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손실 5000억원 초과…금융당국, 관련 금융사에 자율배상 촉구
기준안 마련 후 배상 이뤄질 듯…총선용 포퓰리즘 및 자기책임원칙 훼손 우려도

홍콩H지수 연계 ELS 투자자들의 피해 보상 촉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오는 16일 2차 현장검사에 돌입한다. 사진=연합뉴스
홍콩H지수 연계 ELS 투자자들의 피해 보상 촉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오는 16일 2차 현장검사에 돌입한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 금융당국은 선배상을 거론하며 금융사들을 압박하고 있으며, 2차 검사를 통해 이달 말 책임분담 기준안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은 오는 16일부터 KB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NH농협은행·SC제일은행 등 5개 시중은행과 한국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KB증권·NH투자증권·신한투자증권 등 6개 증권사 등 11개사에 대한 2차 현장검사를 실시한다. 앞서 지난달 KB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1차 현장검사를 진행했고, 이후 다른 판매사로까지 대상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금감원은 이달 초 현장검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일부 포착된 불법 요인에 대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2차 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 사이 홍콩H지수 ELS로 인한 손실은 5000억원을 넘어섰다. 설 연휴 전인 지난 7일 기준으로 5대 은행이 판매한 H지수 기초 ELS 상품 가운데 9733억원어치의 만기가 돌아왔는데 고객이 돌려받은 돈은 4512억원에 불과했다. 평균 손실률이 53.6%로 손실액은 5221억원에 이른다. 이미 올해 1월 말 만기를 맞은 상품들의 손실률은 58.2%로 60%에 육박한다. 해당 상품 가입자들 및 판매 은행들은 H지수의 반등을 기대하고 있지만, H지수는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현재 흐름을 유지한다면 상반기에만 10조2000억원의 H지수 ELS의 만기가 도래하는 만큼 전체 손실액이 7조원까지 불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금융당국의 압박은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5일 ‘2024년 금감원 업무계획 브리핑’에서 은행·증권사를 향해 홍콩 ELS에 대한 자율배상을 촉구했다. 금융사 창구 직원들의 불완전판매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다.

금감원은 1차 현장검사 당시 일부 불완전판매 사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원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고령층의 노후 보장용 자금과 근시일 내 치료 목적으로 돈이 지출돼야 하는 암보험금 등에 대해 원금이 보장될 것처럼 투자권유를 해 금융소비자법(금소법)의 판매원칙 중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위반한 소지가 있는 사례들이 발견됐다. 그런가 하면 일부 은행은 금융위기 직후인 과거 10년 수익률을 기준으로 상품을 안내해 ‘20년 기준’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증권사에서도 창구를 방문한 소비자에 대한 설명 및 녹취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판매한 것처럼 스마트폰을 대신 조작해줘 판매한 사례 등이 확인됐다.

이같은 사례들이 발견되면서 이 원장은 “불법과 합법을 떠나 금융권 자체적인 자율배상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최소 50%로라도 먼저 배상을 진행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금융사도 (불완전판매 혐의를) 인정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배상 규모가 일부 차이가 있더라도 금융사들이 수긍하고 자발적으로 일부를 배상하면 소비자로서 일단 유동성이 생길 수 있다”고 자율배상을 강조하고 나섰다.

다만 이 원장은 “업권에서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할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는데, 이 말처럼 업계에서는 공감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의 선배상, 자율배상 언급에 은행들은 너도나도 고개를 젓고 있다. 일반적 절차와도 다른 데다 선제적 배상 시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소송이나 징계 등에서 은행이 불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주식회사 배임 및 자본시장법 위배 문제 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우선 일반적 금융분쟁 배상절차는 금감원 검사가 완료된 후 불완전판매 혐의를 입증하게 되고, 이후 제재를 통보하고 배상기준안을 마련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 절차를 거친 뒤 금융사와 소비자 간 분쟁조정 합의 등이 이뤄지는 식이다. 분쟁조정으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금융사와 소비자가 민사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같은 절차를 거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선제적 배상을 언급하는 것은 당황스럽다는 것이 은행권 입장이다.

