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 실적 급락세…삼성전자·SK하이닉스, 분기마다 수조원씩 적자
최태원 회장 “반도체 경기 자체는 지금 락바텀을 벗어나고 있다” 진단해
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 구축, 실적 부진 속 시설투자 단행, HBM 제품 개발

[편집자 주] 어느덧 ‘검은 토끼의 해’인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보름 정도 남겨뒀다. 올해 전세계적으로 경영 환경이 좋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기업들마다 복합위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방안을 만들어내고자 동분서주했던 한해로 기록에 남을 듯하다. <뉴스워치>에서는 올해를 마무리하며 10개 산업을 분야를 살펴보는 연말결산 시간을 마련해봤다.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현장.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현장. 사진=SK하이닉스

[뉴스워치= 최양수 기자] 지난해 ‘역대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일만큼 호황기를 맞았던 반도체 업계가 올해는 실적이 급락세로 돌아서며 ‘역대 최악’이라는 수식어로 돌변한 모습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1분기 4조5800억원, 2분기 4조3600억원, 3분기 3조7500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SK하이닉스는 1분기 3조4023억원, 2분기 2조8821억원, 3분기 1조792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1~3분기 반도체 부문(DS<디바이스솔루션>·Device solutions)에서만 약 13조원에 이르는 영업 적자를 냈고 SK하이닉스 역시 같은 기간 누적 8조763억원의 영업 적자로 저조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우리나라 수출을 떠받치던 반도체는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분기마다 수조원씩 적자를 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 4월 7일 반도체 초격차 지원을 위해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 반도체 생산 현장을 둘러보면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 4월 7일 반도체 초격차 지원을 위해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 반도체 생산 현장을 둘러보면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반도체 업황의 경기둔화는 업계에서는 어느 정도 전망이 흘러나왔었다. 반도체는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COVID-19) 사태의 팬데믹(pandemic·전염병 대유행)과 ‘제4차 산업 혁명’(4IR: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 본격화가 반도체 수요에 큰 영향을 줬다.

이로 인해 비대면 언택트(Untact), IT(Information Technology·정보기술),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빅데이터(Big Data),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 확장현실(XR·Xtended Reality), 혼합현실(MR·Mixed Reality) 등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로 초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코로나19 엔데믹(endemic·감염병의 풍토병화)으로 바뀌면서 반도체가 팔릴 만큼 다 팔렸다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수요가 감소하게 되면서 성장 동력이 주춤한 모양새를 보이며 반도체 한파가 강하게 몰아쳤다.

특히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퍼팩트스톰(Perfect Storm)’ 복합위기 시대가 시작되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이어져 서버·PC·모바일 등 반도체 수비가 급감됐으며 이로 인해 재고 누적과 적자라는 악순환으로 연결됐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의 장기화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투 발생을 시작으로 커져가는 신(新)중동전쟁의 여파 등 불안정한 지정학적 리스크(RISK·위험)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유독 힘든 한해를 보내게 됐다.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현장.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현장. 사진=SK하이닉스

DRAM(디램·Dynamic Random Access Memory) 시장 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4분기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적자 폭을 줄일 것으로 보이지만 그동안 누적된 수조원 규모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공급 확대 대신 감산 기조를 이어가는 선택을 했다.

최태원(63)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은 지난 18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반도체 경기에 대해 “반도체 경기 자체는 지금 락바텀(저점)을 벗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대한 우려감도 나타냈다. 최 회장은 “신(新)보호무역주의가 유행하다보니 자국에서 만든 것만 쓰겠다는 개념으로 접근이 되면 우리 같은 처지의 작은 시장은 생산만 늘어나 불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장기적 차원에서 무언가 대응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를 계속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 패권경쟁이 과열되면서 미국의 산업 정책에 신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됐다. 자국 보호가 심화되고 있으며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 확산되면서 무역 갈등이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SK하이닉스 321단 4D 낸드.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321단 4D 낸드. 사진=SK하이닉스

특히 첨단 산업의 핵심이자 세계화의 부산물인 반도체 산업의 미국 집중을 목표로 하는 반도체 지원 및 과학법(칩스법·Chips Act)의 반향은 엄청났다. 세계화 이후 현재 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제조를 미국에 복원하기 위해 고안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만, 일본, 한국 등 아시아의 주요 반도체 수출업체들은 미국이 주도한 반도체의 보조금 경쟁으로 인한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완화하기 위해 칩스법에 대응해 자체적으로 보조금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미국의 칩스법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도 ‘K-칩스법’을 적용하기 시작했지만 혜택은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된 것으로 보고 있다. ‘K-칩스법’에 따른 세금 감면액이 올해 투자분만하더라도 3조52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기획재정부는 영업비밀을 이유로 기업별 신청액을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반도체시설투자가 대부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두기업이 감면 혜택의 압도적 다수를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한파 속에서도 지속가능경영(sustainability management)을 위한 미래에 대한 대비는 눈에 띈다. 반도체 불황으로 인한 실적 부진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래 준비를 위한 투자 자금을 확충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올해 사상 최대 투자를 단행했다.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인 25조3000억원 규모의 시설투자를 단행했다. 이 중 91%가 넘는 23조2473억원을 반도체 부문에 집중 투입했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소재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에서 미소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소재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에서 미소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는 20년간 300조원을 투입해 경기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했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서는 ‘제2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건립을 마무리하고 있다. 공장에 170억달러(22조643억원)가 투입됐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해 19조6500억원의 설비 투자를 단행했다. 이는 2021년 투자금액인 13조3640억원보다 47% 가량 늘어난 수치다.

AI(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시장의 급성장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High Bandwidth Memory) 수요가 늘어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시장 선점을 위해 제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 올해 국가 간 협업을 통해 반도체 산업 성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하면서 지난 13일 반도체 동맹이 구축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오전 대통령실에서 제54회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한·네덜란드 간 반도체 동맹이 구축됐다며 네덜란드 국빈 방문 성과를 공개했다.

당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기업인 네덜란드 ASML과 양해각서 및 업무협약(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을 체결하고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향후 긍정적 효과를 발생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를 통해 올해 저점을 찍은 반도체 산업이 다시 상승세를 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최양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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