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소비재가 된 시대의 현장…대형·온라인 쇼핑몰과 경쟁 ‘울상’
온라인 방송 보고 찾아오는 고객들로 명맥 유지

애완동물 거리  한 켠. 사진=정호 기자
애완동물 거리  한 켠. 사진=정호 기자

[뉴스워치= 정호 기자] 관상어 판매점 앞에 선 고객의 눈은 크기가 제각각인 수조를 살펴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마침내 가로폭이 30cm 남짓한 물건을 고르자 가게 주인은 키우는 물고기의 종류를 묻는다. 가격대가 저렴한 소형 관상어를 몇 마리 키우고 있다고 답하자 주인은 구경하고 가라며 고객을 가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서울 청계천로 애완동물 거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다. 자동차가 바쁘게 움직이는 교차로를 앞에 두고 늘어선 노점마다 동물을 가둔 철창이 가득하다. 서울 청계천 애완동물 거리는 지난 1970년대부터 조성되기 시작했으며 반은 농담으로 뱀부터 독수리, 악어 등 모든 동물로 구할 수 있는 장소로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현재 애완동물 거리에 늘어선 상점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1인·소규모 가구와 고령화 인구가 늘어나며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 애완동물을 기르는 ‘펫팸족(펫과 패밀리를 합친 단어)’은 약 1400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펫코노미(펫+이코노미)’ 시장 규모는 2022년 8조원 규모로 집계됐다.  전체 시장의 몸집은 커지고 있지만 애완동물 거리는 대형마트나 온라인 반려동물 쇼핑몰 등의 강세로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16일 애완동물 거리의 현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직접 찾아 가봤다. 2월 추위가 잠시 사그라든 영상 6.8도의 오후 햇살은 따듯했다. 철장과 유리 수조에 갇힌 햄스터, 앵무새, 토끼 등의 말라 비틀어진 배설물에서 나오는 암모니아 냄새로 자연스레 눈살이 찌푸려졌다.

코뉴아 앵무새가 휴대전화 카메라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다. 사진=정호 기자
코뉴아 앵무새가 휴대전화 카메라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다. 사진=정호 기자

이미 냄새가 익숙해진 듯 유리 수조 안에는 사랑·코뉴아·모란·왕관·퀘이커 앵무새가 바닥에 떨어진 모이를 주워 먹고 있었다. 초록색 깃털과 노랗고 붉은 배를 가진 코뉴아 앵무새들은 카메라를 들이밀자 신기한 듯 수조 앞으로 모여들었다. 자신들을 촬영하는 것을 아는지 휴대전화 카메라에 머리를 들이밀기 바빴다. 맞은편에서는 점박이 토끼가 붉게 녹이 슨 철장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흉곽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잠에 빠져들었다. 가게 창문에는 아직 이유식을 먹이는 어린 새들이 있다는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퀘이커 앵무새를 기준으로 분양가는 초록색은 35만원· 파란색은 50만원에 달했다. 반려견 분양가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앵무새를 둘러보던 중학교 3학년 김모양은 “평소에 동물을 좋아해서 이 거리를 구경하는 중인데, 막상 갇혀 있는 동물들을 보니 불쌍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애완동물 거리는 현재 유튜브를 비롯한 온라인 방송 플랫폼을 통해 알게 돼 찾아오는 손님들로 명맥을 유지하는 중이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되는 아들과 함께 전남 광주에서 애완동물 거리까지 찾아온 40대 주부 이모씨는 “아들이 평소에도 달팽이, 거북이 등 다양한 동물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데, 유튜브를 통해 이곳을 알게 돼 같이 방문하게 됐다”며 “앵무새를 기르고 싶다고 해서 말리는 데 진땀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철창 안에서 잠에 빠져든 토끼. 사진=정호 기자
철창 안에서 잠에 빠져든 토끼. 사진=정호 기자

이곳에서 판매되는 관상어와 햄스터 등은 관리 비용이 개와 고양이와 비교하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작은 사육장 면적에서 기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시장을 찾은 40대 가장 안모씨는 “아들이 평소에도 동물을 좋아하는데, 인터넷 방송으로 특이한 애완동물을 알게 돼 구경하러 함께 찾아왔다”며 “관상어와 햄스터를 기르는 중인데, 자주 장을 청소해줘야 해서 번거로울 때도 있다”고 밝혔다.

애완동물 거리는 입소문에 드문드문 고객이 찾아오고 있지만, 상인들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고객이 줄어들고 있어 문을 닫는 점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수족관에서 거북이들에 물을 뿌려주던 50대 상인 윤모씨는 “요즘 다 인터넷으로 관상어니 거북이니 구매하다보니 예전보다 찾아오는 손님이 뜸하다”고 말했다. 대로변에서 수족관을 운영하는 70대 상인 김모씨는 “코로나 전부터 문을 닫는 가게들이 늘어나더니 지금은 반도 안된다”며 “올해 초에만 가게 두 곳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관상어 관련 물품을 파는 상점 외관. 사진=정호 기자
관상어 관련 물품을 파는 상점 외관. 사진=정호 기자

실제로 관상어·앵무새 등 반려동물을 기르는 반려인들은 위생환경이 좋은 대형 수족관에서 인터넷 판매를 하고 있는 바 굳이 청계 동물시장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관상어를 키우는 30대 직장인 조모씨는 “대형 수족관 등은 매장도 크고 볼거리가 많다”며 “가까운 마트나 인터넷이 있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청계천을 굳이 찾아갈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처럼 펫 시장은 해마다 날로 커지는 반면 반려동물의 메카인 애완동물 거리는 사라져가고 있다. 50년 넘게 서울 동묘의 명소로 자리매김했지만, 청결하고 관리된 환경을 원하는 반려인들의 성향이 강해지며 발길이 줄어드는 모습이다. 모든 가게의 문제는 아니고 이곳에서도 관리가 잘된 환경에서 좋은 주인을 만나는 동물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생명이 소비재가 된 역사가 시작된 이곳에 남은 동물들에게 하루빨리 봄볕이 들기를 바랄 뿐이다.

정호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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