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기업 자율 강조…금감원은 상장폐지 등 초강경책 언급
상폐 없고 소각 적어 국내 주식 수 증식만 거듭…국내투자자 손실로 이어져 변화 필요

정부가 26일 유관기관과 함께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26일 유관기관과 함께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정부가 ‘기업 밸류업(value-up) 프로그램’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자본시장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겠다며 지원 방안을 내놨다. 자율적 대책에 이어 초강경책이 등장하는 등 당근과 채찍 전략이 동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증시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개인 투자자들을 웃게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6일 유관기관과 함께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를 열고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연초 도입 방침을 밝힌 뒤 구체적 윤곽이 드러난 것인데, 약 1600개에 달하는 전체 코스피·코스닥 상장사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스스로 수립하고 연 1회 자율 공시하는 등 내용이 담겼다.

다만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우리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아 성장하고 그 과실을 투자자들이 함께 향유하고 재투자하는 선순환적 자본시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의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가야 한다”며 페널티 조항이 없고 기업 자율에 맡기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자 시장은 ‘권고에 그친 정도’라며 실망을 드러냈고, 이로 인해 코스피도 하락하는 등 영향을 받았다. 이를 의식한 듯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초강경책을 들고 나왔다.

이 금감원장은 28일 ‘금융감독원장-연구기관장 간담회’에서 “상장 기업도 일정 기준에 미달할 경우 거래소 퇴출이 적극적으로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기간 성장을 하지 못하거나, 재무 지표가 나쁘거나, 인수·합병(M&A) 기업의 수단이 되거나 이런 기업이 시장이 남아있는 게 맞냐는 차원의 문제”라면서 “악화가 계속 있는 동안에는 우수 기업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어렵다. 성장동력을 가진 스타트업 등에 돈이 갈 수 있도록 옥석 가리기가 명확히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밸류업 프로그램과는 관계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업계는 자율책과 강경책을 동시 추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그간 김주현-이복현 체제에서 이 금감원장이 늘 한발 앞으로 나서 강경한 발언과 행동력을 보여왔던 만큼 이번에도 총대를 멘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내놓은 기업 밸류업 대책의 보완 차원이란 말도 나온다. 정부는 세제혜택 및 인센티브 제공 등을 제공한다면서 상장사들의 자율적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혜택 자체가 약해 자율성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왔고, 기획재정부가 오는 7월까지 자사주 소각, 배당 등과 같은 주주가치 제고 활동에 뒤따르는 세제지원책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선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금감원이 나서 ‘상장폐지’ 등 강경책으로 기업 밸류업을 유도하는 쌍끌이 전략이란 분석이다. 

28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연구기관장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과 앞서 26일 유관기관과 함께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금융위원회
28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연구기관장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과 앞서 26일 유관기관과 함께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금융위원회

실제 국내 증시는 상장만 있고 상폐는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18년 이후 현재까지 코스피 상장 종목 중 상장폐지된 종목은 25개, 코스닥은 76개 정도로 코스피·코스닥 전체 종목 수의 1%도 채 되지 않는 수치다. 퇴출되는 기업이 없는 데 더해 주주환원정책도 활발히 이뤄지지 않다 보니 주식 수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매년 시가 총액 대비 3% 정도가 자사주 매입과 소각으로 처리되며 주식 수의 증식을 저지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증시의 주식 수는 연평균 3.6% 늘어났는데, 같은 기간 미국은 0.12% 증가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주식 수가 증가한다는 것은 곧 주가가 낮아지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국내 개인 투자자들로서는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이 금감원장이 상장 폐지를 언급하며 “(상장사 중)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 별다른 성장을 하지 못하거나 재무 지표가 나쁘거나 인수합병(M&A) 수단이 되거나 하면서 10년 이상 남아있는 기업들이 있다. 그런 기업들을 과연 계속 시장에 그냥 두는게 맞는지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증시 활성화와 제대로 된 가치평가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다만 상장폐지 등 강경책만으로는 중장기적 관점의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자사주 소각 및 사외이사 책무 강화 등을 이끌어내는 유인책도 함께 추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진정한 밸류업을 위해서는 기업들의 활발한 자사주 소각이 필요하다. 자사주를 소각함으로써 주주가치를 높이고 신뢰를 구축해 밸류에이션을 올릴 수 있다.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정책으로 40% 이상 주가를 끌어올린 메리츠금융이 좋은 예”라면서 “또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는 사외이사들이 원래의 책무대로 주주의 이익을 고려한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가 된다면, 기업 밸류업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가동으로 주목받는 또 한 가지는 국내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다. 우선 기업 밸류업 추진은 외국인들의 관심을 이끌어낸 상황이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에 앞서 2월 외국인 순매수가 크게 늘었다. 지난 2014년부터 10년간 외국인의 2월 순매수 월평균 규모는 2000억원대였지만, 이달 1일부터 28일까지 외국인의 국내 코스피 순매수 규모는 7조6603억원에 이른다. 주주환원 등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가 이미 주가에 반영됐고, 프로그램 윤곽도 드러난 상황이기에 이후 종목 선택은 신중히 이뤄져야 할 것이란 조언이 잇따른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저 주가순자산비율(PBR) 종목 위주로 주가 상승이 이어지고 있지만, 상승분에 대한 차익실현도 이뤄지고 있어 당분간 박스권 장세가 이어질 수 있다”며 “기업가치를 높일 여력, 체력이 있는 업종을 선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증권가 내에서는 반도체, 헬스케어 종목 등이 주목받고 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상대적으로 높기는 하나 이익 성장 가능성은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함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된 만큼 3월 주주총회 시즌에서 주주환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주주 환원 수익률 상위 종목군을 중심으로 한 전략도 주효할 것이라는 게 증권가 전망이다.

한편 금융투자협회와 금융투자업계는 정부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이번 발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자본시장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새 시대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성공적인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 국회, 업계, 기업 등 모든 시장 참여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협회와 업계는 국내 기업들이 증시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지원하고 기업 투자, 운용, 분석, 자금 조달 등 전 분야에서 최선의 노력을 펼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는 방침이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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