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가 정책 실패를 덮는 ‘요술 방망이’인가.

최근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 효과를 설명할 때 수치가 낮은 한국감정원 통계를 인용한다. 그러자 일부에선 정부가 유리한 숫자만 선택적으로 가져다 쓴다는 지적을 한다. 

한국감정원 0.62%, KB국민은행 7.04%. 최근 두 기관에서 내놓은 올해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다. 양측 통계는 11배 이상 차이를 보인다. 

정부는 “민간 통계를 믿을 수 없다”며 국민은행 시세 흔들기에 나서기도 하지만, 실은 국민은행 수치도 믿는 듯하다. 주택담보대출이나 세금부과 기준의 하나로 국민은행 시세를 쓰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계를 대하는 정부 태도다. 부동산 통계는 입맛에 맞는 수치만 쓰고, 전세 관련 수치는 정부 마음에 안 든다며 아예 다른 기준까지 만들 작정이다. 

지난달 임대차3법 국회 통과 후 전세가가 급등하자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신규 계약만 집계하던 방식에서 갱신 계약도 포함하겠다”며 한국감정원의 전세가격 지수 통계방식을 수정하겠다고 했다.

통계 수치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문제는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관점을 흐트러뜨리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권력을 잡고 있는 쪽에서는 아무래도 정권 유지에 유리한 내용에 더 솔깃해진다. 

고용지표나 국민소득과 관련한 정부 통계를 두고 ‘맞춤 통계’라든지 ‘통계 분식(粉飾)’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정부에선 고용률은 상승하고 실업률은 하락하여 고용지표가 개선됐다고 주장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임시방편으로 만든 단기 알바 일자리로 고용 상황이 좋아진 점을 자랑한다. 의도된 숫자로 자화자찬(自畵自讚)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통계청이 현 정부의 삶의 질 개선 정책에 맞춰 ‘맞춤 통계’를 내놨다는 비판을 쏟아낸다.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했던 현 정부는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자 재정을 투입해 고령자 단기 알바 자리를 집중적으로 늘려왔다. 2018년 50만 개였던 고령자 단기 일자리는 지난해 60만 개, 올해는 73만 개로 증가했다. 

새로 늘어난 일자리의 거의 전부가 60대 이상 일자리인데, 상당수가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아르바이트성 노인 일자리이다. 공원의 잡초 뽑기나 전통시장 청소 같은 고령자 대상 1~2개월짜리 공공 일자리를 정부가 대폭 늘렸다. 그로 인해 전체 취업자 수가 증가한 것이다. 

고용의 질(質)은 무시한 채 취업자 수만 부풀리는 것은 일종의 ‘일자리 분식(粉飾)’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는 ‘사상 최악’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지표가 줄줄이 나온다. 실업자 114만 명, 청년층 체감실업률 25.6%, 구직을 단념한 비경제활동인구 1665만 명 등이다. 

이런 통계에도 홍 부총리는 정부가 그동안 잘 쓰지 않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5월부터 고용 상황이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홍 부총리는 2분기 가계동향 조사를 두고도 “정부의 과감하고 신속한 대응으로 소득 분배가 개선됐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새 통계 방식이 적용된 올 2분기에도 하위 20%는 근로소득이 18% 감소하고 전체 소득의 47%를 각종 정부 지원금에 의존해 생계를 꾸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소득주도 성장 성적표에 불리한 통계가 나오자 통계청장을 갈아치웠다. 통계청장은 물러나면서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돼선 안 된다”며 눈물을 흘렸다. 

어느 정치인이 다음과 같은 논평을 했는데,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다만 숫자를 만지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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