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10배, 재계 2위로 껑충…그룹 체질 개선 ‘딥 체인지’ 성과
SK하이닉스 키워낸 집념의 승부사…‘BBC’ 투자로 미래 설계

[편집자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위기에 강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발한 이듬해 총수에 오른 그는 비상경영으로 파고를 넘었고, 그룹 해체 위기까지 몰렸던 소버린 사태에선 투명경영을 앞세워 주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보다 더 심각하다는 현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서도 혁신경영으로 국내 재계 서열 2위를 꿰찼다. 갑작스레 타계한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물론 국내 대표 기업인으로 자리매김했다는데 이견이 없다. 최 회장은 9월 1일 취임 25주년을 맞았다.

SK그룹의 대표적 경영 행사인 ‘이천포럼’은 올해 핵심 키워드로 ‘스피크 아웃’을 강조했다. 최태원 회장은 포럼 마지막 날인 지난 8월 24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를 찾아 “딥 체인지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올바른 혁신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SK
SK그룹의 대표적 경영 행사인 ‘이천포럼’은 올해 핵심 키워드로 ‘스피크 아웃’을 강조했다. 최태원 회장은 포럼 마지막 날인 지난 8월 24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를 찾아 “딥 체인지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올바른 혁신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SK

[뉴스워치= 소미연 기자] “변화 없이 미래 없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오랜 고민이다. 25년 전 취임 일성으로 “혁신적인 변화를 할 것이냐,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며 ‘딥 체인지(Deep Change·근본적 변화)’를 화두로 제시한 이후 그룹의 체질 개선과 지속성장을 위한 미래 방안을 모색하는 데 역점을 둬왔다. 특히 올해는 딥 체인지의 실천 방안으로 구성원의 ‘스피크 아웃(Speak-Out·의견 개진)’을 강조했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과제를 도출하고 해결책을 찾겠다는 의미다. 이것이 올바른 혁신 방향이라는 게 최 회장의 생각이다.

최 회장이 주도하는 딥 체인지는 그룹 안팎에서도 인정하는 경영 철학이다. 혁신을 앞세운 강력한 리더십으로 SK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 SK의 성장은 수치로 증명된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SK그룹의 자산 총액은 최 회장이 취임한 1998년 약 32조8000억원에서 올 5월 약 327조3000억원으로 10배 커졌다. 매출(224조2000억원)과 영업이익(18조8000억원)도 지난해 기준으로 각각 6배, 9배로 뛰었다. 

주목할 부분은 수출액이다. SK그룹은 지난해 83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최 회장이 취임한 이래 약 10배 규모로 늘면서 한국 전체 수출액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정보통신, 에너지·화학에 편중됐던 사업 포트폴리오를 반도체와 소재, 바이오 등으로 확대한 결과다. 이로써 내수(內需) 기업으로 인식되던 그룹의 이미지가 글로벌 기업으로 바뀌었다. 성장과 함께 위상도 달라졌다. SK는 재계 2위(자산 총액 기준)로 올라섰다. 국내 5대 그룹 내 순위가 바뀐 것은 공정위 조사결과 12년 만이다. 

재계에선 최 회장의 미래를 준비하는 혜안과 과감한 결단이 SK의 성장동력을 만든 것으로 평가한다. 일례로 SK하이닉스 인수를 꼽는다. 최 회장은 인수를 반대하는 임원들에게 “나의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야성적 충동)을 믿어달라. 인수 가격은 중요하지 않고, 인수 후의 기업가치가 중요하다”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SK는 입찰 마감 7분을 남겨두고 인수 제안서를 제출했다. 투자 성과는 실적으로 입증됐다. SK하이닉스는 인수 10년 만인 2021년 사상 최대 규모의 매출(42조9978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 12조원을 달성했다. 

최태원 회장은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해 반도체를 정보통신, 에너지·화학에 이은 제3의 성장축으로 육성해왔다. 사진=SK
최태원 회장은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해 반도체를 정보통신, 에너지·화학에 이은 제3의 성장축으로 육성해왔다. 사진=SK

반도체 분야는 SK의 주요 사업으로 부상했다. 최 회장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46조원 이상을 투입해 M14(이천), M15(청주), M16(이천) 공장을 새로 지었다. 반도체용 특수가스 회사 SKMR과 웨이퍼 회사 실트론을 인수해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힘을 쏟았다. 이른바 ‘용인 시대’도 준비 중이다. 경기도 용인에 총 120조원을 투자해 공장 4개를 건설할 계획이다. 반도체를 포함한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 분야가 SK의 핵심 미래 사업이다. 때문에 SK하이닉스 인수가 SK의 체질 개선 신호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최 회장은 BBC 산업을 바탕으로 기업 영향력을 키워갈 생각이다. 지난해 7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220억 달러(약 29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적 발표(historic announcement)”로 추켜세우며 최 회장의 영어 이름인 ‘토니(Tony)’와 ‘땡큐(Thank You)’를 연발했다. 이는 SK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됐다. 

SK는 국내 투자(179조원)를 포함한 총 247조원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지난 5월 공표했다. 오는 2026년까지 ▲반도체·소재 142조2000억원 ▲전기차 배터리 등 그린 비즈니스 67조4000억원 ▲디지털 24조9000억원 ▲바이오 및 기타 12조7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5만명 채용도 약속했다. 글로벌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지만 투자와 인재를 통해 성장과 혁신의 기회를 잡겠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위기 때마다 발휘하는 최 회장의 승부사 기질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소미연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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