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공공기관에서 민간기업 직원을 차출해 일을 시키는 것은 ‘갑질’에 다름 아니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민간 금융회사와 협회에서 직원들을 차출해 일을 시키고 인건비도 부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이 피감기관 직원을 차출하고 인력 운영비용까지 해당 기관에 떠넘기고 있는 것은 전형적인 갑질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금감원은 정원(1981명)의 3.7%에 해당하는 74명, 금융위는 정원(307명)의 18%인 56명이 외부로부터 파견받은 인사였다. 파견자들은 은행, 보험사, 각종 민간 금융협회 소속인 것으로 나타났다. 

'파견'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명백한 인력 징발이다. 은행권 내부에서는 차출된 직원에 대해 '사노비'라고 칭하며 자조하고 있지만 당국 눈치가 보여 싫은 소리도 못 하고 있는 형국이다. 

언론을 통해 금융위와 금감원이 민간 업체의 직원을 차출해 물의를 일으켰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예전에 경험했던 ‘직원 차출’에 대한 불유쾌한 추억 몇 가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단상1: 2007년 건설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할 초창기에 토목사업본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건설 시공사에는 ‘슈퍼 갑’으로 통하는 S지방국토관리청에서 민간기업 직원 호출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기관의 실적보고서 작성을 위한 회의 참석 건이었다. 

토목사업본부 임원이 홍보실 실장에게 연락을 했고, 문화홍보 일을 총괄하고 있던 내가 갈 수밖에 없었다. 군말이 필요 없었다. 공사를 수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민간 건설사의 조직원이었기 때문이다. 

S지방국토관리청 사무실에 도착하니 토목사업본부 임원은 담당 과 공무원들에게 인사하기에 바빴고, 필자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회의에 참석해 보니 중년의 담당 과장이 회의를 주재했는데, 우리 외에도 모 연구소 연구원도 와 있었다. 과장의 말은 자신 담당 과의 1년 간 실적을 논문 형태로 정리해주기를 바란다는 주문이었다. 연구소 연구원이 집필을 맡고 나머지 사람들이 수정 보완하는 것으로 해서 회의를 마쳤다.

*단상2: 2014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반핵 여론을 잠재우고 국내 원전의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H원자력 처장의 얼굴이 생각난다. 

H원자력과 원전 시공사, 연구기관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원전 안전성 홍보를 위한 방안을 협의하던 자리. H원자력에서 건설사 원전 담당부서를 통해 홍보직원을 소집한 자리였다. 처장은 이야기 도중 이렇게 발언했다. 

“시공사 여러분이 원전 안전성 홍보하는 거 점수로 매겨 원전 입찰 때 참고하겠다.”

도 넘은 발언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처장은 무심코 한 말이었겠으나 당시에 압박으로 다가왔다. 발주처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가하는 무언의 압박도 폭력이다. 

건설사 관계자들을 독려하기 위해 한 말이었겠지만 부적절한 말이었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민간기업 홍보직원들은 어리둥절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원전 홍보가 H원자력이 발주하는 공사를 수주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른다. 다만 사기업 홍보직원을 아랫사람 부리듯 막 대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때 그 자리에선 누구도 다른 생각을 말하지 못했다. 원전을 수주해 공사해야 먹고살 수 있는 민간기업의 구성원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 호출은 몇 년 동안 서너 번 더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김웅식 경제산업부 부국장 news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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