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칼럼]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을 늘리겠다고 하자 전국의 병원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전공의들이 사직하여 환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안타까운 사연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국민은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하여 사직하고 환자를 뒤로한 채 병원을 떠나는 전공의의 행동에 선뜻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어떠한 결말이 나든 간에 이 사건은 두고두고 우리 의료계의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모 전공의의 인터뷰를 보니  “저희는 이 정책이 시행되면 의료가 붕괴하고 미래 수만 수십만의 환자들이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사직을 결심하고 나온 것”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아무래도 미래 수만 수십만의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현재 수십만의 환자를 외면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 사태가 개시된 이후 서울 '빅5' 병원 중 한 곳에서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던 말기 암 환자가 협진을 요청하던 도중 사망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당시 응급실에서는 'OO과'에 협진을 요청했으나 전공의 집단 이탈로 '협진 과부하'가 걸려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다른 과에 협진을 요청하던 도중 환자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병원 홍보팀 관계자는 "해당 케이스의 환자가 응급실에 있었던 적도 없었으며,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가 "보도에 나온 추정 환자는 거의 사망한 상태로 들어왔으며, 전공의 부재와 상관없는 정상적인 진료 시스템하에서 사망했다"고 정정했다.

이 보도를 보니 예전에 읽었던 판례 하나가 생각이 났다. "피고인이 조카인 피해자(10세)를 살해할 것을 마음먹고 저수지로 데리고 가서 미끄러지기 쉬운 제방 쪽으로 유인하여 함께 걷다가 피해자가 물에 빠지자 그를 구호하지 아니하여 피해자를 익사하게 한 것이라면 피해자가 스스로 미끄러져서 물에 빠진 것이고, 그 당시는 피고인이 살인죄의 예비 단계에 있었을 뿐 아직 실행의 착수에는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숙부로서 익사의 위험에 대처할 보호 능력이 없는 나이 어린 피해자를 익사의 위험이 있는 저수지로 데리고 갔던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물에 빠져 익사할 위험을 방지하고 피해자가 물에 빠지는 경우 그를 구호하여 주어야 할 법적인 작위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피해자가 물에 빠진 후에 피고인이 살해의 범의를 가지고 그를 구호하지 아니한 채 그가 익사하는 것을 용인하고 방관한 행위는 피고인이 그를 직접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형법상 평가될 만한 살인의 실행행위라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대법원 1992. 2. 11. 선고 91도2951 판결)."라는 내용이다.

살해의 의사로 위험한 저수지로 유인한 조카(10세)가 물에 빠지고 보호자가 이를 구호하지 아니한 채 방치한 경우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법은 부작위에 의한 범죄로 살인죄, 상해죄, 폭행죄, 재물손괴죄, 방화죄 등을 인정하고 있다. 만약 이 보도의 사망 원인이 의료진의 의료거부였다면 이는 일단 부작위에 의한 살인의 혐의를 받을 수 있었다고 보인다.

시위에 참여한 의사들은 그들의 행동이 환자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체계적 문제에 관심을 끄는 데 필요한 수단이었다고 주장한다. 2월 25일 의사단체 대표자들은 비상 회의를 열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행한다면 전체 의료계가 적법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어디에도 환자의 생명이 결코 위험에 처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의 입장이나 의사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계 내 집단행동과 이를 규율하는 윤리성에 대한 재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면서도 의사가 항의의 한 형태로 치료를 보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할까? 의료계는 환자 치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처를 하지 않고도 의료 내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할 수는 없을까?

의료 전문가의 권리와 환자의 권리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환자의 개인 자율성과 의료 종사자의 집단적 책임을 모두 인정하는 미묘한 접근 방식이 필요한 섬세한 작업이다. 그간 의학계에서 의사는 치유와 생명 보존에 대한 헌신으로 존경받았다. 그들은 윤리적 기준을 지키고 무엇보다 환자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다짐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그러나 의료진이 진료를 멈추면 전국의 의료기관에 일대 혼란이 생기는 일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의 불행한 의료대란은 의료계가 비록,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일지라도 환자 치료의 원칙이 희생되지 않도록, 윤리적 지침을 수립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 약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화학 박사학위 취득

서울시 영등포구청 인권위원회 위원

사)서울시 아동공공생활 지원센터 운영위원

현)동덕여자대학교 교양 대학교수

 현)뉴스워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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