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신년사 통해 메시지 및 방향성 제시
금융안정 최우선 목표 아래 물가안정·PF부실 및 가계부채 관리 등 화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부터),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부터),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어려운 경제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더욱 녹록지 않은 경제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국내 금융정책을 대표하는 금융당국의 수장들이 신년사를 내놨다. 한목소리로 금융 안정을 강조한 동시에 세부적으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이끌어갈 것인지 밝혔다. 이들의 발언에서 경제 상황이 여실히 드러났고, 올해 경제 여건도 전망해볼 수 있다.

"위기에도 튼튼한 금융을 공고히 하겠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금융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금융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정비해 나가겠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긴축 기조가 지속됨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금융불안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1일 금융당국 수장들이 신년사를 통해 밝힌 의지는 '금융 안정'이다. 이미 오랜 시간 고금리 영향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대내외의 경기둔화로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신년사를 통해 '위기에도 튼튼한 금융'을 강조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올해 금리 하락이 예상되나 하락 시기와 속도가 여전히 가변적이라는 점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제2금융권 건전성, 가계부채 등의 정상화 및 안정화를 더욱 소홀히 할 수 없다"면서 " "부동산 PF 연착륙을 위해 사업성평가 강화, 정상화펀드 활성화, 사업자보증 대상 다변화 등을 추진하는 동시에, 금융기관의 PF 관련 손실흡수 능력을 확충하고 부동산 관련 금융기관 건전성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시스템 정비를 강조하며 코로나19 위기를 넘어 고금리 부담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서 "'금융시장 안정'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조화롭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최적의 금리경로를 판단해 금융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금융당국 수장들은 각각 물가 안정, 가계부채 관리, 부실기업 구조조정 및 사업재편 등에 심혈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이창용 총재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 총재는 1일 신년사에서 "주요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되는 가운데 나라별로 정책이 차별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우리 내부 여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정책을 결정할 여지가 커졌다"면서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물가 상승세의 둔화 흐름이 이어지겠지만 원자재 가격 추이의 불확실성과 누적된 비용 인상 압력 등의 영향으로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면서도 "반드시 물가 안정을 이뤄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것"이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올해 경제가 고금리와 고물가 장기화로 인해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등산에서 정상 직전의 오르막길 또는 마라톤에서 마지막 구간, 즉 라스트 마일(last mile)이 가장 어렵다는 점을 언급하며 올해 물가 안정의 어려움에 빗대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높아진 물가수준과 고금리 장기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특히 염려된다"며 안정화가 시급하다고 피력했다. 

실제 저소득층의 물가 부담이 큰 상황이다. 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가구의 처분가능소득(가처분소득)은 1%대 증가에 그친 반면 먹거리 물가는 6%대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중 대표 먹거리 지표인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6.8%로 전체(3.6%)의 1.9배에 이른다. 각 가구의 소득이 증가한 폭보다 물가 상승폭이 월등히 커 서민경제가 더욱 곤궁해진 것이다.

특히 저소득층은 가처분소득이 늘지 않아서 물가 부담이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3분기 누적소득 하위 20%(1분위)의 가처분소득은 평균 90만400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0.9% 늘었다. 이 총재가 물가 안정을 강조한 것 역시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서다. 만약 한은의 통화정책이 실패할 경우 서민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 PF 부실 우려도 금융당국 수장들의 손에 박힌 가시다. 이 총재는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일부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어,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를 중심으로 신용 위험이 확대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동성 안전판 강화를 위해 한국은행 대출의 적격담보 범위를 금융기관이 보유한 대출채권까지 확대하기로 한 만큼, 세부 시행 방안 등 관련 제도를 조속히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부실기업에 대해 자기책임 원칙을 엄격 적용하고, 질서 있는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유도해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현 상황은 좋지 않다. 이미 태영건설이 무리한 PF로 자금난을 겪다 워크아웃을 신청한 상태다. 건설업계 상황은 악화일로다. 건설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지난달 수금 못해준 곳이 적지 않다" "한번도 거래가 밀린 적 없는 곳도 터졌다" 등 이미 유동성이 막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 여파는 금융권에 직격타를 날릴 수 있다. 저축은행과 캐피탈 업계는 물론이고 금융권 전반에 PF 부실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그간 대주단 협약을 통해 대출 만기 연장 카드를 써왔던 금융당국과 금융권이지만 부동산 PF 부실을 막을 묘책은 딱히 없는 상황이다.

