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CEO 승계절차 및 이사회 구성 등 ‘지배구조 모범관행’ 발표
“폐쇄적 경영문화 타파해야” vs “핀셋형 가이드라인 자율경영 침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금융감독원이 은행 금융지주와 은행의 최고경영자(CEO) 절차에 대한 모범관행을 제시했다. 폐쇄적 경영문화를 타파하고 공정성을 키우겠다며 모범관행으로 제시한 원칙만 30개에 이른다. 지나치게 세밀한 규정에 관치논란도 불거진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2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8대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가진 정례간담회에서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을 내놨다. 

이 원장은 "오늘 발표된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바탕으로 이사회가 과제별 개선 로드맵을 마련해 적극 추진해달라"며 "특히 소유·지배 분산기업으로 불리는 은행지주에서 CEO나 사외이사 선임시 경영진의 참호구축 문제가 발생하거나 폐쇄적인 경영문화가 나타나지 않도록 CEO 선임이나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강화하는 데 노력해달라"고 강조했다.

30개 핵심원칙을 제시한 모범관행에는 CEO 선임 및 경영승계 절차의 공정성 제고를 비롯해 이사회와 사외이사에 대한 평가체계, 이사회의 독립성 및 사외이사 조직체계 강화 등 내용이 담겼다.

특히 이 원장은 은행권의 지배구조를 직격 비판했다. 일부 금융지주가 CEO 후보 육성의 일환으로 부회장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데 대해 이 원장은 "과거 특정 회장이 셀프 연임하는 형태보다 진일보된 제도인 것은 맞지만 폐쇄적으로 운영돼 신인 발탁과 외부 인사를 차단하는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하면서 "대표적 소유·지배 분산기업으로 불리는 은행지주에서 CEO나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경영진이 참호를 구축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당성을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모범관행 내 CEO 선임 및 승계 절차 관련 내용에는 이 원장의 지적에 따른 개선점이 담겨 있다. 금융당국은 모범관행을 통해 CEO 경영승계 절차는 임기만료 최소 3개월 전 개시할 것을 제시하고, 각 절차 단계별로도 검토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8개 금융지주의 최근 승계 절차를 살펴보면 평균 45일에 그치는 등 짧은 시간이라 후보군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CEO 적정 후보군을 상시 관리하고 연 1회 이상 관리 실태를 점검하라는 원칙을 내세웠다. 외부 후보군을 포함할 시 자격 요건, 추천 경로 및 절차 등을 명확히 하고 평가 방법이나 시기가 외부 후보에게 불공평하지 않아야 한다고 부연했다. 금융지주 회장이 자신과 가까운 인사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셀프연임을 하거나 측근에게 자리를 승계하는 등 관행을 막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특히 외부 후보군에 대한 공정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외부 후보군의 자격 요건, 추천 경로, 절차 등을 명확히 하는 것은 물론 검증 절차도 한 차례의 인터뷰와 면접에 그치지 않도록 외부 평가기관이나 전문가 참여, 심층 평판조회 및 다면평가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 또 내부 후보에게 부회장직 등을 부여해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할 시에는 외부 후보에게도 비상근 직위를 줘야 하고 은행 역량 프로그램 참여 등 이사회와의 접촉 기회를 제공하는 등 형평성을 고려한 원칙도 있다.

이와 함께 CEO 승계 절차에서 필수적으로 문서화해야 하는 사항도 있다. 내부 및 외부 후보자의 세부적인 자격 요건 ▲후보군 관리 및 평가 기준·방법 ▲역량개발 프로그램 ▲경영승계 절차 개시 시점 및 후보군 압축 단계별 시기, 평가·검증 방식, 결정 방법 등 CEO 선임 절차에 관한 사항 ▲승계 계획 관련 각 부서별 역할 및 책임 분담과 정보교환 절차 등이다.

이 원장이 강조한 또 다른 부분은 바로 이사회 독립성이다. 사외이사 지원조직은 CEO 관할이 아닌 이사회 산하 독립조직으로 설치하고 업무총괄자 임명 역시 이사회의 사전 동의를 거치도록 해 경영진 입김을 걷어내도록 했다. 또 경영진이 참여하지 않는 사외이사만의 간담회를 운영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직군·전문분야·성별 등이 치우치지 않은 이사회 역량 구성표(BSM)를 작성하는 원칙도 마련했다. 금융권 임기 관행인 '2+1년' 방식으로 인해 같은 해 사외이사 임기 만료가 집중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적정 임기 정책과 이사회 승계 계획도 마련하라는 지침도 함께다.

이와 관련해 이 원장은 "이사회는 지주 그룹의 경영 전략과 리스크 관리 정책을 결정하는 지주 내 그 어떤 기구보다 중요한 곳"이라며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감시 역할을 하는 이사회와 감독당국은 한배를 탔다고 생각한다"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모범관행 주요 내용을 보면 셀프 연임과 정해진 후계구도를 타파하고 CEO 거수기에 머물렀던 이사회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금감원은 이같은 모범관행을 토대로 은행별 특성에 적합한 자율적 개선을 유도하고, 은행 감독·검사에서 해당 모범관행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르면 내년부터 적용될 모범관행을 두고 금융지주와 은행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세밀하게 제시되고 있는 원칙들이 30개나 되다보니 금감원 눈높이에 맞는 시스템을 빠르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이냐가 관건이다. 

