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물가 안정 방안으로 먹거리 가격부터 압박 시작…식품업계, 가격 인상 포기
라면업계 시작으로 본격적인 민감품목 밀착 관리…‘빵 서기관’ ‘라면 사무관’ 부활
가격 인상 대신 제품 용량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꼼수 인상 사회 문제로 확산

[편집자 주] 어느덧 ‘검은 토끼의 해’인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저물어 간다. 전 세계적으로 경영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업들마다 복합위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방안을 만들어내고자 동분서주했던 한해였다. <뉴스워치>는 올해를 마무리하며 10개 산업 분야를 결산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서울시 강서구 대형 마트 상품 진열대에 우유 등이 놓여 있다. 사진=최양수 기자
서울시 강서구 대형 마트 상품 진열대에 우유 등이 놓여 있다. 사진=최양수 기자

[뉴스워치= 최양수 기자] 2023년이 시작되면서 코로나19(COVID-19) 사태가 엔데믹(endemic·감염병의 풍토병화)으로 전환돼 팬트업(Pent Up·억눌린 수요가 급속도로 살아나는 효과)으로 인한 소비 경기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넘쳤다.

하지만 실상은 글로벌 경기 악화의 장기화 여파로 국내 소비 심리까지 얼어붙게 만든 한해가 됐다. 글로벌 경제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까지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大恐慌·The Great Depression)을 연상케 할 만큼 최악의 상황을 맞았고 국내 물가 역시 인플레이션(Inflation) 흐름을 보였다.

특히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퍼팩트스톰(Perfect Storm)’으로 인한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은 각종 원자재값 및 인건비 상승 등으로 이어져 다시 물가를 상승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서민 경제만 어려워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정부가 정책을 손질하면서까지 물가 안정을 위한 총력전을 펼치게 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에도 식·음료부터 시작해 과자, 아이스크림까지 가격 상승세를 이어갔다. 또 햄버거, 치킨 등 외식 가격도 올랐으며 배달 수수료까지 줄줄이 인상되면서 밥상물가뿐만 아니라 외식·배달물가까지 증가하며 서민들의 주름살은 깊어져만 갔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대표 먹거리 지표인 가공식품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2월 116.96으로 지난해 동월보다 10.4% 올랐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4월(11.1%) 이후 13년 10개월만에 최고치였다.

서울시 강서구 대형 마트 상품 진열대에 과일 등이 놓여 있다. 사진=최양수 기자
서울시 강서구 대형 마트 상품 진열대에 과일 등이 놓여 있다. 사진=최양수 기자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2021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24개월째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높았고 외식은 2021년 6월부터 30개월 연속 상회 중이다. 소득이 먹거리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는 지난 6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방송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추 부총리는 “국제 밀 가격 인하를 감안해 라면값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라면업계를 타겟으로 지목하면서 본격적인 정부 개입이 시작됐다. 정부가 서민 부담을 가중하는 식품 물가 잡기에 나선 가운데 소비자단체협의회도 정부의 요구에 호응하며 과자·라면류에 대한 가격 인하를 촉구했다.

이후 농심이 7월부터 신라면과 새우깡 출고가를 각각 4.5%와 6.9% 인하했고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 등 라면업계 주요 4사(社)가 모두 5% 안팎의 가격 인하에 나섰다. 라면업계의 가격 인하는 밀가루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과자·빵 가격 인하로 이어졌다. 롯데웰푸드와 해태제과는 과자 가격을 내렸고 SPC,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은 빵 가격을 낮춰 제과·제빵업체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며 가격 인하 움직임은 식품업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최근에는 증류주를 대상으로 세금 제도를 개편하며 가정에 유통되는 주류 가격을 낮췄다. 다만 그 비중은 인상 정도와 비례해 미미할 수 있다. 또 대형마트에서 진행되는 프로모션이 약화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농식품부 실·국장들은 CJ제일제당, 삼양식품, 오리온 등을 방문해 물가 안정 정책에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 또 정부에서는 ‘빵 서기관’ ‘라면 사무관’ 등 가공식품 9개 품목에 대한 물가 관리 전담자를 추가로 지정했으며 빵, 우유, 소고기 등 서민 체감도가 큰 28개 농식품 품목에 대해 매일 점검하는 등 밀착 관리에 나섰다.

정부가 물가안정의 고삐를 바짝 죄면서 기업들이 정부의 가격 자제 요청에 화답하고는 있지만 불편해하는 기색도 내비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과도한 물가안정 동참 요구가 향후 억눌린 가격 인상 요인이 돼 가격 폭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그 비판을 농식품부 등 부처가 아닌 컨트롤 타워인 기재부가 뒤집어 쓸 수 있다는 점도 거론되고 있다.

서울시 강서구 대형 마트 상품 진열대에 계란 등이 놓여 있다. 사진=최양수 기자
서울시 강서구 대형 마트 상품 진열대에 계란 등이 놓여 있다. 사진=최양수 기자

정부의 물가안정 압박이 거세지면서 먹거리 꼼수 인상도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가격 인상 대신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등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실질적인 가격 인상 효과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패키지 다운사이징(package dounsizing)’이라고도 불리는 슈링크플레이션은 가격은 그대로 두거나 올리면서 제품 용량을 줄이는 것으로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인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이다.

한국소비자원의 슈링크플레이션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격정보종합포털사이트 참가격에서 관리하는 가공식품과 언론보도 등을 통해 언급된 상품을 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9개 품목 37개 상품 용량이 실제로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롯데제과의 카스타드 대용량이 12개에서 10개로 16.7% 줄었고 ▲빼빼로(52→43g) ▲롯데웰푸드 꼬깔콘(72→67g) ▲하리보 웜즈사우어(100→80g) ▲농심 양파링(84→80g) ▲동원F&B 동원참치(100→90g) ▲정식품 베지밀(1000→950mL) ▲서울우유 비요뜨 초코링(143→138g) 등이 슈링크플레이션 명단에 올랐다. 롯데칠성음료 델몬트 오렌지주스(과즙함량 100→80%)와 BBQ 튀김유 100% 올리브유(올리브유 100%→올리브유 50%, 해바라기유 50%) 등은 스킴플레이션 제품으로 꼽혔다.

정부는 이런 실태조사 결과 발표를 토대로 대응책을 마련해 제품 포장지에 용량 변경 사실 표기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단위가격 표시 의무 품목을 확대하고 온라인 매장에도 단위가격 표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23년은 가격 인상 요인을 부담하고 있다는 식품업계와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는 정부의 줄다리기가 이어졌던 한 해가 됐으며 팽팽한 줄다리기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양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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