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일본군위안부(이하 위안부) 문제가 사회적으로 드러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녀들을 향한 거침없는 공격은 멈추질 않습니다. 지난 1월 24일 연세대 사회학과 전공 강의 중 (2019년 9월)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 취지로 발언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에게 명예훼손은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단, 위안부에게 허위진술을 하도록 정의기억연대가 교육했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지만 이건 정의연에 대한 명예훼손이지 위안부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작년에도 이와 비슷한 판결이 있었습니다.

2013년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는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는 매춘이다.’, ‘강제연행은 없었다.’ 등의 취지로 기술된 35대목을 문제 삼아 기소되었는데, 2심 항소심이 내린 벌금 1000만원의 선고를 뒤집고 2023년 10월에 무죄선고가 났습니다. 학문적 표현물이라는 이유에서인데 책 출간 10년, 기소된 지 8년 만에 나온 판단입니다. 일본과 사이가 좋아지는 기류를 타는 것인지 지난해 10월 경희대 최정식 교수도 '위안부 매춘 발언'이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송치되었는데 동창회에서는 강한 중징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세월을 가슴에 품고 숨죽여 살아온 위안부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건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위안부로 인한 피해를 증언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생존자들이 연이어 일본 국가를 상대로 공식 사죄와 피해 보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정치·외교 문제로 부상했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1991년 12월 공식적으로 자료조사에 들어가고, 그런 가운데 요시미 교수에 의해 오카베 나오자부로(岡部直三郞) 북지나파견군참모장의 통첩 등 군 관여를 증명하는 자료가 폭로(1992.01)되었으며, 그해 7월 6일, 일본 정부는 종군위안부의 정부관여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1993년 8월, 2차 조사를 마친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의 고노 요헤이 장관은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으로 설치·운영된 것으로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이에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담당했으나 그 경우에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고 게다가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것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태의 괴로운 것이었다’라는 내용의 ‘고노 담화’를 발표합니다.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 정부는 위안부제도의 강제성과 군의 관여를 인정하면서 ‘어떤 식으로든’은 사과의 마음은 표명하겠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피해자의 보상 문제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과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전후 처리가 종결된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뒤를 이어 집권한 진보적 성향의 사회당 소속의 무라야마 내각(村山内閣)은 1995년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하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합니다. 이런 일련의 행보는 일본 우익들을 자극하였고 내정간섭에 굴복해 사죄한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고 있는 정치가는 자학사관(自虐的歷史觀)에 젖어 국익을 해치고 있다는 식의 비난을 시작합니다. 자민당을 중심으로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의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결성된 것이 이때쯤으로 이들은 독도를 영토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합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의 우파 정치가나 보수단체는 법적 책임, 도의적 책임 모두를 거부하며, 위안부들이 돈 벌려고 몸을 팔았으면서 강제로 연행되었다고 위증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본인이면서 근거도 없이 일본 정부의 책임을 논하고, 위안부가 성노예였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일본인의 자긍심을 저버리는 매국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우익세력을 등에 업은 아베가 2012년 12월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이 기조는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베는 정부 주최의 공식 석상에서 2차 세계 대전 후 일본에서 볼 수 없었던 ‘천황 폐하 만세’ 삼창을 외치고, 과거 식민지배와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거부하며 위안부의 일본 정부개입을 증명할 증거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유엔 등의 압력이 세지자 결국, 아베는 ‘광의의 강제성’과 ‘협의의 강제성’이라는 표현으로 일본책임을 물타기 합니다. “스스로는 가고 싶지 않지만 그런 환경에 있었다.”는 의미에서의 광의의 강제성은 인정하지만 “일본 관헌(官憲)들이 집에 들어가 젊은 여성을 데리고 갔다.”는 협의의 강제성은 없었다고 강변하였습니다. 이런 식의 인정은 거의 말장난에 불과한 것으로 일본은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을 가는 게 여성의 가장 큰 행복으로 여겨졌던 식민지 조선의 어린 딸들이 취업을 결심했다는 건 그만큼 그녀들이 처한 환경이 열악했다는 의미일 겁니다. 일본은 1925년 부녀자 매매금지 조약을 비준하여 일본인 위안부로 미성년자를 위안부로 고용하는 것을 금지하였지만, 식민지인 한국인 여성의 경우에는 지켜지지 않아 미성년자의 모집 비율이 80% 이상에 달하였습니다. 당시 위안부로 끌려온 여성들은 다수가 미성년자로 어린 여성들의 궁박함과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한 것으로 이는 그들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 아닌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일본기록에 의하면 위안부 모집은 ① 폭행, 협박, 납치하여 강제로 동원하는 방식 ② 지역 유지, 학교 등을 통하여 모집하는 방식 ③ 취직시켜 주겠다거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모집하는 방식 ④ 모집업자들에게 위탁하는 방식 ⑤ 근로정신대, 공출 제도를 통한 동원방식 등의 형태로 모집하였습니다. 위안부가 되었던 식민지의 여성들이 자신의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 성노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위안부를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성노예가 아니라 돈 벌려고 몸을 판 매춘부라는 주장을 일본 우익만이 아니라 일부 교수를 비롯하여 일부의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위안부사기청산연대’라는 단체는 '위안부는 사기'라며 수요시위 내내 욕설 섞인 말로 소리를 지르며 집회를 방해합니다. 이런 단체를 극우 집단이라고 하던데, 일본의 우익은 일본의 이익을 위해 살고 미국의 우익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산다는데, 정말 한국의 극우는 누구를 위해서 사는 걸까요? 누군가의 말처럼 미국과 일본의 이익을 위해 사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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