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칼럼] 미신과 민족주의는 서로 다른 현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우리 사회 저변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둘 다 뿌리 깊은 감정을 활용하여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사회에 정치적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미신은 한국의 전통신앙인 무속과 혼동되어 쓰이기도 하는데, 종종 비합리적인 신념 및 관행과 연관됐지만, 민족주의는 자국에 대한 자부심, 단결 및 충성심을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강력한 세력의 수렴은 전 사회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초자연적인 인과관계에 대한 믿음으로 정의되는 미신은 종종 의식, 금기, 징조로 나타난다. 역사를 통틀어 무속은 위안과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설명,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제공해왔다. 숫자 4와 13의 의미에서 보듯 미신은 문화에 따라 다양하며 이는 인간 신앙체계의 다양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진보한 현대 사회에서도 미신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일상생활, 전통, 문화적 서사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한편 민족주의는 공유된 국가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정치적 이데올로기이며, 종종 자신의 국가, 문화, 역사 및 업적에 대한 자부심을 특징으로 한다. 민족주의는 시민들 사이에 소속감과 연대감을 조성할 수 있지만, 극단적으로 받아들여지면 배타적인 태도, 외국인 혐오증, 갈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요즘 파묘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 '파묘'의 후반부를 이끄는 건 쇠말뚝 이야기다. 일제는 한반도 강점기에 우리 땅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 그리고 영화에선 이 쇠말뚝이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이와 무관하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와 관련한 문헌이나 기록이 없어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지 못했고 오히려 토지측량 과정 등에서 박은 것들로 보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은 한국과 달리 풍수 사상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고, 단지 건축설계를 할 때 주택의 배치 방향이라던가 현관 위치 정도에만 풍수를 적용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화는 일제의 혈침은 99%가 측량용 쇠말뚝이라고 하면서도 1%는 진짜일 것이라 단정하며 쇠말뚝 제거를 고집하고 있다. 이 영화는 결국, 한국 관객들에게 민족의식과 반일감정을 부추겨 막연한 감정적 만족만을 제공할 뿐이다.

미신과 민족주의의 얽힘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경우에는 민족주의적 서사에 문화적 정체성과 유산을 강화하기 위해 미신이 포함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부 국가에서는 민속, 신화, 미신을 국가 정체성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강조하고 이를 활용하여 시민을 통합하고 다른 국가와 차별화할 수 있다. 더욱이, 정치 지도자들과 운동가들은 역사적으로 미신과 민족주의적 열정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하고 자신들의 의제를 발전시켜왔다. 종종 미신과 민족주의적 수사로 가득 찬 선전은 강력한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켜 시민들을 공동의 대의나 적을 중심으로 결집할 수 있다.

풍수지리를 미신이라 치부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지만, 필자는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일제가 아름다운 우리 강산에 쇠말뚝을 박아넣어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어 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어린 나이에도 그 간악한 행위에 상당한 분노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중, 지난 1995년 김영삼 정권 당시, 광복 50주년을 맞이해서 민족정기를 회복해야 한다며 그중 한 사업으로 전국 산 각지에 박혀 있는 쇠말뚝을 뽑았다. 이때 118개의 쇠말뚝을 뽑았는데 이외에 민간에서 발견해서 뽑아낸 것들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민족정기 운운할 만한 것은 없었고, 사회의 관심도 시들해졌고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와 현 정부 통틀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정부도 없는 상태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王建)은 태어날 때부터 풍수지리학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태조 왕건은 943년에 붕어하면서 후세 황제들에게 남길 훈요 10조를 남겼는데 “차현(車峴) 이남과 공주강(公州江) 바깥쪽은 산과 땅의 형세가 모두 반대 방향으로 뻗었으니 인심 역시 그러하다. 그 아래 지방 사람들이 조정에 들어와 종친이나 외척과 혼인하여 국정을 잡게 되면 혹여 국가의 변란을 일으킬 수도, 혹여 합병당한 원한으로 임금을 시해하려는 소동을 벌이기도 할 것이다. -중략- 비록 그가 양민(良民)이라 하더라도 관직에 올려 일을 맡겨서는 안 될 것이다.”라며 풍수지리를 들어 지역감정을 유발하기도 했다.

미신과 민족주의의 교차는 위험한 이념과 행동을 낳기도 한다. 궁예는 독심술을 이용해 정적을 제거한 것처럼 역사를 통틀어 민족주의 운동은 때때로 극단주의 신념과 얽혀 소외된 집단에 대한 편협함, 차별, 폭력을 조장해왔다. 민족주의 운동이 미신을 휘두를 때 사회 분열을 악화시켜 '외부인'이나 지배적인 신념 체계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포퓰리즘의 부상과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부활로 인해 정치적 담론 형성에 있어 미신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과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미신과 민족주의적 이야기의 급속한 확산을 촉진하여 여론과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증폭시켰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행위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오로지 상대방 흠집내기에만 몰두한다.

미신과 민족주의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응하려면 교육, 비판적 사고, 포용적인 대화가 필수적이다. 미신과 민족주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고 포용성과 합리적인 탐구의 가치를 장려함으로써 우리는 모두를 위한 보다 공평하고 계몽된 미래를 향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 약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화학 박사학위 취득

서울시 영등포구청 인권위원회 위원

사)서울시 아동공공생활 지원센터 운영위원

현)동덕여자대학교 교양 대학교수

현)뉴스워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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