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조산 관련 법률 신설 여부 놓고 간호협회, 의사협회 신경전 벌여
“수준 높은 간호 서비스 제공 위해 필요” vs “현행 의료법에서도 충분히 가능”
이재명·윤석열 여야 대선 후보 ‘간호법 제정’ 찬성 의사 내비치면서 논란 격화

[뉴스워치= 김민수 기자] 새해 들어서도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인 ‘간호법’을 놓고, 직능단체의 갈등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특히 이달 중순 거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찬성 의사를 내비치면서 대한간호협회와 대한의사협회의 마찰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현행 의료법 등에서 포괄적으로 규율하고 있는 의료인·의료행위의 범주 중 간호에 관한 사항 또는 간호·조산에 관한 사항을 별도로 규정하는 신설 법 제정 여부를 놓고 간호협회와 의사협회가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현재 이들 단체는 국회 앞에서 연일 집회와 기자회견을 이어가면서 간호법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고 있다.

먼저 간호협회는 국민건강증진과 간호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선 간호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경림 간호협회 회장은 “70년 전에 만들어진 의료법으론 지금의 보건의료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만큼 국민을 위해, 간호의 미래를 위해 간호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우리나라는 경제선진국이지만 간호정책과 제도는 아직도 후진국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간호법 제정 찬성 집회./사진=대한간호협회
간호법 제정 찬성 집회./사진=대한간호협회

간호협회에 따르면 의료와 관련한 모든 직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현재의 의료법 체제에서는 간호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혼란과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간호법을 별도로 제정할 경우 간호사들이 해야 할 역할과 업무가 명확해지면서 불법 진료 행위와 같은 국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상황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게 간호협회 측 설명이다.

특히 일각에서 주장하는 ‘간호사 단독 의료기관 개설’은 의료법상에도 개설 권한이 없을 뿐 아니라 현재 추진 중인 간호법 내에 어떤 조항에도 관련 내용은 없다고 못 박았다.

신경림 회장은 “의료기관에만 국한된 현재의 의료법으로는 지역사회에서 노인·장애인 등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건강관리 및 간호·돌봄에 대한 보건의료정책 수립이 어렵다”며 “초고령사회와 만성질환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간호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은 다르다. 의사협회는 5가지 항목을 제시하며, 간호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사협회는 ▲면허제 근간의 현행 보건의료체계 붕괴 초래 ▲보건의료직역 간 갈등 심화 ▲다른 보건의료직역 위상 약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운영 차질 문제 ▲OECD 국가 등 외국 사례 등을 손꼽으면서 간호법 제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필수 의사협회 회장은 “모든 의료인을 ‘의료법’ 한 가지 법으로 규율하는 단일 법 체계 하에 각 직역별 면허제를 도입해 업무 범위를 혼란 없이 규율하고, 불필요한 직역 간 대립을 차단하며, 의료행위를 체계적으로 조화롭게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직역마다 독립법률로 규율하도록 하면 각 개별법이 서로 상충해 업무 범위에 혼란이 발생하고, 불필요한 직역 간 대립이 발생한다”며 “이는 진료현장의 혼란이 가중돼 결국 현행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의사협회는 간호법이 통과될 경우 의사 진료보조인력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 다른 보건의료직역들이 간호사의 업무상 지시를 받는 수직적 관계로 편입될 것이라는 우려는 나타냈다.

이필수 회장은 “전체 보건의료인들이 동등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이미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제정된 상태”라며 “간호사의 권익만 추구하는 간호법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간호법 제정 반대 기자회견./사진=대한의사협회
간호법 제정 반대 기자회견./사진=대한의사협회

OECD 회원국들의 간호법 제정 상황에 대해서는 양측이 엇갈린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의사협회는 OECD 38개국 중 27개국이 간호단독법이 제정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나머지 11개국도 국가별 입법 형태의 다양성을 고려하면 간호협회가 주장하는 수준의 단독법이라고 볼 수 있는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간호협회가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 간호법은 다른 직역과 구분해 간호사 직역에게만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취지로 간호사 직역의 영역 확대 근거 마련과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에만 초점을 둔 것”이라며 “이와 같은 의미의 간호법을 제정한 나라는 OECD 38개국 중 한 나라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간호협회는 의사협회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고, OECD 38개국 중 간호법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33개국으로 가입국의 86.8%가 간호법을 갖고 있다고 맞섰다. 특히 OECD 국가를 포함해 전 세계 총 96개국이 간호법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간호법을 보유한 33개 OECD 국가 중 일본, 콜롬비아, 터키는 20세기 초부터 이미 독립된 간호법이 있고, 미국과 캐나다는 각 주마다 간호법이 있어 업무범위와 교육과정 등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며 “EU 간호지침에도 정의, 자격, 업무범위, 교육, 전문 역량 개발 등 우리나라 간호법이 지향하고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작년 말 불거졌던 간호법 논란이 새해 들어 더 커진 이유는 주요 대선 후보들이 ‘간호법 찬성’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채혈 장면./사진=픽사베이
채혈 장면./사진=픽사베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지난 11일 ‘언제나 국민 곁을 지키는 간호사, 이제는 이재명이 지키겠습니다’라는 제목의 본인 페이스북 글을 통해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다.

이재명 후보는 “간호법 제정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숙성됐으므로 선거 전이라도 간호사분들을 위해 조속한 (국회)처리를 부탁 드린다”며 “우수한 간호인력 확보와 적정 배치, 처우개선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도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올렸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도 지난 11일 대한간호협회와 간담회를 마친 후 “간호법은 여야 3당 모두가 발의한 법안으로 안다”며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한대로 정부가 조정안을 가져오면 국민의힘은 즉시 간호법 제정이 논의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에서 간호사들에게 사명감만을 요구하며 계속 무거운 짐을 지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간호사들의 헌신과 희생에 국민과 정부가 합당한 처우를 해주는 것이 바로 공정과 상식”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주요 대통령 후보들이 간호협회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반면에 보건의료인 단체 대부분은 의사협회와 공동 행동에 나서고 있다.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는 ‘대선 후보들의 간호법 제정 지지 발언 관련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간호법 제정 반대에 한 목소리를 냈다.

이들 단체는 “대통령 선거가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관계 당사자들 간 심도있는 논의 없이 수용 가능한 대안도 마련하지 않은 채 특정 직역에 편향된 간호법안의 국회 통과를 시도한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법안 폐기를 위한 강력한 연대 투쟁을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민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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