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품귀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세입자를 제비뽑기로 정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지난달 초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아파트 단지 복도에 전셋집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인터넷커뮤니티 
전세 품귀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세입자를 제비뽑기로 정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지난달 초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아파트 단지 복도에 전셋집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인터넷커뮤니티 

[뉴스워치] 이해관계가 첨예할 때, 인류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배분 기준이 바로 추첨이라 불리는 ‘제비뽑기’다. ‘제비’는 ‘잡다’의 명사형인 ‘잡이·잽이’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추미애 장관 아들과 관련해 눈에 띄는 단어가 제비뽑기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 통역병을 뽑는 과정에서 시행됐다고 한다. 

실력이나 면접으로 통역병을 선발하려 했는데, 워낙 청탁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제비뽑기로 했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 대상에는 당시 카투사로 근무하던 추 장관의 아들도 포함돼 있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진성여왕 때 당나라로 가다 섬에 표류한 사신 일행이 용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제비뽑기로 거타지를 남겨두고 떠났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은 제비뽑기로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집정관은 물론 원로원 의원과 배심원들도 제비뽑기로 선출됐다고 한다. 무슨 정치를 그런 식으로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민주적 행위였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전셋집 구하기가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것처럼 어려워졌다. 물량이 거의 사라지면서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전세 구하는 문의가 쏟아지면서 ‘세입자 면접’을 보겠다는 집주인까지 나왔다고 한다. 

전세매물은 씨가 말랐고 값은 나날이 치솟고 있다. 약 4000세대를 수용하는 서울 마포구 대단지 아파트에 나와 있는 전세매물은 단 2개뿐이라는 언론보도가 잇따른다. 매물가격도 3개월 새 평균 7500만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감정원 통계로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10월 마지막 주에 0.22% 올랐다. 5년 6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지난달 전세 공급 부족(KB국민은행 지표)은 19년 2개월 만에 가장 나빴다.

전세 품귀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세입자를 제비뽑기로 정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지난달 초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아파트 단지 복도에 전셋집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비교적 저렴한 소형 전세매물이 나왔다는 소식에 9명의 매수자가 몰려들었다. 순서대로 집 내부를 둘러본 이들 가운데 5명이 제비뽑기로 계약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전세대란의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정부가 추가대책을 고민 중이지만 전세의 난(亂)을 잠재울 마땅한 카드가 없어 전세 한파로 인한 살벌한 풍경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을 이사철, 최악의 전세난에 세입자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김웅식 기자 (수필가) news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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