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케미칼 관계자 “그런 일 없다” 해명...진실공방 불가피

▲ 사진출처= 포털 '다음' 로드뷰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한솔케미칼에 근무하던 한 근로자가 백혈병에 걸린 후 시민단체와 함께 산재신청에 나서자 “외부세력을 움직여 산재신청을 하지 말라”는 회사 관계자의 강요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이모씨(32·남)는 한솔케미컬 완주공장에서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공장에 납품되는 전극보호제, 세정제 등을 생산해 왔다. 또한 이모씨는 백혈병 투병생활을 해오던 중 지난 3일 사망했다.

전극보호제와 세정제에 대한 명확한 자료가 있지 않기 때문에 백혈병과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반도체 세정제에 불산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치명적인 독성이 상당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불산은 치명적 독극물로 쥐약과 살충제의 주성분이자 화학무기인 신경 독가스의 주성분이다.

지난 2012년 한솔케미칼에 입사한 이씨는 잔업을 비롯해 심할 경우 월 100시간 근무하는 등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미래를 건설하겠다는 각오로 한솔케미칼에서 열심히 근무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감기 증상이 자주 발생하자 이씨는 그때마다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31일 안타깝게도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이씨와 그의 가족들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한 것이다. 이씨는 곧바로 투병생활에 들어가고 결국 한솔케미칼에서 퇴사를 해야 했다. 한솔케미칼 측에서는 3개월치 봉급과 함께 임직원들의 2천만원 기금을 마련해 이씨에게 전했다.

투병생활을 하던 이씨는 자신의 백혈병 진단이 한솔케미칼 근무와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올해 2월 산재 신청을 준비했다.

▲ 지난 4월 28일 한솔케미칼에서 근무하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모씨와 민주노총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사진출처= 민주노총 전북본부

이씨의 딱한 사연을 접한 반도체노동자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삼성노동인권지킴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 21개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전자산업 백혈병 산재 인정 촉구 노동시민사회단체’를 결성, 지난 4월 28일 기자회견을 가진 후 산재 신청을 접수했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에 이씨의 산재를 조속히 인정하고 전자산업에 대한 감시를 확대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문제는 산재 신청 전날인 4월 27일 한솔케미칼 측이 이씨와 그의 가족들에게 찾아와 “시민단체와 함께 산재 신청하지 말라”고 강요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씨가 산재를 신청하기 전날, 한솔케미칼 관계자가 이씨와 부친에게 찾아와 시민단체와 함께 산재신청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을 알려 왔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러한 요구는 산재 신청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똑같다.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피해자 입증책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개인이 산재를 스스로 입증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민주노총 등을 끼지 말고 산재신청하지 말라는 것은 ‘산재신청을 하지 말라’는 말과 똑같다”고 비난했다.

개인이 산재에 대해 입증하기가 어려운 것은 회사에서 관련 증거 자료를 순순히 내놓을 리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들과 함께 산재를 신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민단체들이 나서야 회사 측에서 그나마 산재 관련 증거를 제출하는 등 증거확보가 용이하다.

이에 대해 한솔케미칼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 측 그 어느 누구도 이씨에게 시민단체와 산재신청하지 말라고 말한 사람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이씨가 생전에 그런 말을 분명히 했고, 유가족들과 삼자대면하면 확인 가능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또한 이씨는 생전에 한솔케미칼에서 안전장비와 안전에 대한 교육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다루는 것들이 어떠한 물질인지, 위험성은 어느 정도인지 자세한 정보 없이 작업했고 이들 물질을 혼합하는 과정에서 용액이 눈과 피부에 튀고 분진이 호흡기를 통해 흡입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는 것이다.

▲ 민주노총 전북본부에서 제시한 한솔케미칼 이모씨 근무시간표 사진출처 =민주노총 전북본부

민주노총 관계자는 “한솔케미칼은 산재신청인 측의 현장조사 참여를 거부했고,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 등 작업현장의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았다”면서 “한솔케미칼 측은 이씨의 개인적인 질병으로 작업환경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이어 “피해자 이모씨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왔고 이에 따라 화학물질에 장시간 노출됐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업무가 과중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솔케미칼이 이씨의 업무가 과중하지 않았다면서 내놓은 증빙자료는 이씨가 백혈병 판정을 받기 3개월 전부터의 근무시간표였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백혈병 판정 받기 3개월 전쯤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해 과다한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한솔케미칼 측에서 내놓은 3개월짜리 근무시간표 대신 과중한 업무 증빙자료로 지난 2013년~2014년 근무시간표를 제시했다.

이 근무시간표에 따르면 야근 월 100시간의 중노동으로 나타나 업무가 상당했고 야근 등이 빈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한솔케미칼 측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모두 제출했다”면서 “근로복지공단에서 원하는 자료는 언제든지 제출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전북평화와인권연대에서 보내온 이창O님 응원메시지 사진출처= 민주노총 전북본부

한편, 민주노총 관계자는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접수를 받은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역학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해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줄 책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씨의 산재 역학조사에 대해 6월 27일 이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조사 중”이라며 “이 조사가 끝나고 나면 광주 근로복지공단 내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를 열게 된다”고 설명했다.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는 근로복지공단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는데 이 회의에 변호사, 노무사, 관련 의학계 인사들이 참여해 산재 인정 여부를 판정하게 된다.

한편, 이씨는 산재처리에 대한 명확한 결론 없이 이달 3일 사망했다. 이씨의 사망 이후 유가족들은 삶이 피폐해졌다. 이씨는 사랑스런 아내와 어린 아이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 남겨진 가족들의 생활은 막막한 실정이다.

민주노총은 유가족들과 함께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겠다는 각오다. 유가족들 역시 산재를 인정받아 이씨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밝히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솔케미칼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모씨의 사망은 안타까운 것이고, 산재 역학조사와 관련해서 관계당국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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