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선대회장 처와 두 딸 '상속회복청구' 소송 제기
"속아서 합의했다"…유언장 둘러싼 진실공방 예고돼
상속인 인감증명 날인된 합의서 뒤집기엔 역부족 전망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양어머니인 김영식 여사를 비롯한 두 여동생으로부터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LG가의 상속 분쟁이 재계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소송의 법적 효력이 미미해 구 회장의 경영권 방어엔 문제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나, 소송 배경과 이번 사건이 미칠 파장 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양어머니인 김영식 여사를 비롯한 두 여동생으로부터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LG가의 상속 분쟁이 재계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소송의 법적 효력이 미미해 구 회장의 경영권 방어엔 문제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나, 소송 배경과 이번 사건이 미칠 파장 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워치= 소미연 기자] LG가의 '인화(人和) 경영'과 '장자(長子) 승계'는 창업주부터 75년간 대를 이어온 가풍이다. 때문에 최근에 휘말린 가족 간 소송도 법정 공방이 시작되기 전 원만한 합의를 이룰 것이란 재계의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상황은 사뭇 다르다. 소송을 제기한 고 구본무 전 회장의 아내 김영식 여사와 두 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나 피고인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나 물러설 기미가 없다.

본 소송의 정식 명칭은 상속회복청구 소송이다. 쉽게 말해, 구본무 전 회장이 보유했던 ㈜LG 지분을 법정 규정에 따라 배우자 1.5 대 자녀 1인당 1의 비율로 다시 분배하자는 게 세 모녀의 요구다. 문제는 상속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이번 재판의 초점은 '상속권 침해'에 있다. 소송이 참칭상속인을 대상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구광모 회장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가로챈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것과 같다.

참칭상속인은 법률상 상속권이 없는데도 고의로 상속재산을 점유하거나, 상속결격자가 상속인으로 지위를 보유한 자를 말한다. 김 여사 측은 구본무 전 회장의 유언장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두 딸과 함께 오랜 기간 고민한 끝에 소송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경영권 분쟁이라는 일각의 해석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상속 절차상 문제를 바로잡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로 구본무 전 회장을 큰아버지로 불렀다. 큰아버지의 양자로 입적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2004년이다. 구본무 전 회장이 외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되자 그룹 승계를 위해 조카를 양자로 들이며 장자 승계 전통을 이었다. 따라서 구본무 전 회장의 작고 후 경영권 관련 재산은 구광모 회장이 상속을 받았다. 세 모녀는  구본무 전 회장의 개인 재산과 부동산, 미술품 등 5000억원 규모의 유산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속 과정에서 구광모 회장은 지분 일부를 양보했다. LG가의 원칙과 전통에 따라 경영권 관련 재산인 ㈜LG 지분 모두는 구광모 회장에게 상속돼야 했으나, 세 모녀의 요청을 받아들여 구연경 대표와 구연수 씨가 각각 2.01%(당시 약 3300억원), 0.51%(당시 약 830억원)의 ㈜LG 지분을 상속받는데 동의했다. 상속은 2018년 11월에 적법하게 완료됐고, 올 연말 상속세 총 9900억원이 납부 완료될 예정이다.

때문에 LG 측에선 세 모녀의 소송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당시 상속인들 간 5개월에 걸쳐 15차례 협의를 가졌고, 이를 증명할 재산분할 합의서까지 작성했기 때문이다. 합의서엔 상속인들의 자필 서명과 인감증명도 날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다. 상속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제척기간(3년)도 이미 지났다. LG 측은 "상속재산 분할에서 상속인 간의 합의가 존중받고 있다"면서 소송 대응에 매진할 방침을 밝혔다. 

결국 쟁점은 유언장이 될 전망이다. 세 모녀는 상속 과정에서 LG 측이 구본무 전 회장의 유언을 들며 합의를 요구했으나 정작 유언장은 보여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다시 말해, 유언장이 있는 것으로 속여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얘기다. 이를 근거로 민법 제110조 사기 취소 규정을 내세웠다. 유언장에 관한 기망행위로 합의는 무효에 해당되고, 유언장이 없다는 사실을 지난해 3월 처음 인지한 만큼 제척기간이 도래하지 않았다는 게 세 모녀의 주장이다.

실제 구본무 전 회장은 별도의 유언장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LG 측은 구본무 전 회장의 유지가 담긴 메모 형태로 남아있었다가 폐기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구광모 회장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상속인들 간 합의 과정에서 유언장 존재 유무에 대한 인지가 없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 법적 구속력을 가진 합의서까지 가지고 있어 세 모녀가 상속 과정의 위법성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더해졌다. 

따라서 구광모 회장의 경영권 방어엔 문제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미칠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상속 과정에서 세 모녀의 불만이 많았다거나, 구연경 대표 남편(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의 자금난이 시발점이 됐다는 등의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불씨가 커지고 있다. 특히 세 모녀가 안팎의 비판을 감수하고 권리 주장에 나선 것은 LG가의 가부장적 가풍, 장자 승계 문화에 대한 반발로 해석될 수 있다고 재계는 진단했다. 

결과와 무관하게 이번 소송은 LG가에서 여성들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사건으로 기록됐다. 현재 사건은 서울서부지법 민사11부에 배당됐다. 세 모녀의 대리인으로는 헌법재판관을 지낸 강일원 법무법인 케이원챔버 대표변호사와 법무법인 로고스의 배인구·조영욱·성주경 변호사가 나섰다. 구광모 회장 측 대리인으로는 법무법인 율촌의 강석훈 대표변호사와 김근재·김성우 변호사가 선임됐다. 양측의 본격적인 공방은 6개월 뒤 전개될 예정이다.

소미연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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