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바쁜 현대인들에게 뉴스는 흘러가는 소식과 같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뉴스가 나와도 놓칠 가능성이 있다. <뉴스워치>에서는 이번 주에 지나간 뉴스 중 지나칠 수 있는 정보를 상기하고자 기획 코너 [Re워치뉴스]를 마련했다.

글로벌 경제 상황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우려가 올해 신년사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국내 10대 그룹의 신년사에 언급된 키워드를 조사한 결과 '위기(29회)'가 급부상하고, 비슷한 의미의 '어려움(15회)'도 랭크됐다. 때문에 기업 10곳 중 9곳은 올해 경영계획을 '현상 유지' 또는 '긴축'으로 방향을 잡았다. 기업 240개사(고용인원 30인 이상)를 대상으로 경영전망을 조사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들의 자금 상황이 '어려울 전망(50.5%)'이라며 대책 마련의 시급성을 알렸다.  

◆ 재계 2023년 경영 화두는 '혁신'과 '미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각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각사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의 신년사에는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책이 담겼다. 핵심은 혁신과 경쟁력 강화다. 혁신을 통해 조직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고, 신사업 발굴·개발로 미래 먹거리와 미래 고객을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 침체에도 성장을 위한 미래 투자는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과감한 도전이자 변신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구성원을 '프런티어(개척자)'로 지칭하면서 "이제는 기업도 관계가 중요한 시대다. 나를 지지하는 '찐팬'이 얼마나 있는지, 내가 어떤 네트워크에 소속돼 있는지가 곧 나의 가치다"라고 말했다. 관계 형성을 위한 신뢰 구축을 강조하며 "이해관계자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돌아보고, 무엇을 하면 좋을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민하고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새로운 국가 및 시장 발굴 등 관계와 네트워크 확장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최 회장은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장도 찾아나서야 한다"면서 "SK를 포함한 국내 기업들이 힘을 모으고 있는 2030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도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을 계기로 관계의 범위를 넓히자는 의미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고객가치'를 화두로 삼고 "2023년은 '내가 만드는 고객가치'를 찾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모든 구성원이 LG의 주인공이 돼 고객감동을 키워가야 한다"고 당부의 메시지를 냈다. 고객가치 실천을 위해 노력할 때 LG가 고객으로부터 사랑받는, 영속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게 구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고객 감동을 위해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강조해왔다. 올해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고객경험을 목표로 사업 확장을 예고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새로운 롯데'를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한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 미래 경쟁력 창출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롯데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생존을 위해 자기 혁신은 필수 불가결하며, 회사를 성장하게 하는 열쇠 또한 혁신하는 용기다'라는 말은 인용해 "함께 도전하고 노력한다면 올해 새로운 롯데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새로운 영역의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노력해야 한다"며 "단순히 실적 개선에 집중하기 보다 기존의 틀을 깨부수고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임직원 개개인의 끊임없는 혁신을 강조했다. 긴 안목으로 10년, 20년 후를 바라보며 기업가치를 높이고 고객 삶의 변화와 우리 사회를 더 이롭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 달라는 게 신 회장의 주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별도로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대신 경영진 40여명과 신년 만찬을 함께 하며 사업 전망 및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서 총수 주재 사장단 신년회는 7년 만이라는 점에서, 자리가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실제 이 회장은 통상 현장 경영을 새해 첫 일정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올해는 경영진과 머리를 맞대며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만큼 대내외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자 삼성의 비상경영을 알린 것과 같다는 해석이 나온다.

◆ 은행권, 고객 중심 경영-디지털 역량 강화

시중은행들은 신년사에서 고객 중심 경영과 디지털 역량 강화를 2023년도 위기 극복을 위한 키워드로 꼽았다. 사진은 지난 3일 서울시 중구 소재 롯데호텔에서 열린 범금융 신년인사회 장면. /사진=연합뉴스
시중은행들은 신년사에서 고객 중심 경영과 디지털 역량 강화를 2023년도 위기 극복을 위한 키워드로 꼽았다. 사진은 지난 3일 서울시 중구 소재 롯데호텔에서 열린 범금융 신년인사회 장면. /사진=연합뉴스

신년사에 나타난 2023년도 은행권의 화두는 디지털 역량 강화, 취약차주·중소·소상공인 보호, 고객 가치 최우선으로 요약된다. 이 같은 화두의 기저에는 현재의 경영 현실을 '극심한 위기상황'이라고 인정하고, 이를 반드시 극복해서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변화되는 시장 환경에 맞춰 성장동력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깔려있다. 

시중은행들은 2023년을 '극심한 위기의 한 해'로 규정했다.

신한은행은 "물가·환율·금리의 3高와 에너지, 안보, 공급망 등 여러 차원의 위기가 상호 증폭하는 다층적 복합위기 시대"라고 밝혔다. KB국민은행은 "소비·투자·수출이 모두 부진한 '트리플 침체기'를 시작으로 '경제의 빙하기' 도래"라고 전망했고, 우리금융그룹은 "R의 공포의 현실화"라고 우려했다. 하나은행도 올해 경제를 글로벌 공급망 교란, 기후 위기, 시장 변동성 확대, 인플레이션 심화, 건전성과 유동성 위기로 요약했다.

