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올해 전기차 험난한 시작”…암울한 전망 잇달아
LG엔솔 CAPEX 규모 유지…삼성SDI 5조원 예상
향후 중국 업체들과 경쟁 위해 투자 유지·확대 필수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전기차 고전압 배터리 조립 공정. 사진=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전기차 고전압 배터리 조립 공정. 사진=현대자동차

[뉴스워치= 김동수 기자] 국내 배터리업체들이 전방산업인 전기차 수요 부진에도 설비투자(CAPEX) 규모를 유지했거나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한 성장세에 비해 전기차의 수요 둔화가 예상되지만 위축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요 증가세가 꺾인 전기차 시장은 올해 험난한 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수요 부진과 과열 경쟁으로 암울한 전망을 잇달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각) ‘올해 전기차가 험난한 시작을 맞이했다’며 글로벌 업체들의 전망 및 대응과 함께 이러한 상황을 전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 2위 테슬라가 최근 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올해 자동차 판매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눈에 띄게 낮아질 수 있다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스웨덴 전기차 업체 폴스타도 내년 판매량 감소 전망에 대응하고자 인력감축을 발표했다. 포드 역시 전기 픽업트럭 모델 F-150 라이트닝 감산을 발표하며 부진한 전기차 수요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전기차 수요 부진 상황은 국내 수출 실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글로벌 시장의 성장세 둔화로 이차전지 수출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24년 경제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차전지 산업의 수출 증감률은 직전 연도보다 4.9%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반기까지 6.4%라는 증가율을 보였지만, 하반기 15.2%의 감소율을 보인 결과다. 산업연구원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 둔화를 원인으로 분석했다.

전방 산업인 전기차 수요 둔화는 배터리업체의 실적에도 영향을 줬다. 지난 26일 국내 배터리 3사 중 가장 먼저 실적을 발표한 LG에너지솔루션은 영업이익이 반토막 났다. 이 회사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3382억원으로 3분기 7312억원보다 53.7% 감소한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실적 발표에서 “원재료 가격의 래깅 영향이 확대된 가운데 유럽지역 수요 감소에 따라 폴란드 공장의 가동률을 조정한 영향으로 고정비 부담이 늘어나며 4분기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54% 감소했다”고 밝혔다.

올해 역시 상황은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산업연구원은 이차전지를 국내 13대 주력 산업 가운데 수출이 가장 부진할 분야로 꼽았다. 올해 이차전지산업의 수출 증감률은 -2.6%로 2위를 차지한 석유화학산업(-0.5%)보다 2.1%포인트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하반기와 마찬가지로 전기차 시장의 수요 둔화가 이유 중 하나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OEM)의 전기차 생산 목표 하향 조정에 따라 수요 위축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배터리업체들은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유지하거나 과거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모양새다. 먼저 LG에너지솔루션은 설비투자를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 10조9000억원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일부 조정이 필요한 영역이 있으면 투자 집행을 조절할 가능성은 있지만 투자 기조는 유지한다는 게 회사의 방침이다. 특히 올해 이후 운영될 신규 생산 거점을 중심으로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투자를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올해 신규 양산 프로젝트는 제너럴모터스(GM) 조인트벤처(JV) 2기와 현대차 인도네시아 JV가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설비투자 기조 유지는 향후 전기차 시장의 성장 회복과도 관련이 있다. 강창범 LG에너지솔루션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올해 전체적으로 수요 성장률이 전년 대비 완화되는 시기지만 앞으로 EV(전기차)의 상품성 개선, 가격 경쟁력이 개선된 보급형 전기차의 출시 확대, 충전 인프라 강화 등으로 인해 오는 2025년 하반기 이후부터 예전의 성장성을 회복해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올해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보일 것으로 분석된다. 이 회사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과 달리 그동안 보수적인 투자 기조를 유지해 왔다. 최근 3년간 설비투자 규모는 2021년 2조2547억원, 2022년 2조8089억원이며 지난해 3분기 누적 설비투자 규모는 2조4436억원이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7조40억원)과 SK온(6조7707억원)의 절반 채 되지 않는 수준이다.

다만 올해 설비투자 규모가 5조원대를 넘을 것이라는 게 증권업계의 전망이다. 삼성SDI는 아직 북미 공장 가동 전이기 때문에 경쟁사와 달리 AMPC 혜택을 받고 있지 않다. 때문에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혜택을 조기에 누리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이 회사는 당초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2025년 예정이었던 스텔란티스 JV 공장을 올해 조기 가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향후 중국 업체들과 경쟁을 위해서라도 설비투자를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기차 수요가 글로벌 시장에서 과거보다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배터리업체들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가 필수라는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중국의 과잉 투자를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배터리 공장 가동률이 85% 정도를 유지하고 있어 수요와 생산이 매치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만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향후 시장을 어느 정도 점유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중국과 경쟁을 위해서라도 결국 시설투자를 지속적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동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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