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이자장사·대규모 횡령·횡재세 논란…신뢰 잃어가는 금융권
보험, 새 국제회계기준 도입으로 불확실성 증가…‘실적 풍선’ 비판
증권, 연이은 주가조작 사건…수장 대거 교체, 리스크 관리 화두
카드, 고금리 기조에 조달비용·연체율 증가로 실적 전반적 부진

[편집자 주] 어느덧 ‘검은 토끼의 해’인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저물어 간다. 전 세계적으로 경영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업들마다 복합위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방안을 만들어내고자 동분서주했던 한해였다. <뉴스워치>는 올해를 마무리하며 10개 산업 분야를 결산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시중 4대 은행 ATM. 사진=연합뉴스
시중 4대 은행 ATM.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최양수 기자] 2023년 은행·보험·증권·카드 등 금융업계를 살펴보면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이 어울렸던 한 해로 보여진다. 각 업계에서는 생존의 기반인 이익률이 높아진 반면 서민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정부 당국이 금융권 전반에 ‘상생금융’(相生金融)을 강조하고 나섰다.

은행업계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약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이자수익 증가에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지만 각종 논란으로 얼룩진 한 해가 됐다. 올해 은행권은 고금리로 역대급 이익을 올려 호실적을 보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통해 공시된 전자 자료에 따르면 1~3분기 국내은행이 거둬들인 당기순이익 규모는 19조5000억원으로, 전년(14조1000억원) 대비 38.2%(5조5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 기간 이자이익만 44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8.9% 늘어 역대 최대 기록을 다시 썼다.

하지만 금리 상승기에 높은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 차이)로 손쉽게 이익을 누린 은행들은 성과급·퇴직금 등 ‘돈 잔치’를 벌인다는 비판과 함께 사회적 책임, 고통분담 요구가 거세지면서 금융당국이 횡재세(windfall tax/금융소비자보호법·부담금관리기본법)까지 언급하며 논란이 커지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국무회의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전했다. 소상공인의 말을 전달한 형식을 취했지만 은행권이 높은 이자수익을 거두고 있다며 간접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회삿돈 횡령 사진합성·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회삿돈 횡령 사진합성·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여기에다 시중은행, 지방은행 가릴 거 없이 직원들의 일탈과 도덕적 해이로 인한 대형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금융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신뢰’에 치명상을 입게 됐다.

특히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700억원대 역대급 횡령 사건이 발생한데 이어 올해는 BNK경남은행에서 3000억원대 횡령 혐의가 드러나면서 최근 2년간 횡령금액 규모가 급격히 증가했다.

KB국민은행에서는 직원들이 고객사의 미공개정보를 활용한 주식거래 등으로 127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어 DGB대구은행 직원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고객 동의 없이 증권계좌 1662개를 몰래 개설한 정황도 드러났다.

또 은행 말을 믿고 가입한 홍콩H지수 연계 ELS(Equity Linked Security·주가연계증권) 대규모 손실 예상에 불완전판매 논란도 은행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와 함께 연말 대형 악재까지 터지게 됐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Workout·기업구조 재무개선 작업)을 신청하며 건설업계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Project Financing) 문제가 전 금융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은행권은 2금융권에서 먼저 일어나고 있는 PF 대출 부실 문제가 금융권과 부동산업계에 뇌관이 돼 전이되지 않도록 사력을 다해야 할 상황이다. 

보험사 순이익 증가 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보험사 순이익 증가 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보험업계는 올해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이 이슈가 됐다. 세계적으로 통일된 회계기준의 필요성으로 제정된 IFRS17은 국내 경기침체와 고물가 고금리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올해 보험업계에 역대급 실적을 안겼다.

IFRS17은 보험사의 수익과 비용 인식을 보험료 수취 당시 원가 기준이 아닌 서비스 제공 시점으로 하는 제도로 보험 부채를 시가가 아닌 원가로 평가하면서 그동안 보험사들이 진행해온 회계법이 아닌 새로운 계산법을 적용했다.

이로 인해 역대급 순익을 기록했지만 IFRS17로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실적 풍선’이란 비판을 받게 됐으며 금융당국은 실적 착시효과를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게 됐다.