이 밖에도 수협은행은 지속적인 금리 상승과 경기침체의 장기화, 금융권 디지털 경쟁 심화로 설명한데 이어 새마을금고도 연이은 금리 인상과 부동산 시장 경착륙 우려를 지적했다.

은행권은 이 같은 복합위기 극복 전략으로 '고객'에게 주목했다.

신한은행은 "'고객 중심'의 가치는 더욱 발전시키고 고객과 사회의 견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밝힌 뒤 그 실천방향으로 취약차주·소상공인·한계기업에 대한 시의 적절한 지원책 제공, 고객 중심 내부통제 체계 정립,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한 신용평가 모형 개발,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내세웠다. 또한 디지털 분야에서도 "더 쉽고 편리한 고객 중심의 금융 플랫폼" 구현을 통해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합 관리하는 혁신을 통한 고객 일상에 스며드는 금융"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국민은행은 '최고의 고객 경험 제공'을 강조했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영업망에서 KB국민은행이 갖는 장점을 기반으로 스타뱅킹, 리브 넥스트, KB Wallet, KB부동산 등과 같은 플랫폼 서비스 확대, 모바일 화상상담 서비스 확대,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데이터분석 고도화 등을 통한 차별적인 고객 가치 제공을 화두로 꺼냈다.

우리은행도 "은행의 이익보다 고객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우리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는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 제조·판매돼야 한다"며 고객 감동을 올해 첫 번째 경영 화두로 꼽았다.

하나금융그룹은 "취약한 고객 기반을 비롯한 우리의 약점 보완"을 첫 번째 과제로 삼았다. 그 방편으로 비은행 계열사 경쟁력 강화를 통한 은행·비은행 토탈 금융서비스 제공과 고객에게 보다 편리한 금융 서비스 제공을 위한 디지털 금융혁신을 꼽았다.

수협은행은 올해 고객 확장 전략을 제시했다. 수협의 고객 확장 전략은 기존 어업인·수산업 고객들의 수익센터 역할 강화를 통해 전통적 고객층을 지키고,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주거래은행 고객을 확대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은행·비은행 계열사 간 시너지 확대도 이번 신년사에서 제시된 핵심 아젠다다. 하나은행, 수협은행, IBK기업은행은 올해 적극적인 M&A를 통해 핵심 은행과 비은행 금융계열사와의 시너지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다짐했다.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은 자체 비금유계열사와의 시너지 모색과 함께 IT분야에서의 역량 강화 방침을 밝혔다.

◆ 건설사 수장들 이구동성 "살아남는 게 우선"

부동산 시장은 고금리, 미분양 속출 등 위기에 직면해 있다./사진=연합뉴스
부동산 시장은 고금리, 미분양 속출 등 위기에 직면해 있다./사진=연합뉴스

건설사 수장들은 금리 인상과 미분양 속출에 경고등을 밝혔다.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게 2023년도 신년사의 주요 키워드로 삼았다. 극복 방안으로는 신사업 확대, 안전관리 강화 등을 제시했다는 게 5일 업계의 설명이다.

올해는 특히 부동산 시장이 직면한 위기 상황을 진단하는 건설사 대표들이 많았다. 한성희 포스코건설 대표이사 사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여러 악재가 동시에 발생하는 퍼펙트스톰의 위기가 올 것이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윤영준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도 "심화하는 대내외 불확실성과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흥건설과 대우건설의 첫 합동 시무식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정원주 중흥그룹 부회장은 "건설시장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지만, 임직원 모두 똘똘 뭉쳐 거센 비바람을 슬기롭게 헤쳐 나간다면 대우건설은 비가 그친 후 더 단단해진 땅을 딛고 더 힘차게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안전 관리 강화도 많이 언급됐다. 박현철 롯데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은 "안전보건 관리체계 강화, 윤리경영·준법 경영 등 기본적인 경영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철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은 "안전이 우리 회사 경영 최우선 가치임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위기 속 대안으로 신사업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오세철 사장은 "지난 2년간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설정하고 신상품, 사업 고도화 등 다방면으로 성장 기회를 모색했다"며 "탄소 감축 기술 개발을 확대하고 국내외 사업장과 현장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등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윤영준 사장은 "가장 주목할 것은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원전 기술 및 해외 신시장 개척이다"라며 "국내외 메가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해 수주 성과는 2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를 높은 도약을 위한 준비의 해라고 밝힌 박경일 SK에코플랜트 사장은 "지난해까지 신속한 비즈니스 모델 전환을 이뤘다면, 이번 해는 우리가 이미 확보한 자산(Asset)을 기반으로 혁신 기술 내재화 및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 등 내적 성장을 통한 미래 경쟁력 확보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소미연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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