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보니 살아지더라

▲ 제주도에 표류된 서양인의 이야기를 다룬 MBC 드라마 '탐나는 도다'의 포스터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박연은 조선에 최초로 정착한 서양인이다. 본명은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Jan Jansz Weltevree)이다.

박연의 고향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북부지방에 있는 드 레이프 지방에서 태어났다. 1626년 뱃사공으로 홀란디아(Holandia)호에 승무하다가 일본에 가려고 1627년에 아우버르케르크(Ouwerkerck)호로 바꿔 타고 항해하던 중 제주도에 표착했다.

동료 헤이스베르츠(Direk Gijsbertz) 및 페르베스트(Jan pierteree Verbaest)와 함께 땔감과 음료수를 구하러 제주도에 상륙했다가 관헌에게 붙잡혀 한양에 호송되고 훈련도감에서 근무했다.

훈련대장 구인후의 지휘를 받아 항복해 온 일본인과 포로가 된 처나라 군인을 통솔 감시했다.

또한 명나라에서 수입한 홍이포(紅夷砲)의 제작법·조종법을 지도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세 사람은 모두 출전하여 박연을 제외한 두 사람은 전사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인조실록 49권, 인조 26년(1648년) 8월 25일 정사 2번째기사를 살펴보면 ‘정시를 설행하여 문과에 9인, 무과에 94인을 뽑다’라는 기록에는 문과에 이정기 등 9인을, 무과에 박연 등 94인을 뽑았다고 돼있다.

‘증보문헌비고’의 ‘본조등과총목’에도 박연이 장원으로 급제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박연은 벨테브레이로 여겨진다.

조선 여성과 결혼해 1남 1녀를 낳았다. ‘하멜 표류기’에 따르면 1653년(효종 4년) 헨드릭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이르렀을 때 파견돼 하멜 등을 서울에 호송하고 하멜이 도감군오에 소송되자 이를 감독하는 한편 한국의 풍속을 가르쳐 주고 통역을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박연은 이미 조선에 머문지 오래됐기 때문에 처음에는 네덜란드어로 소통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리고 하멜에게 박연은 “살다 보니 살아지게 되더라”라는 얘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박연 역시 고향을 그리웠던지 하멜 일행을 처음 만난 후 숙소에 돌아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는 조선 최초로 정착한 서양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조선에서 정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은 박연이 하멜을 처음 만난 날 숙소에 돌아와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다. 그래도 그가 남긴 말이 있다. “살다 보니 살아지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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