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정호 기자] 현장을 돌아다니며 사회 곳곳의 이야기를 찾아 전달하는 게 기자의 본분이라고 자부한다. 올해는 고물가·엔데믹·구조정리 등이 주요 이슈로 대두됐다. 기업은 재정구조가 약화돼 직원들에게 사직을 권고했으며 가정에서는 나날이 오르는 물가에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한편으로는 다시 외출이 자유로워진 일상 속에서 명소를 돌아다니는 이들도 만났다.

공명정대한 기자가 되기 위해 일해왔지만 제대로 해왔나 생각하면 의구심만 커진다. 한해를 되돌아보며 이번에는 전달자가 아닌 주인공이 되어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기자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인터뷰를 한 사람 수를 종합하며 세자릿수는 쉽게 될 것 같다. 주부, 노인, 학생 등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기자 신분을 밝히면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신이 노출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갖는 불편함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레기’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직업 신뢰도가 떨어진 것을 실감하기도 했다. 취재 일을 시작한 이후 해가 지날수록 경계심은 강해지는 듯하다.

그래서 신분을 밝혀 취재를 하는 것보다 대화하듯 말을 걸며 다가서는 경우가 잦다. 요즘에 “고기 가격이 많이 올랐어요” “여기 너무 붐벼서 언제쯤 들어갈까요” “오늘 진짜 돌아다니기 춥네요” 등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와 가벼운 농담으로 취재원들의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때마다 취재원들은 맞장구를 치거나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까지 알게 될 때가 있다.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는 “1명의 인터뷰를 싣기 위해서는 20명과 대화를 해봐야 한다”고 조언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취재 일을 하다 보면 늘 드는 생각이 취재원마다 생각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심지어 7살짜리 아이도 자기만의 고민이 있다. 그 고민은 결코 어른의 고민보다 가볍지 않다. 그 이야기들을 종합해 하나의 멘트를 완성하는 게 기자의 일이다.

한참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취재원들은 내게 질문을 하는 의도를 묻는다. 기자라는 신분을 말하면 사람들은 그제야 이해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놓인 위치보다는 취재원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고 고민을 나누는 게 어느 순간부터 취재의 필수조건이 됐다.

무시도 많이 당했다. 사회에서는 상대의 신분을 묻기 전에 자신의 신분을 먼저 밝히는 게 예의다. 팝업 안 팝업스토어로 진행됐던 한 행사장이었다. ‘빵빵이와 끼꼬의 크리스마스’라는 팝업스토어인데 워낙 인기가 높은 IP라 4만명이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 전에 행사 주체와 이야기된 게 이 팝업스토어 경우 출입을 못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여기까지는 수긍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니 이야기됐던 것과 달리 안내하는 직원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팝업스토어 내부에서 한 관람객으로부터 원하는 상품이 품절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기 상품을 알아보기 위해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당시 현장 관계자는 명함을 받자마자 무작정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는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취재 시간을 빼앗은 후 하는 말이 그냥 그 사람에게 확인해보라는 거다.

명함도 주지 않고 뒤돌아서는 담당자에게 급하게 이름과 회사명을 물었지만 답변을 거절당했다. 서로 통성명하는 게 예의 아니냐고 말하고 나서야 그 사람의 이름과 직함 정도를 들을 수 있었다. 취재 중 처음 겪는 일이었다.

다른 행사장에서는 한창 인터뷰를 하는데 직원이 갑자기 취재 내용을 적은 수첩을 달라고 하는 일도 있었다. 비유를 하자면 한창 돌아가는 기계의 주요 부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날 행사장 관계자에게 전화해 월권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현장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현장 기사를 쓰기 위해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물류센터에서 일도 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 시위 현장을 찾은 적도 있다. 사회 곳곳의 모습을 사진과 글로 담는 일은 기자라는 직업의 묘미가 확실하다.

취재 기사를 쓰기 위해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 동안 고민하기도 한다. 기자도 사람이다. 화도 나고 서글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언제나 중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사를 출고할 때마다 되새기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소망과 말에 경의를 표하라. 그대 생각과 같지 않더라도 간섭과 비난하지 말고 비웃지 말라.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지니고 있나니. 그들의 수준에 알맞은 여정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자신의 길을 가도록 허용하고 도와라.’

정호 산업부 차장.
정호 산업부 차장.

정호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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