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 약 90일 앞두고, 후보 캠프별 보건의료정책 ‘촉각’
윤석열 후보 “당선되면 원격의료 추진” 구체적 발언 나오자 의사협회 반발
이재명 후보도 저울질…‘진단’과 ‘치료’ 개념 정립한 방향성 타진 중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 등 원격의료 장단점에 대한 논란 당분간 가중될 듯

[뉴스워치= 김민수 기자] 내년 3월 9일로 예정된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보건의료정책 분야에서 ‘원격의료’ 도입 여부가 첨예한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원격의료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도입 여부가 검토됐지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다룬다는 특수성으로 인해 찬반양론만 거세게 부딪힐 뿐 아직까지 실제 진료 현장에 활용되진 않고 있다.

6일 정치권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원격의료에 대한 논란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원격의료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시작됐다.

윤석열 후보는 이달 초 창업가들과 만난 ‘스타트업 정책 토크’ 현장에서 원격의료에 대해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의료 제도 도입의 기반으로 보고, 이에 대한 활용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윤석열 후보는 “원격 비대면 진료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차기 정부를 이끌게 되면 첨단 기술 혜택을 국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스타트업과 만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사진출처=연합뉴스
스타트업과 만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사진출처=연합뉴스

즉, 원격의료와 관련된 전문가들과 논의를 통해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유도하고, 여기에 따른 이득을 국민들이 수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윤석열 후보 측 생각이다.

아직까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등 다른 대선 후보들은 원격의료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진 않고 있다.

다만, 최근 보건의료특보단을 구성한 이재명 후보는 원격의료를 ‘진단’과 ‘치료’의 관점으로 구분해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공공의료 강화를 보건의료정책의 핵심으로 꼽고 있어 병원 방문이 쉽지 않은 도서 지역부터 원격의료를 전면 추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정치권의 동향이 포착되자 대한의사협회는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합리적 검토 없는 원격의료 및 비대면 플랫폼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의사협회는 원격의료 도입에 대해 줄곧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다. 지난 2010년 4월 18대 국회에서는 처음으로 의사의 원격 진료와 처방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의료 민영화 및 대형병원 쏠림 현상 등을 이유로 폐기됐다.

심지어 지난 2014년에는 원격의료 도입을 반대하며 집단휴진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집단휴진을 주도한 의사협회 노환규 전 회장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과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원격의료 논란이 10년 가까이 되면서 의료계 내부에서도 원격의료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는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의사협회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도입 반대’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의사협회는 입장문에서 “최근 산업계를 대상으로 원격의료 관련 공약들이 제시되고 있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적 재난 상황을 틈타 의료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편하다는 이유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앞서 산업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며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깊은 유감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환자 대면 진료 원칙’이 훼손될 경우 국민 건강에 커다란 위해를 초래할 것이라는 게 의사협회 측 주장이다.

특히 의사협회는 원격의료가 대면진료를 어느 정도 보조할 수 있는지, 과학적 분석 자료와 정확한 통계자료가 아직까지 도출된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의사협회는 “안전성과 효과성 측면에서 충분한 검증이 되지 않았고 전문가 의견수렴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며 “원격의료와 비대면진료 플랫폼 사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행보는 국민 건강과 공공성의 가치보다 산업적 측면에서 수익성과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원격의료./사진출처=연합뉴스
원격의료./사진출처=연합뉴스

의사협회처럼 원격의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측에서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특수성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 여부 ▲환자 개인정보 유출 대비책 미비 ▲의료 체계 붕괴 등을 주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원격의료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진료의 수요가 늘고 있고,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신용정보원이 발표한 ‘첨단 헬스케어 분야 5대 유망아이템 분석’ 자료를 보면 원격의료는 헬스케어 웨어러블 기기, 바이오의료 빅데이터, 임상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 디지털 치료제와 함께 유망아이템으로 지목됐다.

한국신용정보원 어진원 선임조사역은 “원격 의료 시스템은 물리적으로 거리가 있는 환자를 IT기술을 이용하여 원격으로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시스템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이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해 비대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원격 의료 시스템 및 디지털 치료제 등 관련된 아이템의 활용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원격 의료 시스템 세계시장이 2024년에 983.7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IT 및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디지털 기술과 의료가 접목된 새로운 융복합 산업으로 예방 사후관리, 맞춤형 의료 서비스 등 새로운 의료 서비스 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상급 의료기관 쏠림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있고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외국 사례를 든 보고서도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 11월 펴낸 ‘글로벌 보건산업 동향’을 보면 뉴질랜드의 원격의료 서비스 업체 ‘와카롱고라우 아오티에로아’(Whakarongorau Aotearoa)는 24시간 운영되는 무료 가상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을 통해 남태평양 도서 지역 주민의 의료 불평등 환경을 개선했다.

비대면 진료 컴퓨터그래픽./사진출처=연합뉴스
비대면 진료 컴퓨터그래픽./사진출처=연합뉴스

와카롱고라우 아오티에로아는 정부와의 계약을 통해 콜센터와 원격상담 직원을 두고, 무료 보건 및 정신건강 상담 서비스를 24시간 연중무휴로 제공하고 있다.

원격 상담 직원들은 정식 면허를 가진 간호사와 정신건강 전담 간호사, 정신과 의사 및 의사, 긴급의료원 등으로 구성된다.

올해 6월 30일 기준 와카롱고라우 아오티에로아의 전화 상담 건수는 작년과 비교했을 때 92% 증가했으며, 뉴질랜드 전역의 95만명에게 250만건의 상담을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원격의료에 대한 찬반양론이 서로 맞부딪히고 있는 가운데 장단점을 신중하게 검토한 후 정치권, 의료계,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타협안을 찾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본격적인 대선을 앞두고 원격의료 도입 여부가 후보별 캠프에서 보건의료정책의 주요 화두로 다뤄질 것”이라며 “원격의료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 논의해야 할 항목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민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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