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네 일본 TV 드라마 포스터.
아노네 일본 TV 드라마 포스터.

[뉴스워치= 칼럼] “학교 친구가 너는 이상한(変な, 헨나) 애라고 그랬어”라고 어린 여자아이가 할머니에게 말합니다. 할머니는 “잘됐네. 그건. 칭찬이야” 그러면서 상자 속 모양이 다른 쿠키 하나를 발견해 꺼내 보이자, 아이는 “이건 실패작인데”? 
“아니 이건 당첨(当たり)이야”. 
“이것만 형태가 다른데?”
“그러니 당첨이지. 가지고 태어난 걸 다른 사람에게 맡기거나 바꾸면 안 돼. 그건 네가 가지고 태어난 것에 충실하다는 의미니까.”

이건 일본의 유명한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으로 2018년, 일본의 국민 여동생 ‘히로세 스즈(広瀬すず)’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 〈아노네(あのね)〉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며 인터넷 카페를 전전하는 19살의 츠지사와 하리카는 그곳에서 알게 된 친구들에게 자기 이름을 ‘하즈레(外れ)’, 그러니까 ‘꽝’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하즈레’라고 부릅니다.

변할 ‘변(変) 자’를 쓰는 일본어 헨(変), 가왓데루(変わっている)는 주로 ‘이상하다’라고 번역되지만, 좀 뉘앙스가 다릅니다. 〈이상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의심스럽다’, ‘색다르다’ 등의 의미인데 헨(変), 가왓데루(変わっている)는 ‘変’처럼 ‘좀 다르다’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앞의 대사는 하리카가 SNS로 알게 된 ‘카논’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남자와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몸이 아파 바깥세상에 나갈 수 없는 ‘카논’에게 하루에 있었던 다양한 이야기를 SNS로 전해주는 ‘하리카’의 메시지의 시작은 늘 “아노네(あのね, 있잖아, 근데 말이야)”입니다. 아주 친한 사람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할 때 사용하는 감동사(感動詞)입니다. 소중한 추억은 버팀목이 되고 부적이 되고 기댈 곳이 된다며 어린 시절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할머니와 살았던 숲속의 트리 하우스에서의 즐거운 날들을 뒤집는 하리카의 위의 기억은 아주 많이 왜곡된 겁니다.

8살부터 12살까지 숲속에서 할머니와 둘이서 지냈습니다. 
숲속에는 학교도 공부도 없었습니다.

어른 말을 잘 듣는 남동생과 달리 어릴 적부터 질문도 많고 다루기 힘들었던 ‘하리카’를 그의 부모는 커다란 풍차가 있는 마을을 지나 숲속 깊은 곳에 있는 교육시설로 보내버립니다. ‘하리카’의 기억과 달리 8살부터 12살까지 지낸 그곳은 각종 학대가 자행됐던 시설로 지옥 같은 곳에서 같이 도망친 아이가 바로 ‘카논’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아이였던 겁니다. ‘하리카’의 기억은 ‘버팀목’이 되고 ‘부적’이 되고 ‘기댈 곳’이 되길 바라며 어른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던 겁니다.

포기하듯 모든 인간관계에서 고립된 삶을 살던 ‘하리카’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아노네(あのね)’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죽은 남편이 밖에서 데리고 들여온 아이를 정성껏 키웠지만, 그 딸은 자신이 생모가 아니라는 걸 알고 가출하였습니다. 딸을 10년이 넘게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가출한 딸을 찾았지만 이혼하여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던 집 나간 딸은 바람 핀 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자신을 양육한 거라며 엄마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며 절연을 선언합니다. 그런데 딸의 아들 또한 ‘하리카’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이상한 질문 공세로 선생들을 곤란하게 하고 학급 아이들에게는 외계인 취급을 받는 아이였습니다.

수많은 상처로 얼룩진 ‘아노네(あのね)’는 과자 상자 속 다른 모양을 한 손자와 ‘하리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며 가족이 됩니다. ‘아노네(あのね)’라는 말을 편하게 꺼내도 어색하지 않은 ‘아노네(あのね)’씨는 무슨 말이든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아노사, 여기 내 집이야?. 언제든 돌아와도 돼?”라고 묻는 ‘하리카’에게 ‘아노네(あのね)’씨는 “그럼 여긴 네 집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하리카’는 이제까지는 버려진 혼자였지만 지금부터는 내 의지로 새로운 만남을 꿈꾸며 혼자 살아보겠다고 합니다. 언제든 ‘아노네(あのね)’라고 말하면 답해주는 ‘아노네(あのね)’씨가 있어 이제 ‘하리카’의 홀로서기는 슬픈 이별이 아닌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는 봄의 설렘입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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