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의 공공언어개선사업이 호응을 얻으며 올해도 사업자 공모 과정을 거쳐 진행될 예정이다. 공공언어개선사업은 공공의 말글을 알아듣기 쉽고 말법에 맞게 고쳐 쓰자는 취지에서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사진=인터넷커뮤니티
문화관광부의 공공언어개선사업이 호응을 얻으며 올해도 사업자 공모 과정을 거쳐 진행될 예정이다. 공공언어개선사업은 공공의 말글을 알아듣기 쉽고 말법에 맞게 고쳐 쓰자는 취지에서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사진=인터넷커뮤니티

[뉴스워치]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를 소외시키는 것은 많다. 그 가운데 하나는 회계언어가 아닌가 한다. 미지급금, 대손충당금, 선수금, 유동부채, 미청구공사….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면 외계인들이 쓸 법한 낯설고 어려운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소위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어려운 용어로 평범한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한다. 마치 한문을 써야만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자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말아야 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회계 문맹인 대다수 국민을 속이는 분식회계가 똬리를 틀 수 있는 차단막 역할을 회계언어가 하는 것이다.

국민이 회계를 어렵게 여겨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것은 회계 전문가의 책임이 크다. 외계어 같은 용어로 회계장부를 만들어왔으니 국민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회계용어를 평범한 국민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쉬운 말로 순화해야 하지 않을까.

문화관광부의 공공언어개선사업이 호응을 얻으며 올해도 사업자 공모 과정을 거쳐 진행될 예정이다. 문화관광부의 공공언어개선사업은 공공의 말글을 알아듣기 쉽고 말법에 맞게 고쳐 쓰자는 취지에서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공공언어란 개인이 쓰는 편지나 일기처럼 개인끼리 주고받는 말글이 아니고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쓰는 공용문서, 언론이나 기업에서 온 국민을 상대로 쓰는 말글을 일컫는다. 공공기관에서는 국가 행정 정보를 국민이 이해하기 쉽고 친숙한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더불어 맞춤법과 표준어 사용에 힘써야 하되 쉽고 바른 말이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공문서에 일본식 행정용어가 그대로 쓰이고, 신문에서도 일본 한자말과 외국어, 외국 말투로 기사를 많이 쓴다. 기업의 제품 설명서도 그렇다. 솎아내고 올바르게 심어야 할 ‘말글의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어렵고 낯선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순화하려는 움직임들은 몇몇 공공기관에서 있어 왔다.

국방부는 군대에서 통용되는 부적절한 언어와 어려운 행정용어를 퇴출하는 '올바른 공공언어 사용 캠페인'을 몇 년 전부터 펼치고 있다. 깔깔이(방상내피), 짬찌(신병), 화이바(헬멧), 쿠사리(면박)가 군대에서 사라지게 될 것 같다. 이 캠페인을 통해 은어와 일본식 표현, 외래어, 권위적인 행정용어, 낯선 한자어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다른 말이나 쉬운 용어로 바꾸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선고를 받을 당시 헌법재판소의 선고문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이 탄핵 선고문을 22분 동안 낭독했는데, 어려운 법률 용어가 난무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선고문에는 알아듣기 쉬운 용어가 많았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유에 대해 쉽게 알 수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선고공판의 부장판사가 쉬운 법률 용어를 사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심 선고공판을 맡은 김세윤 부장판사는 100분 넘게 판결요약본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법률 용어를 쉽게 풀이해 설명했다. 이런 친절한 모습은 전에 보지 못했던 것으로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10~30대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선고문이 쉬워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는 글이 많았다. 이에 더 나아가 법률 용어를 간단히 설명하는 글이 상당 기간 인기를 끌기도 했다. 법률 용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법조계에선 ‘알기 쉬운 민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어려운 법률 용어를 순화하기로 했다. 

용어순화가 절실한 분야 중 하나는 건설업이다. 건설현장에는 국적불명의 복잡하고 낯선 용어가 난무한다. 업무란 말보다 ‘노가다’, 끝보다 ‘시마이’란 단어가 실생활에도 쓰일 정도로 고착화돼 있다. 이 외에도 할당량을 뜻하는 ‘야리끼리’, 지렛대란 뜻인 ‘빠루’, 운반이란 뜻의 ‘곰방’이 쓰인다. 건설업이 일제 때 국내에 정착했기 때문인지 건설용어에는 아직도 일본식 표현이 많이 남아 있다. 

복잡하고 낯선 건설용어는 쉬운 우리 말로 순화해야 한다. 근로자가 현장에서 일을 배울 때 쉬운 용어를 듣고 사용한다면 일의 능률은 올라갈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용어로 의사소통을 하려 한다면 자칫 착각이나 오해를 불러 안전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한때 한자나 외래어를 많이 섞어 사용하면 유식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언어사용에 무지했던 것이다. 말글 밭에 잡풀 언어가 무성하면 우리 말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말글의 순화는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의 말글을 다듬고 가꾸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될 것이다.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 우리말에 도사리고 있는 어려운 한자나 일본식 표현, 은어 등을 찾아내 다듬고 개선해야 한다. 현재 국민의 언어생활 향상을 위한 정부기관인 국립국어원에서 우리 말글을 순화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다. 문화관광부의 공공언어개선사업도 그 작업의 하나다. 이처럼 사회 각 분야에서 언어순화를 위한 노력들이 횃불처럼 타오르기를 소망해 본다.

김웅식 기자 (수필가) news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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