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군에 위치한 불갑사 모습. 사진=최양수 기자
전남 영광군에 위치한 불갑사 모습. 사진=최양수 기자

[뉴스워치= 최양수 기자]

백호(白毫)를 훔친 남자

산사의 저녁이 찾아오면
어지럽게 가마솥에서는 검은 안개를 피워낸다
풍경 소리가 부엌에 들어와도 
화장(火匠)①하는 여인은 보이지 않는다
여인의 피가 하늘을 물들일 때 
나는 부처님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삼배를 올린다 
 
첫 번째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나에게 용서를 빌었다
화장(化粧)②을 하는 여인을 보며
나의 속마음을 감추고 모질게 여인을
아니 나를 구박했다
 
두 번째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여인에게 용서를 바란다
당신은 내가 죽였다
당신이 사랑하던
화장(火杖)③을 꺾으며 가슴에서 죽음을 재촉했다
 
세 번째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부처님께 용서를 구한다 
대불전에서 스님의 손 안에 반딧불들이 하나씩 늘어나면 
백호(白毫)④를 훔치려고 이렇게 절을 올린다
 
밝아지는 불당에서
지긋하게 나를 바라보는 부처님을 보며
부처님 앞에서 또 머리를 조아린다

주석)
①. 화장(火匠) : 밥 짓는 일을 맡은 사람.
②. 화장(化粧) : 화장품을 얼굴 따위에 바르고 매만져 곱게 꾸밈.
③. 화장(火杖) : 부지깽이.
④. 백호(白毫) : 부처의 32상(相)의 하나. 눈썹 사이에 난 터럭으로, 광명을 무량세계(無量世界)에 비친다 함. 불상에는 진주·비취·금 따위를 박아 표시함.

최양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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