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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돋보기] 삼판서고택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삼판서 고택은 고려말부터 조선초까지 세분의 판서가 연이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택의 첫 주인은 고려 공민왕 때 형부상서(조선시대 형조판서에 해당)를 지낸 정운경(1305~1366)으로 정운경은 사위인 공조판서 황유정(1343~?)에게, 황유정은 다시 외손자인 이조판사 김담(1416~1464)에게 물려줬는데 이때부터 김판서의 후손들이 살았다.

이 고택에서는 세 사람의 판서를 비롯해 조선개국 일등공신인 정도전, 사헌부 지평 황전, 집현전 교리 김증 등 수많은 학자와 명신들을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경향각지의 많은 선비들과 교류한 조선시대 명문가로서 명성이 높았다.

삼판서 고택은 구성공원 남쪽(현 영주동 431번지)에서 영주선비의 표상으로 수백년을 이어져 오다가 1961년 대홍수로 기울어지고 수년 후 철거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영주시민들의 뜻이 모여져 2008년 10월 서천이 내려다보이는 구학공원에 복원돼 선비의 고장 영주를 상징하는 명소로 자리잡게 됐다.

한편, 삼판서 고택 옆에는 제민루가 있다. 제민루는 태소백산에서 자생한 진귀한 약재를 저장하고, 위로는 태의에 공납하고 아래로는 백성의 질병을 치료하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것으로 오늘날 보건소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아울러 선비들이 모여 시가를 읊기도 했다.

제민루는 고려 공민왕 20년(1371)에 하륜이 군수로 부임해 학교를 세우고, 누각 5칸을 세웠던 것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건물이 무너지자 조선 태종 18년(1418)에 군수 이윤상이 다시 의원 3칸을 짓고, 세종 15년(1433)에 군수 반저가 하륜의 뜻을 이어 옛터에 동재 6칸, 남루 5칸을 지으니 그 장엄함과 화려함이 견줄 데 없었다고 전해진다.

아울러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가재건회의의장 시절인 1962년 3월 30일 기념식수를 한 표석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어기선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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