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 임단협 타결…올해 2% 인상 그쳐
이자수익 기반으로 한 역대급 실적에 매년 비난 되풀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 중 하나은행을 제외한 은행들이 올해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임금인상률을 2.0%로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 중 하나은행을 제외한 은행들이 올해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임금인상률을 2.0%로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올해도 비난의 시간이 돌아온 모양새다. 은행들의 임금·단체협약 타결 결과에 으레 그랬듯 ‘돈잔치’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은행들이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일제히 성과급을 줄이고 임금 인상률도 줄였지만, 여지없이 그들만의 잔치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 중 하나은행을 제외한 은행들이 지난주까지 올해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타결했다. 하나은행은 미정인 상태다. 이번 임단협은 한국노총 산하 산별노조인 금융노조위원회가 일찍이 협상을 일괄 타결해 각 은행 지부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내린 결과로 알려진다.

이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 등 4개 은행의 올해 임금인상률은 일반직 기준으로 모두 2.0%로 결정됐다. 지난해는 3.0%였지만 올해는 1.0%p 낮춘 것이다.

지난해 평균 300%를 넘겼던 경영 성과급도 전반적으로 줄어든 모양새다. 은행들은 올해 200%대 성과급을 지급하는 양상이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통상임금의 280%에 현금 340만원을 얹어줬지만 올해는 통상임금 230%만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월 기본급의 361%였던 성과급 규모를 올해는 281%로 축소했고, 성과급 중 현금이 300%에서 230%, 우리사주 비중도 61%에서 51%로 조정했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통상임금 400% 및 200만원 지급이었던 것과 달리 통상임금은 절반인 200%로 줄이는 대신 현금을 100만원 올린 3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월 기본급의 292.6%가 180% 정도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금리 인하 기조에 따라 이자이익이 감소할 전망인 데다 대출 연체율 상승 등 리스크가 커진 점 등 올해 경영여건 악화를 예상한 데 따른 결정이다. 특히 사회전반적인 상생요구 및 비판적 여론 등이 임금협상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거시경제 변화 우려도 큰 상황인 데다 커지는 리스크에 대비한 대손충당금 적립, 상생금융 부담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은행들은 복리후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지난해에 미치지 못한 임금인상 및 성과급의 빈 부분을 채우는 모습이다. 국민은행은 올해 월 기본급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의 우리사주를 연간 지급하기로 했으며, 신한은행은 우리사주 의무 매입을 폐지하고 직원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사원 연금 제도에 대한 회사 지원금을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증액하고 재고용을 조건으로 한 육아퇴직금 및 가족돌봄근무시간단축제도 도입, 본인 결혼 축하금 증액 등 복리후생에 신경쓰는 모습이다. NH농협은행도 장기 근속자를 위한 안식휴가 확대를 비롯해 건강검진 대상자에 본인 부모를 추가하고, 가족 돌봄 근무 시간 단축 제도와 2시간짜리 ‘반의 반차’ 휴가 등을 신설했다.

이같은 소식에 여지없이 ‘은행의 돈잔치’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은행은 공공기관이 아니다”, “대출을 해야만 하는 환경을 개선해야지, 은행만 잡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는 등 은행을 두둔하는 의견들도 있지만 “매년 돈잔치 퍼레이드”, “고위험 상품 팔고 대출 이자 받아서 배부르게 성과급 잔치한다”, “은행 직원들 희망퇴직, 성과급 얘기 나올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을 어마어마하게 느낀다”는 등 비판적 여론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서민이 빚잔치하는 와중에 은행은 돈잔치한다’는 비난은 이전부터 지속돼왔지만 최근 몇년 사이 더욱 거세진 분위기다. 그 배경에는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웠던 시기, 은행을 승승장구하게 만든 이자 수익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 저금리 상황에서 금융지주들은 견조한 실적을 올렸다.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가파른 대출 성장세가 이자이익을 끌어올렸다.

한국은행의 ‘2020년 12월 중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당시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988조8000억원으로 전년인 2019년에 비해 100조5000억원 증가했다. 2004년 통계 집계 이래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생활자금 수요를 비롯해 부동산 규제에 따른 ‘영끌’ ‘빚투’가 더해진 결과였다.

이같은 분위기는 2021년에도 이어졌다. 5대 금융지주의 2021년 이자수익은 43조원에 달했다.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오며 서민 경제가 어느 때보다 어려웠던 때 은행은 이자수익을 기반으로 역대급 실적을 올리며 여론 인식을 악화시켰다.

