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소식이 이슈의 중심일까? 워낙에 많은 소식들이 전해지다 보니 화제의 중심에 선 이슈가 궁금해진다. <뉴스워치>에서는 일요기획으로 [똑똑 키워드] 코너를 마련했다. [똑똑 키워드]에서는 한주의 화제 이슈를 키워드로 정해 살펴봄으로써 누구나 쉽고 알기 쉽게 풀어봤다.

똑똑 키워드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똑똑 키워드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뉴스워치= 최양수 기자]  최근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키워드가 ‘청와대’(靑瓦臺·Cheong Wa Dae)다. 청와대 이전 문제로 인해 각종 매스 미디어(Mass Media)에서 연일 관련 소식이 전해졌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어떤 곳일까?

한국 정치의 중심인 청와대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심장부이자 수뇌부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기거하는 대통령 관저이자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헌법기관으로서 흔히 대통령의 공간이라고 알고 있다.

청와대는 별칭으로 블루 하우스(Blue House)라고도 부른다. 청와대의 상징은 푸른 청기와다. 청와대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도 본관의 푸른색 청기와일 것이다. 북악산(北岳山)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청와대 본관에는 청기와와 곡선의 지붕이 아름답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집무실·접견실·회의실 등이 있는 본관, 영빈관, 대통령관저, 수궁터, 상춘재, 녹지원, 대통령비서실, 춘추관, 무궁화동산, 효자동사랑방, 칠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청와대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청와대 자리가 위치한 역사의 시작은 고려(高麗)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당시에도 이곳은 명당(明堂)으로 주목받았다. ‘도선비기’(道詵秘記)에 따르면 고려 수도(首都) 송악(松岳)은 그 기운을 삼각산(三角山) 즉 한양(漢陽)에게 빼앗긴다고 해 청와대 자리가 눈길을 끌게 됐다.

청와대의 역사는 고려 숙종(肅宗) 때인 1104년 서울에 남경(南京)을 설치하고 궁궐(宮闕)을 만들었는데 완공된 후원으로 사용되던 ‘이궁(離宮)’에서 시작된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조선(朝鮮)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나라를 세운 뒤 새 수도로 정한 곳은 한성부(漢城府)였다. 이후 1394년 새 궁궐을 지었는데 그 장소가 고려 남경의 궁궐터 근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연무장(鍊武場)·과거장(科擧場)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경복궁(景福宮)이 불에 탄 뒤 오랫동안 방치됐다가 고종(高宗) 때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주도 하에 경복궁을 재건하고 신무문 밖,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후원을 만들었다. 

이 집은 그동안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고 그때마다 명칭도 바뀌었다. 원래 이 집은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의 식민통치를 받던 1927년 일제에 의해 헐리고 1937년 5월 7일 ‘조선총독관저’로 건축됐다.

일본군국주의(日本軍国主義)는 조선민족의 혼이 담겨져 있는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를 세운 다음 경복궁 뒤에 총독관저를 지었던 것이다. 이 집의 최초 주인은 일제의 제7대 조선총독인 미나미 지로(南次郞)였다. 그 후 일제의 8, 9대 총독이 이 집에 머물렀는데 8·15 해방과 더불어 그 주인도 바뀌었다. 

이 관저는 해방 후에도 미군정(美軍政) 치하에서 관저로 사용했다. 1945년 9월 8일 미군정 남한 주둔군 사령관으로 서울에 도착한 미합중국 육군 중장 J.R. 하지(Hodge, J.R.) 장군이 이 집에 들어와 1948년 8월 24일 우리나라를 떠날 때까지 3년여 동안 이 집에서 거주했다.

이어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과 더불어 초대 대통령으로 피선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과 그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이 집의 주인이 되었다.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경무대’(景武臺)라고 명명하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한 후 이승만 대통령이 4월 28일 이 집을 떠날 때까지 12년 동안 경무대라 불렸다.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고 이후 새롭게 대통령이 된 윤보선(尹潽善) 대통령은 1960년 12월 지금의 이름인 청와대란 명칭으로 개명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집권한 뒤 황색이 더 귀한 색이라며 황와대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일축했다고 전해진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청와대 구조는 1층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고 2층은 대통령 가족의 생활공간이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총독부 관저로 지어진 건물이었던 만큼 건물이 협소하고 노후화됐다는 지적이 나와 박정희 정권 때 대대적인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구본관을 다시 리모델링했다.

이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때 22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의견을 모아 1991년 9월 지금의 본관과 관저, 춘추관을 신축했다. 그리고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때 옛 본관 건물을 모두 철거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참모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본관 구조를 바꾸는 공사를 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때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5년 만들었던 전시 대피 시설을 2003년 수리해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지하벙커)을 만들었다.

이후 이명박(李明博) 대통령,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을 거쳐 문재인(文在寅) 대통령까지 입주한 대한민국 근현대 정치사의 중심이었다.

윤석열(尹錫悅)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시 용산구 국방부 청사 자리로 이전하고 현재의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공약을 실천할 것으로 예상돼 청와대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양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