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이우탁 기자]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과 부통령직을 경험했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협상가로서 정평이 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과거 상원에서 키워온 정치력과 외교적 감성으로 가장 첨예한 위기마저 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듯하다. 러시아의 무책임하고 무리해 보이지만 복잡하게 계산된 요구 앞에서 고심하며 굽히고 또 굽히려는 그의 의지는 잠재적인 위험성에 포위돼 가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지금까지 머릿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가까운 미래에 사실로 도래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도 파국을 원하지 않는 상황. 러시안룰렛 같은 극도의 위기감과 긴장 속에서 승자와 패자는 누가 될까?

지난달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화상 정상회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 인접국들을 편입해 안보를 위협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바이든은 푸틴에게 우크라이나 긴장 사태와 관련해 만약 침공한다면, 심각한 경제적 결과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미국이 군사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음날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최소한 4개의 주요 나토 동맹국과 러시아가 절충안을 모색하는 고위급 회의를 개최해야 한다면서 나토의 확장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했다. 나토 가입을 희망하는 동유럽 국가들과 일부 나토 동맹국들은 이처럼 러시아의 요구에 양보할 경우, 푸틴이 군사력을 발판으로 유럽 안보에 대한 미국의 힘과 약속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 내의 크림반도를 병합한 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 정부군을 상대로 무장투쟁하고 있는 친러 성향의 반군 분리주의자들을 계속 지원하면서 돈바스의 자치권 보장을 규정한 민스크 평화협정 이행을 우크라이나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미국과 나토를 상대로 계획한 협상이 실패할 것에 대비해 최후 수단으로 돈바스를 침공할 수 있다는 계산된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만약 무력충돌이 발발한다면, 70만명으로 추산되는 이 지역의 러시아인 보호와 나토의 위협에 대한 자국의 안보 확보가 러시아의 1차적인 명분이 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 정부 내 일각에서 돈바스 지역의 자치권을 공식적으로 양도하도록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는 관측이 일부 소식통을 통해 흘러나왔다. 백악관은 이를 부인하면서 우크라이나에게 자치주를 통제하는 점령군의 합법성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영토를 양도하라는 것과 다름 아니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우크라이나의 국경에 대한 푸틴의 계책은 이미 러시아에 가시적인 이익을 제공하고 있다. 푸틴의 벼랑 끝 전술은 세계적인 관심의 중심에 러시아를 두게 했고 러시아가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지 않은 우크라이나 영토의 지위를 둘러싼 외교적 협상과정에서 미국을 포함한 서방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게다가 서방이 국경 내에 군대를 주둔시켜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강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바이든의 암시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몰아넣는 잠재적인 위험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가시적인 이점들 속에서 러시아가 국면을 숨가쁘게 밀어붙일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크라이나의 국경과 2014년 이후 합병한 크림반도에서의 러시아의 현대화된 군사력 증강은 매우 위협적이다. 앞서 미 정보당국은 지난해 1월 초 우크라이나 국경을 따라 집결하는 러시아 병력이 17만6000명에 이르며 기계화 부대, 탱크, 포 등이 동원되고 있다는 관측을 보고한 바 있다.

최근 정보 소식통을 인용한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러시아가 군사력 지원을 위해 상업용 항공과 철도 시스템까지 전용해 우크라이나 인근 국경으로 추가 부대를 파견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확인되고 있다.

이와 관련한 미 정보기관의 평가 결과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과 그 주변에 배치된 전술부대는 50개 이상인 상황에서 6개 부대가 그 쪽으로 추가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부대의 구성원은 900명 정도며 각종 포와 대전차 무기 등 다양한 최신 조합으로 무장돼 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하던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던 바로 그 부대들이다. 만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신호가 해당 부대들에 떨어진다면, 크림반도의 경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혼란과 위험이 가중될 것이다.

