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 판매분 손실 현실화…상반기만 5조원 증발 가능성
민원 쇄도·정치권 압박·금감원 조사…손해배상부터 CEO 제재 등 거론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에서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1067억원의 원금손실이 발생했다.  해당 상품 관련 손실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에서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1067억원의 원금손실이 발생했다.  해당 상품 관련 손실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5일만에 1000억원이 사라졌다. 주요 시중은행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이 현실화하고 있다. 정치권과 금융당국 압박이 이어지고 있으며, 문제점 발견 여부에 따라 CEO 제재 가능성도 거론된다.

14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에서 지난 12일 기준 1067억원의 원금손실이 발생했다.

8일부터 첫 손실 확정이 이뤄진 만큼 12일까지 닷새만에 1000억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한 셈이다. 이 기간 만기가 도래한 원금은 약 2105억원으로, 평균 손실률이 50.7%로 반토막 났다. 만기일에 따라 최고 52.1% 원금손실률이 발생한 상품도 있다.

지난해 하반기 확정된 손실액 82억원까지 더하면 지금까지 5대 은행이 홍콩 H지수 ELS로 본 손실액은 1149억원에 이른다.

문제는 앞으로다. 상품 특성상 손실 규모가 더 커질 것이 자명한 상황이어서다. 홍콩H지수와 ELS가 만나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린 셈이다.

홍콩H지수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가운데 50개 종목을 추려서 산출하는 지수로, 변동성이 높은 것이 특징인데 지난 2021년 2월 1만2000선을 넘었지만 같은해 말 8000대까지 떨어졌고, 현재 5000대에서 머물고 있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 등에 연계돼 투자 수익이 결정된다. 대체로 6개월마다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조기 상환 기회가 주어지며, 만기 시에 기초 자산 가격이 기존 정해진 기준을 밑돌게 되면 하락률 만큼의 원금 손실이 야기된다. 상품별로 ‘녹인(knock-in)’형은 녹인 발생시 최종 상환 기준선(통상 70%), 녹인 미발생 시 녹인 기준(통상 50%)을 넘어야 원금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노 녹인(No Knock-in)형’은 65% 정도를 수익상환 기준선으로 삼는다. 이에 따라 만기가 도래하는 상품들은 홍콩H지수가 2021년 상반기의 65%~70% 수준을 유지해야 원금손실을 피할 수 있는 것인데, 반토막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홍콩H지수는 상품 가입이 한창이던 2021년 상반기 1만340∼1만2229 범위를 오갔고, 만기가 도래하는 최근엔 5000대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때문에 홍콩H지수가 지금보다 30%이상 오르는 드라마틱한 반등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앞으로 만기가 도래하는 상품들도 손실을 피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반등 가능성은 크지 않다. 중국 부동산 경기 부진이 이어지고 지방정부 부채 등 문제가 산적해 있는 탓에 증권가에서는 이 문제들이 해결돼야 H지수도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5일 기준 홍콩 H지수 기초 ELS 총판매 잔액은 19조3000억원 규모다. 이중 79.6%인 15조4000억원의 만기가 올해 도래하는데 올해 1분기 3조9000억원, 2분기 6조3000억원 등 상반기에만 10조2000억원이 만기를 맞는다. 홍콩H지수가 현재 같은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5대 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ELS원금 손실 규모는 무려 5조원대다.

홍콩H지수 ELS 상품과 관련한 민원 쇄도 및 정치권 압박, 금융당국 조사착수 등으로 은행권 긴장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콩H지수 ELS 상품과 관련한 민원 쇄도 및 정치권 압박, 금융당국 조사착수 등으로 은행권 긴장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조원대 손실 공포가 시시각각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은행들의 긴장감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민원이 쇄도하고 정치권 압박이 이어지는 데다 금융당국도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우선 각 판매 은행에 소비자 민원과 항의가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 ELS 손실 우려가 불거진 후 이달 12일까지 5대 은행에 접수된 홍콩ELS관련 전체 민원 건수는 1410여건이다. 이 중 518건은 올해 들어서면서 제기됐다. 올해부터 홍콩H지수 ELS 만기가 도래하고 손실이 현실화되며 민원 및 항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안전하다고 안내했다”, “아버지 퇴직금이 몽땅 들어갔는데 위험 설명은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는 등 후기가 넘쳐나는 데다 5대 은행이 홍콩 H지수 ELS상품을 90대 연령층에 90억원 넘게 판 것으로 드러나는 등 불완전판매 문제도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 압박도 시작됐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홍콩 H지수 ELS 상품을 거론하며 “(해당 상품) 82%를 판매한 은행들이 법적 책임 외에 윤리적 책임을 다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2019년 파생결합증권(DLS), DLF 불완전 판매 사태를 계기로 금융지원소비자보호법이 제정돼 2021년부터 시행됐음에도 유사한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을 금융당국과 국회도 엄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의 조사도 시작된 상태다. 금감원은 이미 8일부터 업권별 최대판매사인 KB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현장검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앞서 금감원은 5개 은행(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과 7개 증권사(한투·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일부 금융사의 H지수 ELS 판매과정에서 한도관리 미흡 및 법규위반 소지가 발견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부 판매사가 홍콩증시 위기상황 등을 감안해 고위험 ELS 판매를 억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되레 판매한도를 증액하는가 하면 수익률이 높은 고위험 ELS 상품을 KPI(고객 수익률 항목 등)에 포함해 판매 확대를 유도하고 신탁계약서, 투자자정보 확인서 등 일부 계약 관련 서류를 미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설명이다.

