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교체 움직임…지주별 전문성·여성 비중 확대 등 변화
글로벌은행 비해 사외이사 구성 미흡한 상황…진정한 변화 위한 개선 필요

국내 주요 금융지주들이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회 구성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사진=각 금융지주사
국내 주요 금융지주들이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회 구성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사진=각 금융지주사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금융권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지주 사외이사에 그간 ‘거수기’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이 붙어왔지만 이번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는 변화가 감지된다. 이사회 구성에 있어 실질적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성비 구성 등 다변화도 꾀하고 있다. 다만 갈 길은 아직 멀어보인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37명 중 27명의 임기가 이달 만료된다. 이 가운데 각 금융지주사들은 여성 사외이사 비중을 높이거나 경영진 견제·감시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등 사외이사진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전까지 중임하거나 최대임기를 채우는 등으로 변화가 미미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우선 여성 사외이사 비중이 늘어 눈길을 끈다. 앞서 금융당국이 지난해 12월 12일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 관행’을 제시하면서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의 여성 이사 비중이 30~50%대에 달한다는 점을 언급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더해 금융지주사들은 국내외 ESG 평가기관이 제시한 지배구조 평가 기준에서 ‘여성 사외이사 비중 30% 이상일 때’ 관련 항목 만점이라는 제시안도 참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금융지주사들의 여성 사외이사 영입은 눈에 띄게 늘었다. 우리금융그룹은 송수영 사외이사가 퇴임하면서 이은주 서울대 교수와 박선영 동국대 교수 등 2명의 여성 사외이사를 신규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사외이사를 6명에서 7명으로 1명 늘리고, 여성 비중도 1명에서 2명으로 늘리면서 우리금융 사외이사 여성 비율은 16.7%에서 28.6%로 올라섰다. 우리금융 계열사인 우리은행 역시 그동안 4명의 남성으로만 구성됐던 사외이사진에 최윤정 연세대 교수를 사외이사로 추가 영입하며 여성 경제학자를 투입시켰다.

하나금융그룹도 사외이사를 8명에서 9명으로 증원하고, 이 중 여성 비중을 1명에서 2명으로 늘리면서 여성 비율을 12.5%에서 22%로 높였다. 이번에 퇴임하는 김홍진·양동훈·허윤 사외이사 대신 주영섭 전 관세청장, 이재술 전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회장, 윤심 전 삼성SDS 부사장, 이재민 서울대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는데 이 가운데 윤 전 부사장이 여성이다.

KB금융그룹의 경우는 이미 사외이사 7명 중 3명이 여성으로, 여성 비중이 42.9%에 이른다. 이번에 임기가 끝난 김경호 사외이사 후임으로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추천한 상태다.

신한금융그룹은 이번주 초 주총 안건을 공시하며 사외이사 추천안을 발표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신한금융 역시 여성 비율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여성 이사를 증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사외이사 7명 중 2명이 여성(28.6%)인 농협금융은 이번 주총에서 수와 비중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지난해 11월 20일 열린 금융지주회장단 간담회. 사진 왼쪽부터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빈대인 BNK금융지주 회장, 김기홍 JB금융지주 회장.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0일 열린 금융지주회장단 간담회. 사진 왼쪽부터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빈대인 BNK금융지주 회장, 김기홍 JB금융지주 회장. 사진=연합뉴스

특히 금융지주사들이 이사회 구성 다변화 뿐 아니라 전문성과 독립성도 갖추기 위해 노력한 점이 눈에 띈다. 이사회와 사외이사 구성 및 평가체계를 투명하게 운영할 것을 주문한 금융당국 입김이 작용한 것이란 평가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 지주에서 최고경영자(CEO)나 사외이사 선임 시 경영진 ‘참호 구축’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다.

이를 의식한 듯 금융지주사들은 사외이사 인원을 늘리며 이들의 역할을 강화했다. 일례로 하나금융의 경우 이승열 하나은행장과 강성묵 하나증권 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면서 사외이사 수를 확대해 사외이사진의 독립성을 지키는 방식을 선택했다.

전문성을 고려한 선택도 주목할 만하다. KB금융이 신임 사외이사로 선택한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해외금융협력지원센터장)은 한국은행에 입행해 실무 경험을 쌓은 뒤 한국금융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 기업부채연구센터장, 기획협력실장, 금융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KB금융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그에 대해 “금융·경제 전문가이자 글로벌 전문성을 갖춘 인재”라고 평가했다.

하나금융도 주영섭 전 관세청장부터 이재술 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대표이사,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심 전 삼성SDS 부사장 등 금융전문부터 고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구성해 사외이사진 개선에 나섰다.

이렇듯 금융권이 이사진 구성에 변화를 꾀하고는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사외이사의 질 개선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지주사들은 여성 비중을 늘리는 등 변화를 꾀했지만, 그 이면에는 중임, 최대임기 등 관행도 여전한 상황이다. 우리금융은 기존 6명이던 사외이사 가운데 임기 만료를 앞둔 4명의 사외 이사 중 3명은 중임을 결정했다. 하나금융도 이달 임기 만료를 앞둔 6명의 사외이사 중 절반을 바꾸고 전체 수를 8명에서 9명으로 늘렸는데, 물러나게 되는 3명은 최대 임기 6년을 모두 채운 데 따른 교체다. KB금융 역시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 4명 중 3명의 중임을 결정했다. 최대 임기를 보장하면서 신규인사 영입을 통해 다양성을 넓히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쪽 변화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급격한 변화를 보여줘야 할 상황은 아니지만, 경영진을 위한 ‘거수기’ 논란에서 벗어난 의사결정이 이뤄질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남아 있는 상태라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회사에 기여하고 혁신을 함께할 인사들을 선별하는 사외이사 밸류업을 위해 노력이 지속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성 비중이 늘어난 점은 눈에 띄지만 단순히 성비 구성을 다양화하고, 사외이사 수를 1~2명 인원을 늘린다고 기존 사외이사진이 가진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에 금융권의 사외이사진 변화는 꾸준히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또 금융당국은 지배구조 모범관행에서 제시한 글로벌 투자은행 사례를 통해 이사 수가 두 자릿수로 경영진 견제역할에 더욱 주효하다고 조언했다. 이에 비하면 국내 금융사들은 갈 길이 먼 상황이다. 무엇보다 기존 사외이사들이 사모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 각종 사태에서조차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 금융권이 사외이사진 개선을 점진적으로 이뤄가야 할 이유로 꼽을 수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장기 집권 문제를 지적한 뒤 금융지주 회장들이 줄줄이 교체됐고, 이후 금융당국이 또다시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한 사외이사 교체 등 주문에 사외이사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향후 전문성을 갖춘 인재 영입 및 중임, 최대임기 등 관행 개선 등이 점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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