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ELS 분쟁조정기준안 발표…상당수 20-60% 배상 전망
투자자는 실망·은행은 자율배상 검토…배상 시 은행이익구조엔 영향 미미

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 손실 배상과 관련한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금융정의연대 등 단체 회원들이 2월 15일 서울 감사원 앞에서 홍콩 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금융당국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당시 모습. 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 손실 배상과 관련한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금융정의연대 등 단체 회원들이 2월 15일 서울 감사원 앞에서 홍콩 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금융당국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당시 모습.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 손실 배상과 관련한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은행권은 자율배상에 대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으며, 투자자들은 배상비율을 두고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은행연합회, 증권가 등도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홍콩H지수 ELS 배상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11일, 금융감독원은 홍콩 H지수 ELS의 투자자 손실에 대해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을 종합적으로 반영, 배상비율을 결정하는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홍콩 ELS 판매 규모는 지난해 12월말 기준으로 39만6000계좌의 총 18조8000억원에 달한다. 판매사별로는 은행은 15조4000억원(24만3000계좌), 증권사는 3조4000억원(15만3000계좌)였으며, 39만 계좌(17조3000억원)에 이르는 개인 투자자 중 65세 이상 고령 투자자가 8만4000계좌(21.5%)에 달한다. 이미 1~2월 만기도래액 2조2000억원 중 1조2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으며,  2월말 홍콩 H지수 수준(5678pt)이 연말까지 유지될 경우 추가 예상손실금액은 4조6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금감원 기준안은 판매사가 투자자의 손실에 대해 0~100% 배상하도록 한다. 다만 배상비율은 ‘판매사 요인’(기본배상비율+공통가중=23~50%)에 ‘투자자별 가감 요인’(±45%)을 더하고 빼는 방식으로 정해지며, 여기에 ‘기타 조정요인’(±10%)이 반영된다.

배상비율을 판매자 요인, 투자자 고려 요소, 기타 요인 등으로 나눠 마련한다는 것인데, 금융사의 불완전판매 책임을 따지면서도 투자자의 평소 투자 성향까지 고려해 배상비율을 정하겠다는 취지다. 대표 유형을 6가지로 구분해 유형별로 40~80% 범위에서 특정 배상 비율을 제시했던 과거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와 다른 방식이기도 하다.

한층 상세히 살펴보면 판매자 요인은 기본배상비율과 공통가중으로 최대 50%까지 배상비율이 정해진다. 우선 기본배상비율은 적합성 원칙이나 설명의무 위반 중 하나를 어겼을 경우는 20%, 부당권유 금지를 어길 경우 25% 배상비율을 적용, 이를 모두 어길 경우는 40%의 배상비율을 책정하는 식이다. 공통가중은 판매 금융사의 내부통제 부실 책임에 따라 은행은 최대 10%, 증권사는 최대 5%의 배상비율을 정했는데 내부통제 부실 정도에 따라 최대 배상비율에서 차감된다. 온라인으로 상품에 가입한 경우는 은행 5%, 증권사 3%의 최대 배상비율을 책정했다.

투자자별 고려요소 역시 최대 45% 배상비율이 책정됐다. 투자자 성향에 따라서 판매자 요인 배상비율에서 투자자 고려 요소를 더하거나 빼는 식이다. 이에 따라 고령자 등 금융취약계층은 +5~15%p, 예·적금 가입 목적으로 금융회사를 방문했던 경우 +10%p, ELS 첫 투자인 경우 +5%p 등으로 배상 비율이 높아지게 된다. 

반대로 ELS에 반복해서 고액을 투자했고 누적 수익도 이번 홍콩H지수 손실금을 넘어선 경우 등은 투자자 고려 요소가 마이너스(-)로 책정된다. 금융사의 불완전판매가 인정되더라도 투자자 성향에 따라 배상비율이 ‘0%’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금감원이 제시한 사례 중 ELS 가입 경험이 62회에 이르는 50대 중반 남성 A씨의 경우를 보면 보다 쉽게 알 수 있다. A씨는 그동안 ELS 투자로 얻은 누적 수익이 이번 홍콩H지수 ELS 손실을 초과한다. 은행 설명의무 위반과 내부통제 부실 등 판매사 요인으로 배상비율이 35%가 책정되지만, A씨의 ELS 상품 가입 경험 62회(-10%p), 손실 경험 1회(-15%p), 가입급액 5000만~1억원 이하(-5%), ELS 누적이익이 금번 손실규모 초과(-10%p) 등 투자자 고려요소가 적용될 시 -40%가 되며 배상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브리핑을 통해 “개별 사실관계에 따라 구체적인 배상비율은 달라질 수 있다”면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 손실 배상비율은 다수 사례가 20∼60% 범위내에 분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이전 DLF사태 당시 손실 배상 비율은 20∼80%, 이중 6개 대표사례는 40∼80%였다.

이같은 금감원 발표에 은행권은 공식적 입장을 내놓지 않았고, 은행연합회 차원의 발언만 나왔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11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사모펀드 사태 이후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도 통과되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또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굉장히 죄송스럽고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금감원이 발표한 분쟁 조정기준안을 토대로 각 은행에서 자체적으로 점검해 수용 여부와 함께 ‘대내외적으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라는 과정에 들어간 걸로 생각이 된다”며 “시장과 소비자, 당국과 소통의 출발점이어서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조 회장은 은행이 소비자 중심의 영업 문화, 고객 중심의 영업 위주의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며 자율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행권의 ELS판매 금지 등에 대해서는 “이런 문제가 나올 때마다 상품 판매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어느 상품을 파느냐 안 파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시스템을 갖춰 결국은 자산 관리 측면에서는 고객의 선택권을 점점 주어지는 방향으로 가야 된다”며 불완전판매 방지 대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피력했다.

