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000억원대 횡령·미공개정보 악용·불법계좌 개설 등 금융사고로 다사다난
금융사고 방지 위한 내부통제 강화와 각종 기준 개선 등 촘촘해진 규제 효과 볼까

올해 금융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한 데 대해 내부통제 강화 방안이 속속 등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올해 금융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한 데 대해 내부통제 강화 방안이 속속 등장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올해 금융권에서는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배임, 횡령 등 도덕적 해이로 불거진 사고들이 이어졌고, 과도한 성과 압박에 따른 문제도 발생했다. 금융사들은 내부통제 강화를 강조하며 단속에 나섰지만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금융당국이 각종 규제들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금융사고로 얼룩진 올해와 달리 내년에는 금융권이 사고 없이 순탄한 한 해를 보낼지 주목된다. 

금융소비자연맹이 지난 26일 발표한 '2023년 금융소비자 10대 뉴스'에는 다양한 금융권 이슈들과 함께 '금융사 횡령·배임 사고 급증'이 거론됐다. 실제 올해 금융권에서는 각종 사건 사고가 발생해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은행권에서 충격적이고 다양한 유형의 사고가 터졌다.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700억원대 횡령사고가 터진 뒤 너도나도 내부통제에 나섰지만 사고는 이어졌다. 우선 BNK경남은행에서 우리은행 횡령 규모를 뛰어넘는 30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경남은행 PF(프로젝트파이낸싱) 담당이던 이모 씨는 출금전표 등을 위조·행사하는 방법으로 회삿돈 3089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애초 알려진 액수는 1600억원대였지만 검찰이 수사를 통해 횡령액을 추가 확인했다. 어마어마한 액수와 횡령이 가능했던 은행 시스템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KB국민은행 증권대행 부서 직원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127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가 드러났다. 이들은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66억원대 매매이득을 봤고 가족과 친지에게 그들만 아는 정보를 전해줬다. 이런 불공정거래를 통해 얻은 부당이득이 127억원 규모에 이른다. 부서 전체는 아니지만 한명이 아닌 다수 직원들이 가담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곧이어 DGB대구은행에서도 사고가 발생했다. 은행 직원들이 고객 동의 없이 증권계좌 1662개를 불법 개설했다가 적발된 것이다. 이로 인해 대구은행은 목표했던 시중은행 인허가를 받지 못하고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우리은행 역시 지난해 600억원대 횡령사고에 이어 올해도 사고가 이어졌다. 직원이 외환금고서 7만 달러를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고객 공과금 약 5200만원을 횡령한 직원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주식옵션 헤지포지션에 잘못된 평가방법을 적용하다 1000억원에 육박하는 손실이 확인되는 등 내부통제 시스템이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금융사들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자료는 정치권에서도 속속 내놨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7년여간 금융업권에서 횡령을 한 임직원수는 206명, 이들이 횡령한 금액은 1850억4260만원에 이른다. 특히 횡령 임직원 중 은행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 넘는 56.6%(116명)였으며, 은행의 횡령액 비중이 83.5%(1544억1710만원)로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횡령 사고 뿐 아니라 배임 사고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강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금융권에서 배임을 저지른 임직원 수는 총 84명이며 배임액은 1013억8000만원이다. 역시 은행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배임금액 업권별 비중을 살펴보면 은행이 426억8650만원으로 42.1%를 차지했다.

각종 문제들로 신뢰성이 추락하자 금융사들의 내부통제 관리 문제가 은행권의 잇따른 금융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금융사 CEO들은 올해초부터 내부통제 강화를 경영과제로 제시했지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결국 금융당국 주도 하에 각종 규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금융사의 내부통제 강화 의무를 골자로 한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책무구조도 체계 구축으로 금융사 임원마다 소관 영역을 정하고 이에 대한 통제 및 관리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핵심으로,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금융지주 및 은행들은 내년 12월까지 금융당국에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단어 하나에 CEO의 책임 여부가 갈릴 수 있어 법무법인과 협력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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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금융당국은 은행 경영실태평가에 금융사고 예방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내부통제' 평가 비중을 대폭 상향하기로 했다. 28일 금융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은행업감독규정 개정안' 규정변경예고가 내년 2월 7일까지 진행된다. 

