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음식(오세치 요리) Seibu백화점 인용.
설음식(오세치 요리) Seibu백화점 인용.

[뉴스워치= 칼럼] 일본인들의 연말연시는 소박하지만 조촐하지는 않습니다. 일본도 연말연시를 고향으로 돌아가 지내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건 연말연시 연휴가 12월 29일부터 1월 8일까지로 꽤 길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의 새해 준비는 연말 대청소(大掃除)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맞이하는 12월 31일(오오미소카·大晦日)엔 약속이나 볼일로 외출하지 않는다면 일본사람들은 대체로 집에서 보든 어디서 보든 NHK의 홍백전을 틀어 놓습니다. 그리고 한 해가 끝나가는 자정이 다되어가면 가족끼리 혹은 혼자, 우리를 괴롭힌 수많은 번뇌를 삼키듯 108번을 치는 제야의 종(除夜の鐘)소리를 들으며 토시코시 소바(年越しそば)를 먹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에 맞춰 토시코시 소바(年越しそば)를 먹기가 힘들다면 31일의 저녁을 소바로 먹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토시코시 소바(年越しそば)라는 게 뭐 특별한 음식이 아닙니다. 메밀을 소바(そば)라고 하는데 우동 대신 삶은 메밀면을 따뜻한 국물에 넣어 먹는 음식입니다. 물론 우동 국물과 소바 국물은 만드는 방법이 약간 다른데 아마도 메밀이 좀 쓴맛이 나기 때문일 겁니다.

토시코시 소바(年越しそば)에 대한 기록이 1756년 간행된 비후니치로쿠(眉斧日録)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 이 시기부터 이 소바를 먹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해를 넘긴다는 토시코시(年越し)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토시코시 소바(年越しそば)는 해를 넘기면서 먹는 소바입니다.

한 해의 끝맺음과 새해의 시작을 메밀국수와 함께하는 것에 대해 대략 4가지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1. 모밀면이 잘 끊어져 액운을 끊어내고(厄払い) 새해를 맞이한다.

2. 가늘고 긴 메밀로 장수를 기원한다.

3. 메밀은 땅이 척박해도 빠르게 잘 자라는 작물로 메밀의 생명력을 건강에 비유한다.

4. 예로부터 일본의 금세공은 메밀가루를 반죽해 경단 모양으로 만든 후 거기에 금·은가루를 붙이고 물에 넣어 메밀가루를 녹여 금·은가루를 채집했다. 이런 전통으로 메밀은 금전의 운을 부르는 길조(縁起物)의 상징으로 사용됐다.

 그런데 토시코시 소바(年越しそば)를 남기면 한 해의 액운이 다음 해까지 이어지게 되므로 꼭 먹을 만큼만 만들어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신사참배를 하러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로 잠을 자고 설날 아침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알려진 식자재로 만들어진 설음식(おせち料理)과 우리의 떡국에 해당하는 오조니(お雑煮)를 먹습니다. 오조니(お雑煮)에는 아마테라스신을 상징하는 네모난 모양의 키리모치(切り餅) 떡을 석쇠에 굽거나 아니면 닭고기 국물에 야채를 넣어 끓여 먹는데, 국물 내는 방법은 지방마다 약간씩 다릅니다.

일본은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세배도 하지 않지만 어린아이들은 집안의 어른들로부터 세뱃돈(お年玉)은 받습니다. 아침 식사 후 가까운 신사, 혹은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신사의 부적을 사러 유명한 신사에 가서 참배한 후 그해의 운수를 점치는 부적(おみくじ)을 뽑는데 좋지 않은 운이 나오면 나무에 묶어 두고 옵니다. 찾아와주거나 함께할 가족이 없으면 쓸쓸한 우리 명절과는 달리 대체로 일본인들의 설날 풍경은 함께할 친구 한명만 있으면 제법 쓸쓸하지 않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새해 첫날,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일대를 강타한 7.6의 강진으로 현재까지 73명이 사망하고 26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주민들도 많아서 인명 피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도 합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쓰나미 경고가 발령됐는데, 무엇보다 강한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합니다. 부디 더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하며 피해를 보신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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