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범지기마을 아파트 모습. /제공=인터넷커뮤니티
세종시 범지기마을 아파트 모습. /제공=인터넷커뮤니티

[뉴스워치] 아파트 이름 짓기에는 대부분 아파트 이미지를 제고하고 집값도 상승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포항과 울산 지역에 '신천지'라는 아파트가 있어 개명(改名)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아파트를 보면 특정 종교단체를 떠올리게 돼 재산권 하락은 물론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내 아파트 단지에서는 역세권을 강조하기 위해 ‘역’은 붙이고, 공공‧임대 아파트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LH’는 떼는 개명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화성시 ‘동탄2신도시시범호반베르디움’ 입주민들은 아파트 이름에 ‘동탄역’을 붙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동탄역푸르지오’은 원래 이름이 ‘동탄2신도시푸르지오2차’였다. 하남시 미사강변도시에서는 LH7단지와 LH28단지를 각각 ‘미사강변센트리버’, ‘미사강변골든센트로’로 바꿨다. 

토박이말 이름으로 밝혀진 아파트는 코오롱건설의 '하늘채', 금호건설의 '어울림', 한화의 '꿈에그린', 대한주택공사의 '뜨란채, 참누리', 부영의 '사랑으로'가 있다.

이 가운데 '하늘채'는 코오롱건설이 2000년에 발표한 아파트 이름으로 '하늘'과 주거공간을 의미하는 '채'의 합성어이며, "내가 하늘이 되는 나의 무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금호건설의 '어울림'은 아파트 고유의 특성인 공동체의식을 강조한 것으로 '한 데 섞이다, 조화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화건설의 '꿈에그린'은 말 그대로 꿈에 그리던 주거공간을 뜻하며, 인간중심과 환경친화적 자연주의 미학의 아파트를 구현하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밖에 '뜨란채'는 '뜰 안채'를 붙여서 연철시킨 이름이고, '참누리'는 참다운 세상이란 뜻이다. 

에이원종합건설(주)의 '파란채'는 '파랗다' 의 파란과 '집'을 뜻하는 채에서 따온 말이며, '파란채 아파트는 소비자들이 살수록 느끼는 기분 좋은 아파트, 파란 행복이 펼쳐지는 건강한 아파트'를 추구한다고 한다. 

아파트 이름 가운데 '푸르지오'는 '푸르다'에서 따온 '푸르'와 땅을 뜻하는 영어 'geo'를 붙인 말이기에, '미소지움'은 한자말 '미소(微笑)'에 '짓다'의 이름씨꼴(명사형) '지움'을 붙인 것으로 순수 토박이말은 아니다.

요즈음 아파트 이름에서 우리말이 소멸 위기에 처했다. 건설사가 보유한 아파트 브랜드 이름이 죄다 외국·외래어로 뒤덮여 가고 있기 때문이다. 

순우리말을 유지하고 있는 부영주택(사랑으로), 코오롱건설(하늘채), 금호산업(어울림)도 각각 ‘애시앙’, ‘더 프라우’, ‘리첸시아’라는 외국어 상표명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꿈에그린’이란 순우리말 브랜드를 사용했던 한화건설은 지난해 8월 ‘포레나’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출시했고, 기존 꿈에그린을 포레나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대형 건설사들의 아파트 브랜드 이름은 모두 외국어·외래어 혹은 한자로 돼 있다. 삼성물산 ‘래미안’,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디 에이치’와 ‘힐스테이트’, 대림산업 ‘e편한세상’과 ‘아크로’, GS건설 ‘자이’, 포스코건설 ‘더샵’, 대우건설 ‘푸르지오’와 ‘푸르지오써밋’, HDC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롯데건설 ‘롯데캐슬’과 ‘르엘’, SK건설 ‘SK뷰’ 등이다.

중견 건설사도 마찬가지다. 호반건설 ‘베르디움’과 ‘호반써밋’, 태영건설 ‘데시앙’, 반도건설 ‘유보라’, 효성중공업 ‘해링턴 플레이스’, 두산건설 ‘위브’와 ‘더 제니스’, 우미건설 ‘린’, 쌍용건설 ‘예가’와 ‘더 플래티넘’, 한라 ‘한라비발디’, 서희건설 ‘스타힐스’ 등도 외국어·외래어나 한자로 이루어진 이름이다.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기존 ‘뜨란채’, ‘천년나무’ 대신 ‘휴먼시아’나 ‘안단테’라는 브랜드를 내놓으며 외국어·외래어 작명에 동참했다.

이밖에 ‘시티’(도시), ‘에듀’(교육), ‘포레스트’(숲), ‘파크’(공원), ‘에코’(친환경), ‘리버’(강), ‘레이크’(호수) 등과 같은 영어 단어도 아파트 단지나 오피스텔 이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외국어 조합이라는 기상천외한 ‘작명법’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아파트 단지 이름과 규모, 입주 시기를 종합해 보면, 아파트 재건축이 본격화하던 2000년대 초반부터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된다. 

아파트 이름을 외국어·외래어 위주로 쓰는 데에는 고급스러운 느낌의 이름이 아파트 분양의 성공, 그리고 향후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생소한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혼란을 준다는 점에서 자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공동주택 이름에 외국어 포화상태가 나타나면서 토박이말 이름을 짓는 경우가 생겨날 것이란 점이다. 기억하기 쉽고, 발음하기 좋은 우리말 아파트가 많아졌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세종시의 첫마을, 나릿재마을, 범지기마을, 둔지미마을 등 우리말 아파트 명칭은 좋은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김웅식 기자 (수필가) news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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