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소비 절약에 교육비 급감·급전창구 보험약관대출 9년 만 최고…서민경제 악화일로
민생 챙기는 각종 정책 및 물가안정 총력 절실…실질적 대책 마련 미진한 상황

가계 소비 절약의 최후 보루로 여겨지는 교육비가 급감하고, 불황형 대출로 불리는 보험약관대출이 급증하는 등 서민경제가 악화일로에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가계 소비 절약의 최후 보루로 여겨지는 교육비가 급감하고, 불황형 대출로 불리는 보험약관대출이 급증하는 등 서민경제가 악화일로에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서민경제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민생의 어려움이 드러나는 수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해도 어려움은 쉽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출 호황 등 경제회복에 대한 긍정적 신호 가운데서도 내수는 여전히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고금리, 고물가로 인해 서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라 ‘가난한 성장’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민생을 챙기는 실질적 정책은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18일, 금융권에서는 어려워진 서민경제를 여실히 드러내는 지표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날 BC카드가 발표한 ‘ABC 리포트’ 14호에 따르면 교육 분야 매출이 크게 출렁였다. 올해 2월 발생된 교육 분야 매출은 전월 대비 1.2% 상승했지만, 전년 동월 대비 2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발생한 교육 분야 소비가 급감한 원인은 지속된 고물가 영향으로 살림이 팍팍해진 이유가 꼽힌다. 실제 BC카드 조사결과 해당 기간 동안 예체능학원에서 31.5% 매출 하락이 이뤄졌고, 보습학원 26.7%, 외국어학원 26.5% 등 매출이 하락했다. 통상 교육비는 가계 소비 항목 중 감소 대상에서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지만 이 교육비가 ‘국·영·수’를 제외한 항목에서 급감한 것이다.

교육뿐 아니라 스포츠 17.0%, 펫 15.4%, 식당 11.2%, 주점 10.7% 등 주요 업종의 전년 동월 대비 매출도 10% 이상씩 감소하며 고물가 영향에 따른 가계 소비 심리 위축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날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아 발표한 보험사 보험계약대출 관련 자료 역시 팍팍한 서민경제를 체감하게 한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들의 보험계약대출 잔액은 71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말(68조원) 대비 3조원, 2021년 말(65조8000억원) 대비 5조2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보험약관대출은 가입한 보험의 해약환급금 50~90% 범위 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제도로 대출 심사가 필요하지 않고, 연체 이자나 중도 상환 수수료가 없다. 때문에 통상 급전이 필요한 이들의 창구로 통하며 ‘불황형 대출’로 불리기도 한다.

대출을 넘어 해약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 합계 보험 해약건수는 2021년 1146만6000건에서 2022년 1165만4000건, 지난해 1292만2000건으로 증가했다. 해지환급금은 통상 납입한 보험료보다 적을 수밖에 없는데, 원금 손실을 무릅쓰고 해지를 진행하는 규모가 증가했다는 점에서 서민들의 급전 수요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오 의원은 “보험약관대출과 보험 해약의 증가는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정부가 서민정책금융상품 공급 확대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물가도 크게 뛰었다. 지난 4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대표 먹거리 지표로 꼽히는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가 각각 6.8%, 6.0%나 증가했다. 국내 전체 가구 소득이 2.8% 늘었고, 높은 이자와 세금 부담으로 처분가득소득은 이보다 낮은 1.8% 증가에 그친 상황에서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것이다. 가공식품 세부 품족 73개 중 68개 물가 상승률이 처분가능소득 증가율(1.8%)보다 높았고, 농·축·수산물 물가 상승률(3.1%)도 처분가능소득 증가율보다 높았다.