이에 더해 코로나19가 종식되기 전 역대급의 저금리 시대에 제 1금융권인 은행이 제대로 된 자산관리(WM)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도 은행을 향한 비판여론에 힘을 실었다. 은행이 고객의 자산 증식에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돈 잔치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비난이 이어진 것이다. 이같은 지적은 올해 사정에도 적용된다. 올해 은행 성과급 소식에 적지 않은 이들이 지난 8일부터 손실이 현실화되고 있는 홍콩H지수 ELS상품을 예로 들며 ‘실적에만 급급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전 시기에는 은행이 민간기업으로서 실적을 직원과 나누는 성과급 잔치에 별다른 꼬리표가 붙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지난 2015년에도 여지없이 은행 성과급에는 ‘돈잔치’라는 꼬리표가 달라붙었다. 당시 비난의 이유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어려울 때마다 공적자금을 수혈 받아왔던 은행들이 서민을 대상으로 한 이자수익으로 올린 실적으로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다는 것이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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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오랜시간 동안 악화돼온 인식 저변에 ‘이자 수익’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셈이다. 대출차주가 자기 필요에 의해 대출을 받고 이자를 냄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이자장사를 하고 있다는 부정적 인식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 등 정치권의 여론몰이도 한몫했다. 때문에 은행들이 매해 반복되는 비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비이자수익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은행의 수익 비중이 큰 금융지주들로서도 비이자수익이 앞으로의 경영 방향의 관건으로 꼽히지만 걸림돌이 적지 않다. 우선 은행들은 비이자수익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파생상품 판매 권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이미 5일 만에 1000억원 원금 손실을 본 홍콩H지수 ELS 상품 때문이다. 해당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고령층이 유독 많았고, 은행들이 실적을 위한 과다경쟁을 벌였다는 정황이 드러난 데다 상반기 해당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는 금액들이 최악의 경우 5조원대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전망에 은행을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은행들이 고위험 상품을 팔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어 은행들이 자칫 비이자수익 시장을 잃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금산분리 규제도 은행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 중 하나다. 금산분리는 금융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규제다. 하지만 금융과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빅블러’ 현상에 따라 금융사들이 이자장사를 탈피하기 위해선 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해외사례만 보더라도 미국·일본 등 주요국 금융사들이 핀테크 기업을 인수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경우는 핵심사업 모델을 전통적 투자은행 업무가 아닌 플랫폼 비즈니스로 전환했을 정도다. 금융회사가 아닌 IT기업이라는 2015년 선언을 지켜가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와 달리 국내 금융지주는 비금융회사 투자부터 막혀 있다. 융지주회사법에 따라 비계열사 지분 보유가 5% 이내로 제한돼 있고 금융지주의 자회사는 비금융회사를 지배할 수 없다. 그나마 은행이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핀테크 회사에 한정해 15% 이상 투자할 수 있는 정도다. 때문에 적어도 일본은행처럼 은행의 업무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하나금융지주는 보고서를 통해 “일본은행처럼 국내은행도 경제활성화를 지원하고 업무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면서 “금융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비금융업무를 자회사 대상에 추가하고 일본과 같은 은행업고도화등회사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각 은행도 이자수익중심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2024년 경영목표에 관련해 ‘핵심사업 집중, 미래금융 선도’를 주축으로 6가지 세부 전략을 제시했다. 기업금융과 개인금융, 글로벌 등 우리은행의 핵심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통신‧여행 등 다양한 산업과 연계한 신시장 개척과 신탁‧IB(투자은행) 등 비이자 사업 확대로 미래 성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시장 개척, 신탁·IB등 비이자 사업을 확대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관점과 시야’를 확장한 미래 준비를 강조하고 있다. 타 업종과의 적극적인 연결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발굴하고, 비즈니스의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B2B 공급망금융 서비스인 BaaS, 플랫폼 기능 또는 콘텐츠를 다른 이가 이용할 수 있도록 외부에 공개한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 Open API 등을 적극 활용해 외부와의 연결과 확장을 통한 미래 준비에 나서고 있다.

이재근 KB국민은행장도 비이자 수익의 질적·양적 성장에 주안점을 두고 새로운 성장 기회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M, CIB, 자본시장 부문을 은행의 중추적인 핵심 비즈니스로 정착시키고, 미래의 새 수익원인 비금융 분야는 ‘리브 모바일’ 통신 서비스 등에서 얻어진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금산분리 완화 정책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승열 하나행장은 취임 당시부터 고객·현장·강점에 집중해야 한다며 6대 경영전략을 내세웠고 이 중 ‘비이자 중심 강점 시너지’가 눈길을 끈다. 이를 위해 하나은행은 핀테크와 손잡고 디지털 신서비스 발굴에 앞장서는 동시에 자체 디지털 플랫폼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벤처 육성을 위한 모펀드를 결성, 대규모 투자에 뛰어드는 등 혁신금융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산분리 규제라는 벽에 가로막혀 있기에 통상 은행들은 자산관리, 방카슈랑스 등으로 비이자수익 확대를 꾀하고 있다”면서 “본격적 규제 완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양질의 금융 서비스 및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영업의 범위를 넓히고, 이에 따라 오는 수수료 수익으로 비이자 비중도 키워나간다는 전략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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