만 이미 귀화했고 이름이 호적에 실려 평민과 같이 편성돼 있기 때문에 분명히 나라(고려)의 법을 따라야 한다면서 고려의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는 이들이 귀화를 해서 우리나라(고려)의 번방이 됐지만 인면수심이어서 우리의 풍속과 교화에 동화되지 못했으니 형벌을 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려 법률 조문에 ‘모든 귀화 외국인 가운데 같은 종족끼리 서로 범죄를 저지른 자는 각각 그 본디의 관습과 법에 따른다’고 돼 있기 때문에 여진족들 풍습대로 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왕은 여진족들의 풍습대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 따랐다. 고려사열전 ‘황주량’ 편에 나온 이야기다.

여진족의 귀화를 놓고 이른바 ‘속인주의’냐 ‘속지주의’냐를 놓고 고려 조정이 의견이 분분한 것이다.

‘속지주의’는 법의 적용 범위에 관한 입법주의 하나로 자국 영역 내에 위치하게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즉, 형법에서는 국내에서 행해진 범죄에 대해서는 행위자의 국적을 불문하고 자국의 형법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고려 조정 일부 대신들은 이미 여진족이 고려로 귀부를 했기 때문에 이들을 속지주의적 관점에서 고려법에 따라 처벌을 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일부 대신들은 여진족이 고려에 귀부를 해왔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진족이기 때문에 여진족만의 법률로 처벌을 해야 한다면서 ‘속인주의’를 채택했다.

고려 조정에서 골머리를 앓았던 그 ‘속지주의’ ‘속인주의’ 원칙은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는 점차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속지주의’와 ‘속인주의’ 사이에서 더욱 더 깊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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