특히 선제적 배상이 이뤄질 경우 불완전판매 혐의를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은 은행에 매우 불리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혐의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자율배상이 먼저 이뤄질 경우 판매사 스스로 설명 의무를 위반한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 경우 거액의 과징금을 물게 될 수 있고, 금융분쟁조정위원회나 징계, 소송 등에 있어 모두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금감원의 배상기준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자율배상을 진행할 경우 수익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이는 주식회사로서 배임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 특히 일괄적 비율로 선지급한 비용이 이후 과지급으로 판단된다고 해도 돌려받을 길이 없다는 점은 은행들이 선지급을 할 수 없는 이유로 꼽힌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불완전판매 정황이 일부 밝혀졌다고는 하나 은행별 불완전판매 여부가 입증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배상부터 하는 것은 절차상 문제가 적지 않다”면서 “더욱이 앞서 DLF사태 때와 달리 이번 홍콩 ELS는 상품 자체의 하자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불완전판매를 면밀하게 확인하는 절차가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칫 소비자가 상품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상품에 가입한 경우에도 배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더했다.

또다른 관계자 역시 “불완전판매 혐의가 드러난다면 반대로 완전판매 경우도 있을 것”이라며 “이 경우 자율배상을 통해 지급된 손실액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기에 무작정 선지급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 없이 자율배상을 촉구하는 것은 은행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지난달 30일 홍콩지수 ELS 피해자 모임이 국회 소통관에서 국회의원들에게 탄원서를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30일 홍콩지수 ELS 피해자 모임이 국회 소통관에서 국회의원들에게 탄원서를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결국 금융당국이 마련하는 책임분담 기준안이 가이드라인이 될 가능성이 큰데, 금융당국은 이르면 이달 말 기준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현장검사 및 민원 사례를 바탕으로 기준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인데, 쟁점은 역시 ‘불완전판매’다.

앞서 DLF(파생결합펀드) 등 사모펀드 사태 당시를 비춰보면 금융당국은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불완전 판매 여부 판단 및 배상 기준 제시시 불완전 판매 유형을 적합성 원칙 위반, 설명의무 위반, 부당 권유 등으로 분류했다.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사례가 이 세 유형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로 분류했고, 사례별로 유형에 매긴 점수가 높을 수록 많은 배상을 결정한 바다.

특히 ‘적합성 원칙’은 금융감독 용어 사전에서 금융사가 파악한 투자자 특성(투자목적·재산상태·투자경험 등)에 적합하게 투자를 권유할 의무 또는 부적합한 투자 권유 금지를 뜻한다. 이를테면 은퇴 후 노후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싶은 고객에게 ELS와 같은 고위험·고수익 파생금융상품 등을 권유했다면 적합성 원칙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이미 고령자 및 은퇴자에 권유한 사례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 데다 ELS 판매 실적을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하는 등 은행 실정이 알려진 만큼 적합성 원칙 위반에 해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더해 예금과 똑같다는 식으로 부당한 권유 등이 동반된 가입 유도가 있었거나, ELS 상품 가입에 따른 손실 가능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사례들을 중심으로 금융당국 책임분담 기준안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콩H지수 ELS 손실이 현실화되기 시작한 이후 금융당국의 행보는 줄곧 배상에 방점을 찍고 있는 셈이다. 은행들 역시 정상판매 비중이 훨씬 높다고 반발하면서도 배상을 염두에 두고 법무법인과 논의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우려도 공존하고 있다. 우선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업계 일각에서는 ELS와 관련, 정치권에서 총선을 의식한 배상 주장을 내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실제 홍콩 H지수 ELS 상품 가입 후 손실을 본 이들이 정치권에도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30일, 홍콩 H지수 ELS 피해자 모임이 국회 소통관에 모여 국회의원들에게 탄원서를 보냈다. 그런가 하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특히 ‘총선’을 언급하며 배상과 향후 예방책을 촉구하는 이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미 정치권이 표심을 의식해 총선용 공약을 남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포퓰리즘 개입이 ELS사태를 넘어 규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피해자, 배상 등으로 편승되는 분위기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설명의무위반 및 적합성 원칙 등 문제를 따지는 것과 별개로 H지수 ELS 상품에 가입한 모든 이들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은 자본시장법 근간인 ‘투자자의 자기책임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무조건 안전하다는 은행 직원의 말을 믿고 투자하거나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며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 정립 차원에서라도 판매사에 무리하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