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켈리 vs 카스’ 구도 노렸던 하이트진로가 만난 복병 ‘한맥’
한맥, 켈리와 대비되는 마케팅으로 켈리 물량공세에 발목 잡아
켈리, 방해 공작에도 시장 안착 성공…안정적 수요층 확보

[편집자 주]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라면에서 조미료까지 유통업계에서는 특정 제품을 두고 함께 시장을 키워나가며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이 있는 한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동행과 경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제품 속에 숨은 유통업계의 치열한 고지 탈환전의 면면을 살펴본다.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카스와 켈리. 사진=정호 기자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카스와 켈리. 사진=정호 기자

[뉴스워치= 정호 기자] 연간 10억병의 판매량을 자랑하는 테라에 신제품 켈리라는 지원군을 붙여 맥주 시장의 고지를 뺏어오는 것이 하이트진로의 기존 구상이었다.

하이트진로는 오비맥주의 나머지 지분을 뺏어오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하고 지난해 4월 4일 켈리를 출시했지만 기대와 달리 카스의 벽을 넘는 데는 실패했다. 다시 카스의 아군으로 합류한 한맥 때문이다.

‘테라 vs 카스’·‘켈리 vs 한맥’…각개전투 펼쳐진 까닭

사진=오비맥주
사진=오비맥주

켈리를 띄우기 위해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3분기까지 기업공시 기준 광고선전비로만 전년동기 대비 28.9%(563억원) 늘린 1945억원을 집행했다. 분기별로는 1분기 582억원·2분기 784억원·3분기 579억원 규모의 광고 비용이 사용됐다.

유독 높은 2분기 광고 비용에서 하이트진로가 켈리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분기에 켈리 출시와 여름 성수기가 맞닿아 있었다.

당시 하이트진로는 켈리의 대대적인 홍보를 위해 배우 손석구를 모델로 기용하고 홍대입구·강남역 등 주요 번화가를 중심으로 옥외광고 및 팝업매장을 늘렸다. 지난해 5월 부산센텀맥주 축제에 선출시했던 켈리 생맥주를 이후 8월 정식 출시했다. 한 야구 예능 프로그램과 협업 소식도 함께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의외의 복병이 한맥이다. 한맥이 테라와 같은 초록병을 선택한 것은 테라의 발목을 잡기 위해서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맥은 국내 원료와 양조 노하우를 토대로 제작된 ‘코리안 라거’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테라에 도전장을 내세웠지만, 테라의 성장에 제동을 거는 데는 실패한 바 있다. 2021년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소비 시장 침체와 슬로건 어필에 실패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 차례 맥주 전쟁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한맥은 이번에는 켈리의 맞상대로 나왔다.  지난해 4월 중순 리뉴얼 소식과 함께 소비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켈리의 출시 시기와 불과 15일 차이다.

콘셉트 면에서도 대비된다. 켈리는 덴마크 프리미엄 맥아를 사용했다. 반면 한맥은 국내산 쌀을 사용했다. 브랜드 모델 또한 기존 배우 이병헌에서 수지로 변경했다. 한맥의 부드러운 맛을 부각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오비맥주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한맥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야외 홍보와 축제·후원 비중도 늘렸다. 서울숲 KBO 팝업스토어에 ‘팝업 인 팝업’ 을 운영했으며, 대구치맥축제도 후원했다. 다방면에서 켈리와 대척점을 세우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특히 오비맥주의 켈리 저격 마케팅은 지난해 6월 프로야구단 LG트윈스의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며 정점을 찍었다. 업계 일각에서는 ‘켈리도 인정하는 한맥’이라는 이중적인 의미의 마케팅이 본래 취지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켈리, 한맥의 물귀신 작전에도 선방

주류 자판기에서 판매되는 켈리. 사진=정호 기자
주류 자판기에서 판매되는 켈리. 사진=정호 기자

켈리는 결과만 두고 봤을 때 1차 목표였던 맥주 시장 고지 점령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아니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카스는 지난해 11월까지 42%에 달하는 점유율로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이처럼 1위 자리를 지켜낸 오비맥주지만 켈리의 성장까지 막아내지는 못했다. 켈리는 출시 이후 66일 200만, 90일 300만 상자에 이어 175일 660만 상자, 약 2억병의 물량을 팔아치웠다.

이는 사실상 코로나19 사회적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외출이 줄어들자 수요가 늘어난 수제·해외 맥주의 지분을 엔데믹 이후 다시 가져온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당시 집에서 술을 마시던 인구가 증가하며 ‘홈술족’을 겨냥해 묶음판매되는 수제·해외 맥주의 판매량이 증가했었다.

수제·해외 맥주 전성기는 엔데믹 전환 이후 사람들의 외출이 증가함과 동시에 쇠퇴하기 시작했다. 카스는 2019년 41.3%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 39.5%, 2021년 38.6%로  낮아진 바 있다. 그러다가 엔데믹 이후 다시 42%대로 회복됐다.

편의점업계에 따르면, 수제맥주 매출 신장률은 팬데믹 시절인 2020년 GS25 381.4%, CU 498.4%, 세븐일레븐 550%를 기록했다. 2021년에도 각각 234.1%, 255.2%, 220% 세 자릿수를 유지했다.하지만 지난해 각각 76.6%, 60.1%, 65%로 성장폭이 줄어들었다. 해외 맥주는 ‘노 재팬’ 이후 일본 맥주 수입량이 238%로 증가했지만 중국 맥주는 ‘청도 맥주 방뇨 논란’에 수입량이 감소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켈리는 지난해 9월까지 소매점 매출 1193억원을 기록하며 1113억원의 아사히(롯데아사히주류)를 제치고 3위까지 치솟은 바 있다. 하이트진로는 테라와 켈리에 힘입어 카스와 맥주시장점유율 격차를 전년동기 21.7%에서 16.9%까지 좁히는 데 성공했다.

현재 켈리가 점유율 면에서 안정권에 돌입했다는 데 이견은 없다. 이는 소비자가 재구매하는 데 필요한 시장 지배력을 키웠다는 말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켈리가 맥주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만큼 테라와 공동전선을 꾸준히 형성해 맥주 시장의 1위 자리를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정호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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