11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린 홍콩 H지수 연계 ELS 대규모 손실 관련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11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린 홍콩 H지수 연계 ELS 대규모 손실 관련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100% 배상을 주장해왔던 투자자들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투자자들은 DLF 때보다 적은 배상안에 불만을 토로하는가 하면 은행의 불완전판매 정황 등을 언급하며 배상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산항목 중 예적금 가입목적 입증절차나 기타조정항목에 따른 차감요인이 아직 불확실한 점, ELS 가입금액 5000만원 초과분부터 배상비율을 차감한다는 등 기준에 대한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온라인상 커뮤니티 등을 통해 “어떤 근거로 이런 비율을 정했는지 납득이 안되고 신뢰도 없다”, “피해 입은 투자자들과의 접촉 등 금감원은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았다”, “금감원 ELS 판매 승인 내주고 여태 일 안하다가 이제서라도 일좀 할줄 알았는데 역시나”라는 등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금감원 기준안이 판매사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며 오는 15일 대규모 집회를 열고 100% 전액 배상을 주장할 것을 예고했다.

반면 ELS 가입 투자자들 외 일반 여론 사이에서는 자기책임원칙을 주장하며 배상이 충분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은행권은 고심 중이다. 금감원 발표 후 공식적 입장은 내놓지 않았지만 은행들은 발빠르게 자율배상 법률 검토에 착수한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꾸준히 ‘사적화해(자율배상)’을 권고해온 데다 금융사들이 선제적으로 자율배상을 실시할 시 배상 수준만큼 금융당국의 제재를 감경해주겠다는 당근책을 제시한 영향도 있다.

은행들은 손실이 확정된 건에 대해 ELS 사후관리 전담팀(TFT)을 중심으로 예상 배상금액을 산출할 예정이다. 상품 판매 시 진행된 녹취본을 재청취하고 은행 자체적으로 배상비율과 금액을 산정하는 등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금감원이 예상한 배상비율 20~60%로 진행될 시 현재기준에서 손실률 53.5%를 반영하면 은행들은 1조5000억원~4조6000억원 수준의 피해액을 배상하게 된다. 지난해 1분기 국내 4대 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 4조9000억원대와 맞먹는 규모다.

만약 은행이 자율배상 실시를 결정한다면 과정은 현업 부서 검토를 통해 법무법인의 법적 검토가 이뤄지고 이사회 결의 등을 거치게 된다. 또 은행들은 24만여 계좌를 일일이 들여다봐야 한다. 규모 및 투자자 유형이 각기 다른 탓에 개별 가입자에 일일이 연락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 과정만도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배임 가능성은 은행들의 자율배상 결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은행이 ELS상품 가입자에 대해 자율 배상할 시 이는 판매사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만약 향후 제재나 소송 등 경우를 감안한다면 의사결정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주들이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할 가능성도 더해진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기준안을 마련한 만큼 은행들도 이 점을 고려하겠지만 배임 여부 등 감안해야 할 사안이 많고 배상결정 시에도 가입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우선은 대표적인 사례들이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어떻게 조정되는지 지켜보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대표사례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는 다음달부터 시작된다. 금감원은 대표 사례에 대한 분조위를 통해 분쟁을 조정하는데 분조위의 조정결정과 당사자 수락 후 조정 성립까지는 2~3개월이 소요된다. 통상 대표사례 외 분쟁 민원은 자율조정 등의 방식으로 처리되기에 은행들은 우선 분조위 과정과 조정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소송 가능성도 있다. 자율조정 과정에서 은행과 가입자의 의견이 엇갈릴 경우에는 소송전으로 이어진다. DLF 사태보다 원만한 합의가 어려울 수 있다. DLF사태 당시는 가입자의 90%가 분쟁조정 절차에서 합의했지만, 이번 홍콩H지수 ELS의 경우 투자자 수가 많고 판매금액도 DLF때의 10배 이상이라 대규모 소송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홍콩H지수 ELS 손실에 따른 배상 문제를 잘 넘긴다면, 은행권 이익구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증권가 전망이다.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후 NH투자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각 은행들의 예상 배상액을 추산했다. 정준섭 연구원은 해당 보고서에서 ‘투자자 손실률 50%, 손실 배상비율 40%’로 단순 가정해 은행별 상반기 예상 배상액을 산출한 결과에 따르면 홍콩H지수 ELS 최다 판매사인 KB국민은행이 1조원, 신한은행 3000억원, 하나은행 1500억원, 우리은행 50억원 수준 등으로 추산됐다. 이와 함께 정 연구원은 “배상 규모가 관건이겠지만 ELS 손실 배상은 어쨌든 일회성 요인”이라면서 “주주환원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예상 배상액이 가장 큰 KB국민은행의 경우 KB금융지주의 지난해 연간 충당금 적립액이 3조1000억원에 달하는 점을 들어 ELS 손실 배상액 상당 부분은 충당금 감소로 상쇄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은행들의 올해 연간 이익이 ELS 손실로 인해 크게 악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한화투자증권,  SK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등 다른 증권사들도 투자자 특성을 중립적으로 가정할 시 배상비율은 30%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ELS 손실 배상이 지난해 연말부터 예상된 점을 들어 은행 주가나 주주환원율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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