이에 금감원은 KB국민은행 및 한국투자증권 검사를 시작으로 1월 중 나머지 10개 주요 판매사에 대한 검사도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규 위반여부와 함께 판매 한도관리 등 전반적인 관리체계에 대해 심층적으로 점검하고, 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에 대해서는 현장검사와 동시에 분쟁민원 사실관계 파악 등을 위한 민원조사도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고객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영업 행태 등 사항이 확인될 시에는 엄중 조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이복현 금감원장은 9일 “ELS는 예·적금이 아닌 금융투자상품으로 투자자들도 자기책임 원칙 아래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서도 “책임 문제와 별개로 손실 부담과 책임소재 정리 등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다.

때문에 홍콩H지수 ELS 불완전 판매가 입증될 경우 판매사가 손실액 일부를 배상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와 2021년 라임펀드 사태 때도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손실액의 40~80%를 배상하라고 금융사에 권고한 바 있다. 금융사와 투자자들이 자율 협의를 거쳐 보상 수준을 정하는 사적 화해 방식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뿐 아니다. 홍콩H지수 ELS 손실을 기점으로 은행들의 고위험 투자상품 판매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홍콩H지수 ELS 손실 우려가 불거진 후부터 은행들은 성과압박 기준이 될 수 있는 핵심성과지표(KPI) 논란에 휩싸였다. KPI는 은행직원들의 승진 심사 및 성과급 책정의 기준이 되는데, 홍콩H지수 ELS 판매 행태 역시 KPI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실제 홍콩H지수 ELS 문제가 터진 후 은행들은 이같은 점을 지적받고 KPI에 투자상품 관련 배점을 없애거나 축소하는 등 전면 개편에 나섰다. KB국민은행은 올해부터 초고령자 기준을 80세에서 65세로 확대하고, 만 80세 이상 초고령자에게 투자상품을 판매할 경우 해당 실적을 KPI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영업점 수익률 평가항목에서 ELT 등 구조화 상품의 수익률은 제외하고 있고, 80세 이상 초고령 투자자에게 판매할 경우 실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은행도 올해부터 만 80세 이상 초고령자에게 투자 상품을 판매할 경우 해당 실적을 평가에서 제외한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은행들의 상품 판매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DLF 사태 이후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됐지만 이후에도 은행들이 실적에 몰두해 무분별한 판매를 이어왔다는 것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2019년 DLF사태를 계기로 은행의 고난도 금융상품 신탁 판매를 금지했지만, 은행권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판매 한도 제한과 소비자 보호 조치 강화를 조건으로만 파생상품을 팔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은행권이 이같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고, 이에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 은행이 파생상품 판매를 아예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생상품 판매에 따른 수수료 수익으로 비이자 수익을 거두고 있는 은행들로선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CEO 제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감원이 “‘고객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영업 행태로 촉발된 위법사항 등이 확인될 경우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 경고한 만큼 홍콩H지수 ELS사태가 내부통제 미흡 문제로 커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특히 지난해 말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관련법이 오는 6월 시행될 예정이라 은행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해당 개정안 핵심은 금융사고의 책임을 CEO에 묻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CEO가 법률에 따라 내부통제 마련 의무만 지키면 됐지만, 앞으로는 내부통제 준수 의무가 CEO 책임이 된다. 

때문에 내부통제 미비가 확인될 시 은행권은 당국 제재를 피하기 어렵다. 홍콩H지수 ELS 총판매잔액 19조3000억원 중 은행의 판매액만 15조9000억원에 이른다. 24만8000계좌에 판매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론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65세 이상 고령투자자에 판매한 5조2000억원 중 4조6000억원이 은행 판매액이라는 점도 책임론을 부각시키는 요건 중 하나다.

한편 금융당국은 홍콩H지수 ELS와 관련, 은행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이르면 다음달 안에 결론내겠다고 밝혔다. 또 늦어도 3월까지는 대책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손해배상이 결정될 시 투자자 연령과 금융투자상품 재가입 여부 등이 배상 비율 산정 관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금융권에서 나오고 있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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