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만 중국 업체들과 장기계약 통해 수산화리튬 확보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 확보하며 사업 포트폴리오 넓혀
배터리 자체 생산보다는 원소재 확보·규제 대비 차원

현대자동차·기아 양재 본사. 사진=현대자동차그룹
현대자동차·기아 양재 본사.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뉴스워치= 김동수 기자]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이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 원료부터 재활용 기술까지 확보에 나서자 이러한 행보에 업계 관심이 집중된다. 완성차 업체임에도 배터리 제작 및 소재 업체들처럼 밸류체인 구축에 잰걸음을 보여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중국 업체들과 연이어 계약을 맺으며 리튬 확보에 나섰다. 지난 18일 중국 간펑 리튬과의 수산화리튬 장기 구매 계약이 대표적이다. 계약 이행 기간은 올해 1월 1일부터 오는 2027년 12월 31일까지로 알려졌다. 수산화리튬은 주로 고밀도·고용량을 필요로 하는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된다. 배터리 양극재의 핵심 원료로 니켈과 합성이 쉬워 NCM(니켈·코발트·망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등 삼원계 배터리에 쓰인다. 현대차그룹의 리튬 확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지난 10일에는 중국 성산리튬에너지와 4년간 수산화리튬 구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불과 2주 만에 중국 업체들과의 공급 계약을 맺으며 필수 원료 확보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확보한 것도 눈길을 끈다.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현대글로비스는 관련 기술 확보를 위해 배터리 재활용 전문 기업 ‘이알’과 손을 잡았다. 이알은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 전처리 영역에서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데, 현대글로비스는 지분 투자로 이 회사의 기술 및 설비 사용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됐다. 이에 폐배터리 시장에서 회수부터 재활용까지 포트폴리오를 확보해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배터리 개발도 현대차그룹이 심혈을 쏟는 분야다. 현대차그룹은 필수 원료와 재활용 기술 확보 이전인 지난 2022년 1월 배터리 개발을 위한 ‘배터리개발센터’를 출범한 바 있다. 해당 센터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에 탑재되는 배터리 관련 연구를 종합적으로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현대차그룹은 배터리 셀 단위부터 안전성 향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10년간 9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아울러 올해 의왕연구소에 차세대 배터리 연구동을 세워 2025년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시범 양산할 계획이다. 2030년 전후로 전고체 배터리를 본격 양산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이러한 내재화를 두고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배터리를 자체 생산할 경우 원료부터 개발, 생산, 재활용까지 수직계열화가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현대차·기아가 판매하는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 생산 원가의 약 4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배터리 자체 생산이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보고 있다. 배터리 생산은 막대한 설비투자가 요구될 뿐 아니라, 현대차그룹이 실제 배터리를 생산한다 해도 사업성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전기차를 생산하는 다른 완성차 업체들이 현대차그룹이 생산한 배터리를 사용할 가능성이 작다는 게 이유다. 결국 생산한 배터리를 자사의 전기차에 사용해야 하는 만큼, 사업 확장성에 제한이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토요타, 포드, 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가 현대차의 배터리를 사용할 가능성은 작아 사업 확장성이 불분명하다”며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지만 배터리 산업도 설비 산업으로 국내외 업체들이 연간 수조원이 넘는 자금을 설비투자에 쏟아붓는다. 만약 현대차그룹이 실제 배터리를 생산한다고 해도 (전기차) 수요 감소가 발생하면 전기차에 더해 배터리 손실까지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최근 내재화 전략을 두고 배터리 업체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한 행보로 해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를 생산하는 완성차 업체들이 공급망 확보 차원에서 관련 계약을 많이 하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이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지 않더라도 공급망을 확보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업체들과 JV(조인트벤처)를 맺고 있는 만큼,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확보한 것도 배터리 자체 생산보다는 다른 이유가 꼽힌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기아가 판매한 전기차의 배터리에서 원소재를 추출하고 전 세계에서 추진 중인 폐배터리 재활용 규제의 대비 차원으로 분석한다. 예컨대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폐배터리 재활용 비율을 확대하며 유럽연합(EU)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리튬 광산 확보는 많이 못 했어도 판매한 차량이 있으니 재활용을 통해 원소재를 현실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며 “세계 각국에서 일정 이상 폐배터리 재활용률을 지키도록 하는 규정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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