또다른 한편에서, 러시아는 지난달 17일 나토의 확장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담은 안보 보장 초안을 내밀며 압박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이 초안이 유럽의 긴장 완화와 우크라이나 위기 완화를 위한 필수요건이라고 강조했다. 같은날 미 백악관은 러시아의 위험하고 위협적인 행동에 대한 나토의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면서도 모든 국가가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미래와 외교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등을 포함한 유럽 안보의 핵심 원칙은 타협 대상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팽팽한 대립 상황 속에서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바이든과 푸틴은 전화통화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또 한번 논의했다. 이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에 의하면,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추가로 침공할 경우 미국과 동맹국, 파트너들이 단호하게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바이든 정부 고위 당국자는 두 정상이 합의가 불가능한 부분과 함께,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부분도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오는 1월 10일 회담에서 이런 각 범주들의 윤곽이 더 정확하게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93년 어느 봄날 필자
1993년 어느 봄날 필자

바이든과 푸틴의 불꽃 튀는 외교전 속에서 러시아에 대한 프랑스와 독일의 접근은 어떻게 진행될까? 또 프랑스와 독일의 공조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외교정책과 안보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프랑스와 독일은 러시아가 도발하고 있는 복합적인 위협과 파괴적인 행동에 맞서야 한다는 인식에는 차이점이 없다. 양국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지지하면서도 러시아의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해 미래의 유럽 안보 협정에 필수적인 행위자로 푸틴을 세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독일은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서로 다른 우선 순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유럽 및 글로벌 시스템에 통합되는 것에 대해 유사한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과거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노르망디 형식(Normandy Format)' 때와는 달리, 프랑스와 독일의 협력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석을 가진 핵보유국으로서 러시아에 대해 안보정책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는 반면, 독일은 역사적으로 안보 영역에서 보여준 과묵함을 그대로 유지한 채 러시아와의 관계를 경제와 에너지 분야에 초점을 맞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르망디 형식은 2014년부터 프랑스와 독일 간 협력의 축이 돼 왔으며, 동부의 일부 지역에 대한 교류와 공동 노력의 중요한 장을 제공했다. 갈등을 종식시키는데 별 진전은 없었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해결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대한 분석에선 같은 입장이었다.

러시아 문제에 대한 프랑스와 독일 간 협력의 영향력은 돈바스에서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분쟁을 이성적으로 해결하고 관리하기 위한 노르망디 형식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한 프랑스와 독일의 확고한 협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가져오지 못했고, 러시아에 대한 공동 접근도 이어지지 않았다.

러시아에 대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구상은 유럽식 자치 개념으로 러시아를 동참시켜 유럽에 새로운 안보와 신뢰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독일은 마크롱의 구상에 난색을 표해왔다. 프랑스는 노르트 스트림 2 가스관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는 독일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양국의 구상과 계획은 폴란드와 북유럽 발트해 국가들에서 큰 논란과 우려를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을 넘어서 그 외 지역 국가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러시아와 인접한 북유럽과 발트해 국가들이 러시아에 경계심을 갖게 된 것은 2008년부터다. 당시 러시아가 북극 인근 군사 기지를 중심으로 비행기, 잠수함, 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정비를 확대하고 있음을 주변국들이 심각하게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과정에서 확인된 러시아 군의 기동성과 위력, 시리아 내전 개입이나 아프리카 지역 등에서 목격됐던 러시아의 군사적 팽창주의를 지켜보면서 경계심의 날을 바짝 세워 갔다. 더욱이 바이든 이전, 트럼프의 나토에 대한 불신과 영국의 브렉시트 단행으로 하나의 유럽이란 믿음에 균열이 생긴 상태에서 발트해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의 증가는 그들로 하여금 러시아가 무슨 일을 저지를 것인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들어, 자체적인 대비책을 강구하게 했다.

이것은 미국을 포함해 프랑스, 독일에게도 또 다른 부담이 됐다.

[다음 편에 계속]

이우탁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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