이렇듯 서민경제의 팍팍함을 알리는 수치들이 계속 줄을 잇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서민을 힘들게 하는 고금리, 고물가 지속 현상을 안정화시키고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한 활성화 정책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서민경제를 위한 정책은 사실상 실종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민생 현장에서 물가 안정을 부르짖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지만, 정부는 최근 ‘물가’ 관련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올해 7곳의 지역 전통시장을 찾았지만 물가 안정에 대한 직접적 메시지는 없었고, ‘물가 점검’ 등 경제 복합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출범 이후 초반부터 주재해온 ‘비상경제민생회의’는 지난해 11월 1일 ‘21차 회의’ 이후 열리지 않고 있는 상태다. ‘비상경제민생회의’의 현장버전이라 불리는 ‘민생토론회’도 20차례 진행됐으나 이 자리에선 지역별 산업·인프라 구축 등 방안이 주로 다뤄졌다.

정부가 조용한 가운데 여야는 물가를 두고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여당에선 최근 과일 가격 급등을 두고 전 정부 때문이란 발언이 나왔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문재인 정권 때 단행됐던 최저임금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농가는 인건비 상승이라고 하는 큰 충격이 발생됐고, 이 결과 농가 수익규조가 급격하게 악화됐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상기후와 집중호우, 병충해 영향 등에 따른 수확 부진에 더해 생산비 증가 등 수익구조 악화로 인해 과수 재배를 포기하면서 과일가격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야당은 “물가 관리에 필요한 안정적인 국내 공급망 확보와 생산 기반 확충 및 농가 피해 대책은 외면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물가관리 대응이 미흡한 상황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특히 올초부터 언급된 굵직한 현안들은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금투세 폐지 등 표심에 기댄 정책들이라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윤 대통령이 ‘건전재정’을 강조하면서도 ‘민생토론회’를 이어가면서 150만명을 대상으로 국가장학금을 지급한다는 공약이나 갑작스러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공약 등을 내놓는 건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서민·소상공인 등 300만여명을 대상으로 한 신용 대사면을 두고는 여론 사이에서도 ‘도덕적 해이를 부르는 잘못된 정책’, ‘총선용 포퓰리즘’ 등 비판이 잇따랐다.

다만 대통령실과 정부는 굳이 대대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조용히 물가안정책을 고심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가장 민감한 현안인 ‘물가’를 직접적으로 언급해 이목을 모으는 것보다는 조용히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국내 경제는 올해도 어려운 가시밭길일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진다. 반도체 가격 회복 등으로 수출 호황이 이뤄지는 등 경제 회복 기조가 보이고는 있지만, 고금리와 고물가로 인해 소비 여력이 사라지고 위축되면서 내수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반도체 가격 회복으로 수출 경기는 호황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4.8% 증가한 524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내수는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월 소매판매는 내구재(-1.0%), 준내구재(-1.4%)가 감소했으나 비내구재(2.3%)가 증가하면서 전월 대비 0.8% 증가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3.4% 감소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제동향 3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내수 둔화가 지속됐으나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며 경기 부진이 완화되는 모습”이라면서도 “고금리 기조로 소비와 설비투자 부진이 지속된다”는 전망을 내놨다.

현재의 내수경제를 두고 과거 금융위기, 4년 전의 코로나19 사태 때보다도 더 심각한 장기 불황이 예상된다는 말도 적지 않다. 민생경제는 고물가·고금리 충격으로 실질소득 감소가 소비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진 상태다. 이런 탓에 수출 호황 등 경제 회복 기조에도 서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여전히 어려운 ‘가난한 성장’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편 한국경제인협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15일 ‘KERI 경제동향과 전망: 2024년 1분기’ 보고서를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을 코로나19 발생 이전 수준에 근접한 2.0%로 전망하면서도 내수회복은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하반기 이후에나 가시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한경연 측은 “장기간 고금리·고물가의 여파로 기대치에 부합하는 신속한 경기회복은 기대하기 힘들다”며 “최대수출국인 중국의 경기 부진이 장기화돼 국내기업의 수출이 일시적 회복에 그칠 경우 2.0%의 낮은 성장률마저 달성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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