또 생명·손해보험협회장이 3년 만에 교체되면서 각 수장은 취임사를 통해 업계의 문제점을 되짚고 상생금융 방안을 내놨다.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투자컨설팅업체 H사 라덕연 대표. 사진=연합뉴스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투자컨설팅업체 H사 라덕연 대표. 사진=연합뉴스

증권업계도 신뢰성 회복이 과제로 떠넘겨진 한 해가 됐다. 코로나19(COVID-19) 사태가 엔데믹(endemic·감염병의 풍토병화)으로 전환되면서 증시 활성화를 기대했지만 전례없는 대규모 불공정거래 의혹 및 연이은 주가조작 사건으로 금융당국의 칼끝이 증권사를 향했다.

상반기에는 카카오의 시세조종 의혹과 ‘라덕연 사태’가 있었고 하반기에는 ‘영풍제지’ 시세조정 사건이 들어났다.

대형 엔터사를 인수하기 위한 하이브와 카카오 간 ‘쩐의 전쟁’은 사태 초기부터 시세조종 의혹을 제기했고 금융감독원이 지난 10월 카카오 경영진의 혐의를 파악해 검찰에 넘겼다. 행동주의펀드의 SM엔터테인먼트 지배구조 개선 촉구 운동이 거대 IT(Information Technology·정보기술) 기업의 불공정거래로 귀결되면서 금융투자업계에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지난 4월 발생한 ‘라덕연 사태’는 주가조작 세력이 다수의 종목에 대해 최소 2년 이상 장기간 시세조종을 일삼은 유례 없는 사건이었다. 보통의 주가조작 사건은 범죄행위가 발생하고 1∼2년 뒤 사후적으로 발각되는 범죄이지만 ‘라덕연 사태’는 동시다발 하한가 현상으로 전 국민에 실시간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10월에는 유가증권시장 상장 종목인 영풍제지가 갑작스럽게 하한가로 급락하며 시세조종 혐의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주가조작 세력이 키움증권의 미수거래를 이용했던 것으로 파악되면서 증권사 리스크(RISK·위험) 관리 능력 미흡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고, 결국 황현순 키움증권 사장이 4000억원대 미수금을 떠맡게 된 데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했다.

이로 인해 각 증권사마다 리스크 관리가 화두로 떠올랐고 최고경영책임자(CEO·Chief Executive Officer)의 사태가 줄을 잇기도 했다. 결국 수장이 대거 바뀌면서 다른 때보다 CEO 세대 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게 됐다.

금융 당국이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 전면 금지’ 방침을 밝혀 논란이 확대되기도 했다. 공매도는 기본적으로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외인과 기관 등 덩치 큰 투자자들이  활용하지만 향후 주가가 오를 것으로 보고 개별 기업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기법 자체가 오히려 주가 하락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공매도는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투자자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금융당국도 공매도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만이 쏟아지면 한시적 금지를 단행하면서 투자자들을 달래 왔다. 다만 금지 기간이 끝나면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오면서 악순환이 반복됐다. 공매도를 반대하는 투자자들이 이를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부른 이유이다.

결국 공매도 제도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며 이 문제 역시 내년으로 해를 넘긴 숙제가 됐다.

각종 신용카드. 사진=연합뉴스
각종 신용카드. 사진=연합뉴스

카드업계는 금리 기조에 조달비용·연체율 증가로 실적이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양새다. 여신전문금융회사채권(여전채) 금리 상승에 따른 실적 부진, 연체율 상승 등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퍼팩트스톰(Perfect Storm)’ 복합위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제 여건은 지속적으로 악화돼 갔다. 결국 올해 초부터 이어지고 있는 국내 카드업계의 위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자영업 업황이 부진한 결과를 보였으며 다시 카드사의 결제수익성 위축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거시적으로 가계부채가 누증되고 있는 현실은 결제수익성 위축과 자산건전성 악화에 다시 악영향의 고리를 만들어 악재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카드사 입장에서는 가맹점수수료를 올릴 여력이 없다. 가맹점수수료 경우 재산정 때마다 난제로 여겨지고 있는데 실제 수익성을 올릴 만한 한계가 명확하다는 게 업권의 중론이다.

애플페이를 도입한 현대카드를 비롯해 다양한 간편결제와 제휴 확대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지만 수익성 확대에 새로운 물꼬를 틀 것인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올해 은행·보험·증권·카드 업계는 많은 숙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내년으로 넘기게 됐으며 이를 발빠르게 해결하지 않으면 전방위적인 압박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최양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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