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호·조산 관련 독자적인 법률 신설 논의 중
의사협회 “간호사 이익만 대변하고, 직역 간 갈등 일으킬 것” 반발
간호협회 “전 세계 90개국이 시행 중이며 의료 서비스 향상에 반드시 필요”

[뉴스워치= 김민수 기자] 간호 또는 간호·조산에 관한 사항을 독자적인 법률에 담아 규정하는 ‘간호법’ 제정을 놓고, 의사단체와 간호사단체가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법률 제정 여부에 따라 파업 등 강경 투쟁까지 일어날 경우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위태로운 상황을 겪고 있는 의료 시스템에 큰 혼선이 발생할 수 있어 중재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과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2건의 간호법안과 국민의당 최연숙 의원 대표발의한 1건의 간호·조산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해당 법안들은 공통적으로 현행 의료법 등에서 포괄적으로 규율하고 있는 의료인·의료행위의 범주에서 간호에 관한 사항 또는 간호·조산에 관한 사항을 이관해 독자적인 법률로 제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코로나19 의료진./캡처=김민수
코로나19 의료진./캡처=김민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간호 업무범위, 간호 전문 인력의 양성·수급 및 근무환경 개선 등에 관한 사항을 체계적으로 규율해 간호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국민 건강 증진에 이바지하려는 취지에서 발의됐다고 설명했다.

오는 24일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 상정이 임박하자 대한의사협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법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기자회견에는 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간호조무사협회·대한응급구조사협회·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한국노인복지중앙회·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정보협회가 공동으로 참여했다.

이들 단체는 간호법이 보건의료체계에 혼란을 일으키고, 간호사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직종 이기주의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의료법에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뿐 아니라 간호사를 ‘의료인’으로 통합·규율해 왔으며, 각 직역의 업무범위가 명확히 규정돼 있기 때문에 별도의 간호법이 필요 없다는 게 의사협회 측 주장이다.

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지금 발의된 간호법안은 ‘진료의 보조’를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함으로써 간호사들이 진료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의료법에서 간호법을 따로 떼어내어 간호사만을 위한 지원과 혜택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으며, 심지어 간호법을 다른 법률에 우선하도록 함으로써 마치 특별법과 같은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 공동기자회견./캡처=김민수
대한의사협회 공동기자회견./캡처=김민수

의사협회가 강경하게 나서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원천 봉쇄하기 위함이라는 시각이 있다. 실제로 의사협회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간호사가 단독 개원할 경우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필수 회장은 “간호법안이 제정되면 보건의료생태계의 심각한 교란을 야기해 응급구조사를 포함한 타 보건의료 직군의 업무영역을 침탈하고, 타 직종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국회는 특정 직역의 이익을 주로 대변하는 개별 직역입법을 별개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보건의료인 지원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모든 보건의료인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와 같은 의사협회의 주장에 대해 간호협회는 터무니없는 억측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간호협회는 올해 4월부터 ▲간호법 왜 필요한가? ▲간호법 Q&A-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궁금증! ▲간호법 바로알기(오해, 팩트체크) 등 유튜브를 통해 간호법 제정의 필요성을 호소해왔다.

해당 영상에는 국내 간호 인력의 운영 상황, 간호법과 관련한 외국 사례, 보건의료 패러다임의 변화, 간호법 단독 입법의 필요성 등이 담겨있다.

대한간호협회 유튜브./캡처=김민수
대한간호협회 유튜브./캡처=김민수

간호협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근무 간호사는 OECD 평균이 8.9명인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3.8명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경력 단절 현상이 발생하면서 인력 부족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게 간호협회 측 주장이다.

간호협회는 다양화·세분화·전문화를 통해 간호 인력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근무 환경 개선 및 전문 간호사 양성을 통해 환자 진료와 의료 서비스 수준 향상을 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특히 전 세계 90개 국가에서 이미 시행 중인 간호법을 우리나라만 아직까지 제정하지 못하고 있어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도 전했다.

실제로 간호법은 그동안 역대 국회에서 3차례 발의됐지만,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돼 본격 심의 절차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간호협회 신경림 회장은 “간호법 제정은 지난 1970년대부터 시작돼 100만 대국민 서명운동, 간호정책 선포식 등을 통해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며 “특히 코로나19 사태에서 국민 곁을 24시간 지킨 간호사들의 헌신과 사명감은 간호사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널리 인식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숙련된 양질의 간호 인력을 양성하고 일관성 있는 간호정책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독립된 법안의 필요성에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라며 “간호법은 미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대만 등 우리 주변 국가를 비롯해 전 세계 약 90개국이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간호대학생들./캡처=김민수
간호대학생들./캡처=김민수

간호대학생들도 간호법 제정에 동참하고 있다. 강원, 부산, 전남, 서울, 대구, 대전 등에서 재학 중인 예비 간호사들은 관련 성명서를 담은 유튜브 영상을 제작해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또 법안 제정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간호협회는 오는 23일 전국간호사결의대회를 국회의사당 앞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결의대회에는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따라 현장 간호사와 간호 대학생 등 499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경림 회장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간호법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협회와 정책 협약식을 맺은 여야 3당은 약속을 지켜달라”며 “무엇보다 초고령 사회에서 안전한 보건의료와 간호·돌봄을 위해서라도 간호법은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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