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이우탁 기자] 미래의 메타버스적 시스템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허구'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그것은 개인적 혹은 집단적 쾌락과 이익을 제공하는 체계, 물질과 정신, 선인과 악인, 승자와 패자들로 유기적으로 구조화된 어떤 것이다.

그것을 구성하는 각각의 '허구'는 현실세계의 자본주의적 논리와 체계로부터 영향 받거나 그것에 의지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실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그런데 대중화의 한계 극복에 필요한 메타버스적 '허구'의 견고함은 실력과 영향력을 겸비한 관련 분야의 리더들이 과학기술이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구현한 그 시스템을 필연적인 비전으로 설파하면서 대중의 세력을 포섭할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가를 결정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러한 전망을 말하는 그들은 과학기술이 제시하는 메타버스적 진리 속에 답을 찾는다. 그들은 과학기술에서 잉태될 메타버스적 시스템의 장밋빛 전망을 조정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경쟁성과 확장성에 이끌려 자신들의 비전이 지닌 필연성과 특수성을 강조해야 하는 논리 구조 안에 놓여 있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메타버스적 시스템에 기반한 그 비전이 현실세계의 다른 여타 비전과 미래의 주도권을 놓고 서로 경쟁하고 있으며, 하나의 비전이 대중의 지지를 장악하게 될 때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적 삶 속에의 확산됨으로써 '일반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소식통에 따르면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앞으로 5년 안에 기존의 페이스북을 메타버스 기업으로 변모시키겠다는 비전을 천명했다고 한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새로운 비전과 관련해, 메타버스가 다양한 많은 기업과 산업 전반에 걸친 '비전'이며 모바일 인터넷의 후계자라면서 그 미래상은 사람들이 인터넷 안에 스스로를 구체화해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페이스북이 추구하는 메타버스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PC, 모바일, 게임 콘솔 등 모든 컴퓨팅 플랫폼에서 접속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페이스북은 VR 제품을 개발하는 오큘러스 인수에 20억 달러를 투입하는 등 메타버스 관련 기술에 전략적인 투자를 해 오고 있으며, 지난 2019년에는 오큘러스 헤드셋을 통해 가상공간에서 아바타와 연결돼 유저들끼리 어울리고 채팅할 수 있는 VR SNS 호라이즌을 출시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과학기술적인 측면에서 메타버스의 완성도와 견고함을 향상시키는 과업이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를 비롯한 관련 분야의 글로벌 리더들이 그 동안 대중화의 한계라는 벽에 부딪혀 전 세계적으로 성장세가 기대치에 못 미쳐왔던 메타버스 분야에 어떤 생명력을 불어 넣을지는 여전히 두고 봐야 할 도전이라고 생각된다.

1993년 어느 봄날의 필자
1993년 어느 봄날의 필자

메타버스의 존재적-존재론적 한계

메타버스에 접속해서 자신의 아바타와 연결되는 인간 주체가 메타버스 안에서 느끼는 즐거운 감정 혹은 즐거움(쾌락)'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 주체의 실존적 삶에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힘든 인생을 버티게끔 해주거나 그 인생에 다시 의욕을 불어넣는 데에는 메타버스에서 경험하는 '즐거움'이 그 본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감각상의 즐거움(쾌락)에 대해 살펴보면, 어떤 사물이나 생명체를 만졌을 때 또는 '어떤 것 혹은 누군가가'에 닿거나 그 손길이 만져줄 때 즐거운 느낌이 들 수 있다. 특히 그 대상이 좋아하는 사물이나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목가적인 초원을 바라볼 때처럼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광경이 있다. 그런가 하면 파도 소리, 나무 가지 위의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 등 청각적인 즐거움도 있다.

또한 달콤한 맛은 대부분의 경우에 즐거움을 준다. 매운맛이나 쓴맛, 신맛 등도 경우에 따라서 혹은 기호에 따라서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즐거움이 된다. 치즈처럼 불쾌한 냄새가 나지만 사랑 받는 음식도 있다. 이처럼 눈, 귀, 피부, 혀, 코 등의 오관으로 느끼는 즐거움은 보편적·본능적인 이유때문에 느껴지는 것도 있고, 문화적으로 학습된 다양한 변형 주제에 기인한 것도 있다.

이들 감각상의 즐거움이 전달되는 경로는 각각 다르며 다양하다. 통틀어 '즐거움'이라는 하나의 감정으로 볼 수 있거나 시각적 쾌감, 촉각적 쾌감, 후각적 쾌감, 청각적 쾌감, 미각적 쾌감 등 다섯 가지 별개의 감정(느낌)으로 분류해서 볼 수도 있다.

메타버스로부터 이들 쾌감이 각각 서로 독립적으로 느껴지게 하거나 조합·복합되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 각 쾌감을 특징짓는 생리적 변화는 어떻게 구현되고 연결될 것인지 등 메타버스에서의 감각상 즐거움(즐거운 감정)에 관한 메커니즘들은 연구에 의해서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며, 거기에서부터 메타버스의 허구성은 실제적 '생명력'을 획득해 갈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아바타와 연결된 인간 주체의 입장에서 메타버스를 갈망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인의 발현은 의식이나 의지,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감각-감정에서 그 근원적인 에너지를 얻고 있다는 데에 있다. 때문에 메타버스라는 감각과 감정으로 직조된 인공 가상세계에서 인간은 아바타를 통해 주체로서의 즐거움을 확장·변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현실세계의 인간 주체가 감각과 감정의 그물망으로 이뤄진 메타버스를 통해 자신의 존재성과 삶을 확장하고 변화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메타버스가 태생적으로 가상세계이듯이 그 주체의 존재와 삶 역시 메타버스와의 관계 안에서는 허구적인 것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감각에 의해 제공되는 판타지 △감각을 즐기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현실적 주체의 소모와 마멸 △현실과 가상을 아우르는 주체의 존재성에 대한 일반화의 한계 등 이 모든 것에 대한 가능한 이해 및 해석이 메타버스에 탑승했거나 탑승할 모든 주체에게는 존재론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주관적 권리영역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메타버스와 연결된 인간 주체가 메타버스 내에서 하나의 '존재'가 아닌 이리저리 변화하는 과정으로서의 감각과 감정에 수동적으로 의지한 채 그 흐름에 갇혀 떠도는 유령같은 정념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따라서 메타버스와 연결된 주체가 느끼는 즐거움은 개인적-주관적 통합체가 아닌 개별체적 허구로 환원된다. 결국 그들이 생각하는 메타버스의 즐거움은 주관적이면서 보편적인 어떤 것으로 통합된 것이 아닌, 개별체적인 것이 단순히 배열·조합되거나 순전한 합체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메타버스와 연결될 때 수동적인 존재 양상을 보이는 주체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틀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감히 말하겠다. "왜냐하면..."

[다음 편에 계속]

이우탁 경제산업부 부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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