금감원이 제시한 모범관행과 관련해 실효성이 있을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사진=연합뉴스
금감원이 제시한 모범관행과 관련해 실효성이 있을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사진=연합뉴스

경영에 깊이 관여할 수도 있는 이번 모범관행에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강제성은 없지만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터라 금융사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앞선 신한·우리·KB금융 회장 인선 절차에 대해 금감원장의 개입성 발언이 있었던 만큼 압박성이 강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원장은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셀프 연임' 문제를 지적해왔다. 지난해 11월 이 원장은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한 불완전판매 책임으로 '문책 경고'를 받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연임 가능성이 언급되자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직격했다. 연임에 대한 압박성 발언은 빈번하게 이뤄졌다. 지난해 12월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이 3연임을 포기하자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을 보니 개인적으로 존경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KB금융 회장 인선에 대한 발언은 묵직한 돌직구였다. 윤종규 전 회장은 KB금융을 리딩금융으로 안착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런만큼 4연임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 판단이었다. 이런 가운데 이 원장은 "업계에 선도적인, 선진적인 선례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고, 보름여 만에 "업계의 모범을 쌓는 절차가 되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연임에 도전하는 전임 CEO를 공개적으로 압박해온 분위기가 이 원장 발언과 겹치면서 윤 전 회장이 연임을 포기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고 실제 용퇴를 결정했다.

이에 더해 양종희 회장이 선임된 후에도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압박이 이어졌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KB금융 회장 선임 과정에서 후보군을 확정하고 자격 요건을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 원장은 "회장 선임 절차와 관련해 당국에서 할 수 있는 여러 노력을 하고 있는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던 것은 맞다"고 맞장구쳤다.

결국 이번 모범관행은 지금까지 이 원장이 금융지주 회장 인선과 관련해 보여왔던 입장들의 집약체란 평가가 나온다. 강제성이 없다고는 하지만 금융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금융사들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이미 인사교체를 완료한 금융사는 물론이고 인사절차를 앞둔 금융사들은 제시된 모범관행에 따라 부회장직을 없애거나 사외이사 구성을 다양화 하는 등 방안을 선제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CEO 선임 역시 중장기적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금감원의 모범관행에 대해 '관치'라는 비판이 어느때보다 강하다. CEO 승계 절차를 비롯해 이사회 구성에 대한 모범관행은 경영에 깊게 개입하는 모양새일 뿐 아니라 경영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CEO 승계 절차에서 외부 후보에 대한 공정성 지적과 다양한 기회 부여 등과 관련해서는 경영 침해 우려가 나온다. 개인의 역량과 노력 여부에 따라 CEO가 될 수 있는 대표적 업권이 금융사였지만 이번 모범관행은 외부인사 중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오히려 내부 출신 실력자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주인이 없는 금융사에서 회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충성심 높은 인물이 CEO 자리에 오르는 것은 당연하고 공정한 절차인데 차기 CEO를 내정한다는 등 부정적인 금융당국의 시선이 오히려 내부 출신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금융사별로 경영전략이 다른 만큼 부회장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전략 및 상황을 고려한 조직 구성이 이뤄져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외부 후보자가 불리한 관행을 개선하겠다며 비상근직위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업계는 난감한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외부 후보가 급여가 없는 비상근 직위를 받아들일지 여부를 비롯해 회사 경영 현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경영 전략 등 민감한 내부 상황을 어디까지 공유해야 하는지도 문제"라고 토로했다. 외부 후보 입장에서도 다른 회사에 근무중인 상황일 수 있기에 '겸업금지 의무조항'이나 '비급여 비상근 직위' 등이 오히려 부담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이사회 독립성 중 사외이사 지원 관련 부문도 난항이 예상된다. 은행 금융지주 및 은행 사외이사는 다른 회사 사외이사를 겸직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이미 사외이사 영입이 쉽지 않았다. 여기에 사외이사 지원 전담조직을 설립하고 사외이사의 업무가 증가할 경우 사외이사직을 맡으려는 인사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게 업계 고민이다.

금융당국이 금융업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압박만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금융사들이 대내외 경영환경을 감안해 안정과 효율에 초점을 맞춘 인사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지나치게 세밀한 핀셋형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건 업무 효율성을 저해하고 자율 경영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금융사들은 최근 들어 충분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갖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인사절차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파격인사, 보여주기식 인사가 아닌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사를 기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8일과 10일 각각 주요 계열사 임원인사를 마무리한 우리금융과 NH농협금융 역시 그룹 경영 효율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런만큼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경기불황이 이어지는 등 불안한 대내외환경 속에서 정치권 및 금융당국의 강한 압박까지 더해지는 것에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편 금감원의 모범관행 발표에 일부 금융지주사들의 고민이 깊어진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대놓고 부회장직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드러낸 탓에 부회장제도를 운영 중인 KB금융과 하나금융은 인사개편을 놓고 고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 돌입한 DGB금융은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다. 당장 모범관행 원칙들을 적용하기 어려운 탓이다. DGB금융 측은 해당 모범관행 방안을 잘 검토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달말 10여명의 1차후보군을 발표하고 내년 최종후보를 선임할 예정이라 발등에 떨어진 불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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