현행 경영실태평가에서 내부통제는 경영관리의 세부항목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그 비중은 5.3%이다. 반면 개정안에서는 내부통제를 경영실태평가의 별도 평가 부문으로 분리하고  평가 비중도 15%로 상향했다. 금융사고 예방, 자금세탁 방지, 금융소비자 보호 및 고객정보 보호 등에 대한 평가를 강화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BNK경남은행의 3000억원대 횡령사고가 부동산 PF 대출업무자와 관련해 발생한 만큼 금융당국은 부동산 PF 자금 집행 체계도 강화한다. 금융감독원은 '은행 내부통제 혁신방안' 개선안을 통해  PF 대출금 지급 계좌 및 은행이 원리금을 상환받은 계좌를 사전에 지정하는 '지정 계좌 송금제' 도입을 알렸다. 대출 실행 및 원리금 상환이 지정 계좌를 통해서만 거래되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특히 PF 등 기업금융, 외환·파생 운용 담당 직원 등은 전문성을 요하는 업무 특성상 순환근무 원칙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빈번했는데 이에 대한 별도 사고 예방대책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장기근무(동일 본부 부서 5년, 동일 영업점 3년 초과) 직원은 동일 기업을 담당하는 기간을 최대 2년으로 제한하고 특별 명령 휴가 제도 실시, 영업과 자금 결제 업무의 명확한 직무 분리 등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임직원 위법 행위에 대한 고발 기준도 강화하기로 했다. 현재 은행권은 횡령·배임 등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시 은행 내부 기준에 따라 형사고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고발 제외 시 절차와 필수 고발 대상 등 구체적인 기준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이에 개선안에서는 고발 대상을 범죄 혐의로 포괄 명시하고 그 대상에 해당할 경우 원칙적으로 고발하도록 했다. 이전까진 자의적인 고발 업무를 방지하기 위해 고발 제외가 가능한 유형이나 금액을 명시하도록 했지만 예외 없이 반드시 고발해야 하는 범죄 유형과 기준 등도 정한다는 방침이다.

소비자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성과 압박에 따른 금융사고 방지를 위한 개선도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은행직원들이 승진 심사 및 성과급 책정의 기준이 되는 핵심성과지표(KPI)를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영업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금융당국은 내년부터 적정성 점검을 예고했고, 각 은행들도 판매 실적 비중 축소 등 KPI 개선에 나서고 있다.

최근 불거진 홍콩항셍지수(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들은 올해 홍콩H지수 ELS를 판매했다가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금융당국이 조사 중인 가운데 고령자에 유독 많이 판매된 상품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불완전판매 논란이 일었다. 불완전판매가 인정될 경우 배상은 물론이고 CEO 징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같은 판매 행태는 KPI의 영향이라는 지적이다. 이른바 은행원들의 성적표나 다름없던 KPI는 예·적금 가입 및 대출 실행, 각종 투자 상품 판매 등 실적이 정해진 비중에 따라 배점된다. 지난 2019년 불거진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 당시 금융당국 조사에서 하나·우리은행은 프라이빗뱅커(PB) 센터의 비이자 수익 KPI 배점을 경쟁 은행 대비 최대 7배 높은 수준으로 부여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대구은행에서 발생한 '불법증권계좌개설' 사고 역시 대구은행이 KPI 증권계좌 개설 만점 기준을 기존 1계좌에서 2계좌로 강화하고 개인 실적에도 중복 반영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KPI 기준이 각종 금융사고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은행 이용자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된 셈이다.

국책은행과 시중은행 등의 노동조합이 소속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도 최근 홍콩H지수 ELS 대응 촉구 성명서를 통해 무리한 영업 실태를 지적하며 "경영진은 즉시 고위험 상품에 대한 KPI 부여와 프로모션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KPI의 경우 이미 다양한 항목들이 정해져 있는 만큼 배점에 있어서 변화가 예상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성과 중심 배점에서 상품별 차이를 줄이고 고객보호 부문의 배점을 확대 적용하는 등 방식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역시 각 은행의 준법감시부서 등에서 KPI가 불건전 영업 행위를 유발하는지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도록 지도하고 내년 4월에는 적정성 검사를 하는 등 내부통제 관리를 위한 감독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부터 은행별로 이뤄지던 KPI 개선까지, 효과적인 내부통제를 통해 금융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울타리는 세워진 셈이다. 규제가 촘촘해진 만큼 금융사고 발생율이 감소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횡령·배임 사고 등에 대해 직원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손놓고 있어선 안되는 업권이 금융사이기에 각종 규제 강화는 금융사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면서 "이전보다 양적 질적 측면에서 규제가 강화됐고 임원 및 CEO에게도 책임을 지우면서 금융사고 발생율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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