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LTV 등 거래조건 담합 판단 제재절차 착수
은행 ‘과도한 해석’ 항변…혐의 인정시 수천억 과징금

공정거래위원회가 KB·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4대 은행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담합 혐의와 관련,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사진=각 은행 제공
공정거래위원회가 KB·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4대 은행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담합 혐의와 관련,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사진=각 은행 제공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KB·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담합 혐의와 관련해 제재 절차에 착수하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혐의 인정 시 4대 법인에 수천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은행들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라 추후 향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8일, KB국민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의 담합 행위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해당 심사보고서는 검찰의 공소장에 해당하는 것으로, 4대 은행이 개인과 기업을 상대로 담보대출 업무를 하면서 거래조건을 짬짜미해 부당 이득을 취득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발 및 과징금 부과 의견도 함께다.

공정위는 은행들이 물건별 담보인정비율(LTV) 등 대출에 필요한 세부 정보들을 공유하고, 고객들에 유리한 대출조건이 설정되지 않도록 담합을 벌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2월부터 해당 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금융 분야는 민간 부문에서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으나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과점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면서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윤 대통령 발언 이후 공정위는 4대은행을 비롯해 IBK기업·NH농협을 포함한 6대 은행 현장조사를 실시했고, 대출업무관련자료를 확보했다. 이후 같은해 6월 4대 은행에 대해 현장 조사를 추가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공정위는 이같은 과정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관계자 조사를 진행했고, 시장 경쟁 질서를 저해하는 담보대출 거래 조건 담합 행위가 수년간 지속됐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만 2월 현장 조사 대상에 포함됐던 IBK기업은행과 NH농협은행은 최종 제재 대상에선 제외됐다. 조사 초기 일각서 제기됐던 ‘대출금리담합’ 의혹 역시 이번 심사보고서에선 제외됐고, LTV 관련 정보 공유가 핵심 혐의가 됐다.

관건은 LTV다. LTV는 담보가치 내에서 어느 정도까지 대출액을 승인할지 정하는 비율을 뜻한다. 정부는 과도하게 빚을 내 부동산을 사는 것을 막기 위해 LTV를 규제하고 있기에 LTV가 높을수록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대출액이 늘게 되고 소비자 후생이 커지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은행들이 경쟁 대신 담합을 했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소비자를 유치하기 위해 LTV를 높이려 경쟁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거래 조건을 공유하면서 수년 동안 정상적 상황보다 LTV를 낮게 유지했다고 보는 것이다. 농협 등 정보 공유에 가담하지 않은 은행의 LTV는 4대 은행보다 높은 수준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LTV 경우의 수도 공정위가 담합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은행이 개인과 기업, 주택과 공장 등 각기 다른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LTV 경우의 수가 7000여개에 이른다. 서로 LTV정보를 공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제히 낮은 LTV 설정은 어렵다고 본 셈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 심사보고서에는 4대 은행 법인에 대한 과징금 부과 및 검찰 고발 의견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다. 은행들의 법 위반 행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평가한 데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4대 은행의 의견을 수렴하고 제재 여부를 논의할 심의 일정을 정할 방침인데, 만약 혐의가 인정될 시 4대 은행이 내야 하는 과징금은 수천억원대가 될 것이라는 게 업계 예상이다. 공정거래법에서는 담합과 관련한 최대 과징금을 관련 매출의 20%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LTV 등 주택담보대출 조건 담합은 불가능한 것이라 항변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에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서울을 예로 들면 서울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는 무주택자 및 1주택자에게 LTV를 50% 적용하고 있고, 이외 지역선 70%를 적용하고 있다”면서 “은행 자체적인 LTV가 80%가 넘는다 해도 정부 규제에 따라 대출을 집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규제에 따라 은행 자체 판단보다 낮은 LTV를 적용하고 있는 것인데 이를 담합이라 하는 상황은 당혹스럽다”고 덧붙였다.

업계 내에서는 시장금리와 대출금리 흐름을 고려해 각 사 전략이 설정되는 가운데 단순 정보 공유까지 암묵적 담합으로 보는 것은 은행들의 영업활동에 있어 제약이 될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적용 비율 규제가 확실한 가계대출과 달리 명확한 규제가 없는 기업대출에서 담합이 이뤄졌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은행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기업대출은 LTV조건이 거래 경쟁 기준이 될 수 없고 대출한도 및 금리,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LTV 담합은 불필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은행들은 공정위 심사보고서가 도착하는 대로 LTV 담합행위는 없었다는 점을 소명할 계획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사진=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이번 제재가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이전에도 공정위가 은행권 담합과 관련해 조사를 진행했지만 모두 결론을 내지 못한 바 있다.

지난 2009년 공정위는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가산금리에 대해 조사했지만 결론은 내지 못했다. 당시 금리 담합 의혹과 관련한 신고가 여러 건 접수되자 공정위는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은행들이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가 하락할 때 가산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출금리 하락을 제한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은행들이 단기자금인 CD금리를 주택담보대출 기준금리로 삼은 상황서 장기 대출금리와의 차이를 가산금리로 보전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은행들은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최소한의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수준에서 대출 금리를 결정했을 뿐”이라 항변했고 이는 결국 흐지부지됐다.

2012년 상황도 비슷하다. 공정위는 증권사 및 시중은행들을 상대로 CD 금리 담합이라며 조사를 벌였다. 당시 은행들은 CD발행이 거의 없었다며 은행이 이득을 볼 상황도 아니라는 점을 들어 항변했다. 심지어 공정위가 금융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까지 나왔던 터다. 결국 4년 동안 이어진 조사는 무혐의로 결론났고, ‘칼을 빼들었다’던 공정위 기세는 무색해졌다.

이번 역시 무리수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근거가 명확치 않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조사 초기 시점에서 공정위가 제기했던 ‘대출금리 담합’ 의혹이 심사보고서에서 빠졌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출금리 담합 의혹을 찾지 못하자 LTV정보 공유를 담합행위로 몰아가는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전 정부에서 은행에 대한 비판 기조 및 압박이 심했다면서 4월 총선을 앞두고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반대로 이번은 다를 것이라는 시각도 공존한다. 공정위는 2021년 경쟁사 간 명시적 의사 연락이 없더라도 묵시·암묵적인 의사의 합치가 있는 경우도 합의가 있었다고 본다는 내용으로 카르텔 분야 행정규칙을 개정했다. 쉽게 말해 이들이 모여 “값을 이렇게 정하자”고 정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정한 가격에 나머지 업체가 따라가는 식도 담합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공정위가 이번 조사에서 ‘암묵적 담합’을 검토한 만큼 과거와는 다른 결과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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