만기 연장이 이어지고 부실화 우려가 계속되면서 위험은 더 커지고 있다. 김대현 S&P 글로벌 신용평가 상무는 지난달 가진 간담회를 통해 "한국 금융시스템에서 가장 큰 우려는 부동산 PF"라며 "비은행 금융업 중에서 부동산 PF 익스포저가 큰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를 중심으로 신용등급 하향 리스크가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이 금감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리스크 예방에 만전을 기하고 위기 대응력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금융시장 리스크의 전이·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을 개편하고 시스템 리스크 예방에 전력을 다하겠다"면서 "금융회사의 손실 흡수능력을 제고해 위기 대응능력을 확보하겠다"고 설명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부동산 PF 연착륙을 위해 사업성평가 강화, 정상화펀드 활성화, 사업자보증 대상 다변화 등을 추진하는 동시에 금융기관의 PF 관련 손실흡수 능력을 확충하고 부동산 관련 금융기관 건전성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물가 안정 및 가계부채 관리, 각종 금융위기 리스크를 점검하고 안정화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금융당국 수장들은 물가 안정 및 가계부채 관리, 각종 금융위기 리스크를 점검하고 안정화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금융당국이 머리를 싸매게 만든 가계부채 관리 화두는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새해 금리 하락이 예상되나 하락 시기와 속도가 여전히 가변적"이라면서 가계부채 정상화 및 안정화에 만전을 기울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가계 부채 증가 속도를 관리하는 가운데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내실화, 민간 장기고정금리 모기지 기반 조성, 전세·신용대출 관리 강화 등을 통해 부채의 양과 질을 개선하겠다"며 "발생할 수 있는 시장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그간의 시장안정 조치를 필요시 시장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확대·보완하고 금융산업별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예고했다. 

가계부채는 지속적으로 국내 경제의 뇌관으로 거론돼 왔다. 다행히 금융위 집계에 따르면 11월 한달 동안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폭은 2조6000억원으로 10월 6조2000억원에 비해 크게 줄었다. 주택거래 감소 및 금융당국 관리조치, 높은 시중금리 및 비주택담보대출상환 등에 따른 비은행권 대출 감소 영향으로 풀이된다. 

금융위원회는 2월부터 '변동금리 스트레스 DSR' 규제를 통해 대출한도를 줄여나갈 계획이다. '스트레스 DSR'은 대출의 DSR 산정 시 향후 금리 상승가능성을 감안해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를 적용하기에 대출 한도가 줄어들게 되고 가계부채 증가 억제 효과를 갖는다. 이에 더해 금융당국은 금융감독원의 은행권 가계대출 현장점검 결과 등을 바탕으로 발견된 잘못된 가계대출 취급관행을 시정하고, 필요한 제도 개선 과제를 조속히 발굴·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긴 호흡을 통해 체계적 관리로 가계부채 관리를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가계부채 관리와 함께 김 위원장이 강조한 부분은 다름 아닌 상생금융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소득·자산 불균형과 정치 양극화 속에서 현재의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민 등 취약계층이 무너지지 않도록 함께 힘써 사회적 연대감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은행권 이자환급, 저금리 대환보증, 비은행 이차보전, 새출발기금 대상 확대 등 4종 지원 패키지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이자부담을 신속히 경감하고 서민금융 공급, 채무자보호법 시행 등으로 취약차주의 재기와 회복을 지원하며 청년층, 주담대차주, 고령층 등에 대해서도 맞춤형 금융지원에 힘쓰겠다"고 금융지원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해 시중은행들은 6000억원대 1차 상생금융에 이어 2조원대 2차 상생금융 방안을 내놓는 등 금융당국 기조에 발을 맞췄다. 올해도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가 최대 실적을 새로 쓸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금융당국의 상생금융 압박과 추진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2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4대 금융지주의 올해 연간 당기순이익을 17조2316원 규모로 추정했다. 이는 지난해 순익 추정치(16조5510억원)보다 4.1% 증가한 것이다.

이밖에도 금융당국 수장들은 다양한 현안들을 살펴 민생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총재는 "저출산·고령화와 수도권 집중 및 지방소멸을 어떻게 극복할지,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후위기 등 과거와 다른 환경에서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김 위원장은  "국민들이 소중한 자산을 믿고 맡길 수 있도록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에 박차를 가하겠다"며 "불법·불공정 공매도를 방지하는 개선안을 마련하고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해 사전·사후적 대응을 강화하겠다. 내부자거래 사전공시, 전환사채 불공정거래 규제, 의무공개매수제도 등을 통해 일반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불공정거래 근절 의지를 밝혔다.

이 원장 역시 거래 상위 투자은행(IB)에 대한 불법 공매도 전수조사, 전산 관리 시스템 도입 등 공매도에 대한 감독 강화 등을 약속했으며 민생 침해 금융 범죄 근절 의지도 보였다. 이 원장은  "불법사금융, 보이스피싱 등 금융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민생 침해 금융 범죄 대응 협의체'를 구성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예방에서 검사·제재, 피해구제에 이르는 전 단계별 대응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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