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평소 주말의 두 배 북적' '매물 거둬들인 부동산도 들썩'

▲ 남북정상회담 이튿날인 지난 28일 임진각에는 많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진=이소정 기자)

[뉴스워치=이소정 기자]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은 평화를 약속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처음 맞은 주말인 지난 28일 분단이 낳은 장소, 실향민들의 임시 고향 임진각을 찾았다. 이날 임진각에는 많은 시민의 발길이 이어졌다. 평화의 분위기가 곳곳에 흩뿌려진 가운데 임진각에 모인 시민들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9km, 서로의 목소리가 닿는 거리

“여기 문산에서 근무합니다. 밤에 야영을 하면 대남 방송이 들려요”

수도권 전철 경의선의 끝 역 파주 문산역 밖에 서 있던 구릿빛 얼굴의 1사단 군인의 말이다. 문산역에서 임진각 평화 누리공원까지 태워준 택시운전자 A씨 역시 오래 파주에서 살았고, 둔덕에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대남 방송이 들려오기도 했다고 했다.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진 판문점에서 분단의 또 다른 상징 임진각까지의 거리는 약 9km에 불과하다. 30년을 파주에서 살았지만 고향 충청도의 말투가 배어나는 A씨는 “사람들은 파주가 위험하다고 하는데 막상 살면 그런 건 잘 모른다”고 말했다.

손이 닿을 듯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의 주차장 어귀는 ‘만차’라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1100여 대가 동시에 주차할 수 있다는 주차장은 이미 가득 찼고, 차량이 꼬리를 이었다.

A씨가 “어제오늘 들어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 차가 평소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멈춰 있는 동안 창밖,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던 그는 “남북이 평화로워지면 아무래도 좋지 않겠나”라고 하며 말끝을 흘렸다.

임진각 누리공원은 흡사 유원지에 온 느낌이 들었다. 한쪽에는 놀이기구들과 즐기는 시민들이 줄을 섰고, 반대편의 탁 트인 공원에는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연들이 높이 날고 있다. 연을 날리는 아이들의 목소리 또한 하늘에 닿을 듯 높아갔다.

▲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전시된 장단역 증기기관차. 1950년 12월 31일 장단역에 멈춰서 반세기 넘게 DMZ에 방치되었던 기관차는 2004년 등록문화재가 돼 임진각에 전시되고 있다. 기관차에는 지금도 1020여개의 총탄 자국이 남아있다./(사진=이소정 기자

녹음이 우거진 공원 사이를 지나 들어간 독개다리에서 13년째 파주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고 있는 양원수(72)씨를 만났다. 독개다리는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된 교각을 활용해 길이 105m, 폭 5m의 철교 형태를 재현한 다리다.

양 씨는 “원래 주말은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배로 늘어난 것 같다”며 “정상회담 이후 사람들이 판문점을 직접 가보지는 못하니까 그래도 임진각에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진각에서도 판문점에서부터 퍼져나간 평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그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된 것도 안타까웠는데 남북의 왕래가 늘어났으면 한다”며 “특히 이산가족부터 전반적으로 먼저 만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낡고 녹이 슨 장단역 증기기관차를 올려다봤다.

남북분단의 상징물인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는 1950년 12월 31일 장단역에서 멈춰 섰다. 증기기관차는 파괴된 후 반세기 넘게 아무도 갈 수 없는 DMZ에 방치돼 있었고, 몸체에 1020여개의 총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조금 더 걸어가자 독개다리 일부 투명하게 처리된 곳 위에서 발아래로 보이는 철로에 적힌 글자를 바라보는 시민들이 있었다. “개성까지 21.1km 밖에 안 돼”, “평양까지 208km야, 통일 되면 열차 타고 유럽갈 수 있는 거야”라며 한마디씩 던지더니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한 쪽에는 설치된 북한 지도를 바라보며 “통일 되면 개성하고 평양 땅을 사야겠다“고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 남북정상회담은 파주 일대 부동산의 호재가 되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파주시 문산읍의 한 부동산에 민통선과 DMZ 전문이란 홍보 문구가 붙어있다./사진=이소정 기자

실제로 남북정상회담은 파주 일대 부동산의 호재가 되고 있다. 문산읍에서 부동산을 하는 공인중개사 김윤식 씨는 “이제 시작이다”고 거듭 반복했다. 그는 “발표 이후 지금까지 엄청난 투자가 몰려왔다. 내놓은 매물도 거둬들이고 있다”며 남북정상회담 후 일어난 부동산 업계 변화에 대해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거래를 거둬들이고 있는 상황을 보면 정상회담 이후 북미회담 까지 지켜보자는 기대감이 느껴진다”며 “남북의 왕래가 활성화하면 개성과 파주가 한반도의 중심이 될 것이고, 가을 정상회담까지 계속 이어질 거다. 이제 시작이다”고 설명했다.

▲ 지난 28일 오후 파주 임진각 자유의 다리의 끝 철책에 '남북성상회담 대환영, 우리는 하나다'는 문구가 쓰인 펼침막이 붙어있다. 펼침막에는 남북정상회담의 성공과 한반도 평화정착, 통일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글귀가 빼곡하다. /사진=이소정 기자

‘우리는 하나다’ 염원을 담은 한 마디

자유의 다리 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환영하는 의미로 ‘우리는 하나다’라는 글귀와 함께 한반도기가 그려진 펼침막이 붙어있다. 펼침막을 본 한 시민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가장 늦은 통일이 가장 멋진 통일이래”

펼침막에는 ‘봄엔 만남, 가을엔 통일’, ‘드디어 통일이 왔다’ 등 남북정상회담의 성공과 한반도 평화정착, 통일을 염원하는 소망과 기대감이 담긴 글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또한 공원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보이는 철책에는 시민들이 꽂아 놓은 태극기와 통일을 기원하는 문구가 쓰인 리본이 빠짐없이 매달려 있다.

자유의 다리를 지나 오른 전망대 위에서는 딸 김 모(10)양과 함께 임진각을 찾은 김 모(42)씨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 지난 28일 오후 파주 임진각 전망대에서 시민들이 북녘 땅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이소정 기자

김 모 씨는 “어제 정상회담도 있었고 아이에게 임진각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어서 찾았다”며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하며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딸을 바라봤다.

김 모 양도 밝은 표정으로 “어제 학교에서 TV로 정상회담을 봤다.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전망대 망원경을 연신 들여다보며 넓게 트인 임진각의 풍경을 감상하던 프랑스에서 온 A(38)씨는 “어제 정상회담을 정말 감명 깊게 봤다. 오늘 임진각을 간다고 파리에 있던 어머니께 말하니 위험한 곳이라고 했다”며 “묻지마 테러가 일어나서 수백 명이 죽는 파리보다 안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이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평화를 이루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A씨와 이야기를 마칠 즈음 도라산역을 다녀오는 관광열차가 햇살을 등지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경의선 철도를 연결한다는 판문점선언이 이행된다면 경의선은 휴전선 아래 도라산역이 아닌 원래 그 이름처럼 서울과 신의주를 이을 수 있게 된다.

전쟁과 평화의 경계선이 흐릿해진 지금, 파주는 전쟁의 분계지점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희망 도시로 모습을 바꾸고 있다. 이날 임진각에는 따뜻한 봄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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