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의지 드러내던 금융사들, M&A시장은 잠잠
상생금융·불확실한 대외환경 등 요인, 신중기조 내년까지 이어질 듯

올해 금융권 M&A시장이 얼어붙었다. 내년에도 이같은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사진=연합뉴스
올해 금융권 M&A시장이 얼어붙었다. 내년에도 이같은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올해 금융권에 들려오지 않은 소식이 하나 있다. 바로 인수·합병(M&A)이다. 주요 금융지주 등 금융사들이 M&A를 추진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M&A가 효과적 방법 중 하나지만 부실 우려화 및 상생금융 등 걸림돌에 금융권 M&A는 멈춰선 상태다.

"최근 금융권 경영 환경이 변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금융권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부실화에 따른 충당금을 쌓고 있는 데다 수조원대 규모의 상생금융까지 설상가상 형국"이라며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 금융시장의 상황에 그간 적극적이던 M&A분위기가 신중한 태도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상황을 보면 매물은 넘쳐나는데 인수하겠다는 금융사는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든 상황이다. 저축은행 M&A 매물이 단적인 예다. 상상인을 포함해 5~6곳의 저축은행들이 잠재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장기화된 고금리 상황에 더해 중·저신용자의 연체 위험까지 커진 상황이라 이들을 주고객으로 삼는 저축은행 M&A에 뛰어드는 금융사는 찾기가 힘든 실정이다. 대형 금융사 계열로 비교적 리스크 관리가 잘된 한화저축은행을 비롯해 업계 6위권인 애큐온저축은행 역시 오랜 시간 동안 매물로만 전전하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도 저축은행 M&A를 어렵게 만든다. 지난 9월말 전체 저축은행 79곳의 총대출 연체율은 6.2%. 지난해말 3.4%였던 것이 9개월여 만에 3%포인트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이 저축은행권 유동성을 실시간으로 점검할 수 있는 예수금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 가동하고 있을 정도다. 유동성 관련 이상 징후가 감시될 경우 즉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보험시장 M&A 매물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잠재리스크가 높고, 인수 뒤에도 대규모 자금수혈이 필요한 곳들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지난 7월 매물로 시장에 나온 ABL생명은 한 사모펀드와 BNK금융지주가 컨소시엄을 구성했지만 BNK 측이 인수를 철회하면서 매각이 무산됐다. MG손해보험은 지난 1월에 이어 10월에도 예비입찰을 진행했지만 유찰됐으며, 드디어 주인을 찾나 싶었던 KDB생명도 올해 M&A에 실패했다. 동양생명과 롯데손해보험 등은 잠재매물로 평가받고 있는 가운데 1~2조원 규모의 매각액을 원하고 있어 매수자로 나서는 곳은 없는 상황이다.

특히 국내를 대표할만한 시중 금융지주사들이 M&A에서 발을 빼는 모습도 이전에 비해 신중해진 분위기를 체감케 한다. 대형 금융지주사들은 M&A 시장의 큰 손으로 꼽히지만 올해 시장 매물을 대상으로 한 M&A시도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KDB생명 인수를 코앞에 뒀던 하나금융그룹이 단적인 예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말부터 약진하고 있다. 은행 수익으로는 리딩뱅크 자리를 꿰차기도 했고 올해도 KB금융그룹 뒤를 잇는 등 남다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가 최우선 과제였고, 하나금융은 적극적인 M&A의지를 드러내던 중 KDB생명 인수 의지를 드러냈고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보험 계열사들의 수익 기여도가 낮은 상황이기도 해 하나금융의 KDB생명 인수가 기정사실화되는가 싶었지만 실사까지 진행한 하나금융은 최종적으로 인수 의사를 철회한 바 있다.

이는 그룹 보험업 강화전략과 맞지 않다는 것이 하나금융 입장이었으나 KDB생명의 막대한 부채 등을 떠안아야 한다는 점에서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나금융은 롯데카드 인수 예비입찰에도 참여했지만 M&A는 무산됐다.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가 시급한 상황에서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하던 우리금융그룹은 인수비용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사진=연합뉴스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가 시급한 상황에서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하던 우리금융그룹은 인수비용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사진=연합뉴스

실적면에서 발등이 불이 떨어진 우리금융그룹의 M&A도 무위로 돌아갔다. 우리금융은 절대적으로 우리은행의 수익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다. 증권사도 없고 보험사도 없다. 이 때문에 임종룡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M&A를 통한 비은행 부문 확장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보험, 증권사 등 대형 M&A에 대해 의지를 보였던 우리금융은 올해 저축은행 상위권 업체인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했고 11월말까지 실사를 계속했지만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 우리금융은 삼일회계법인을 자문사로 선정, 실사 작업을 진행했는데 인수비용 견해차로 양측 입장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결국 인수 작업을 중단했다.

M&A 시장에서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우리금융은 기존 계획대로 증권사 인수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12일 우리종합금융은 서울 중구 소공로에 위치한 사옥을 떠나 증권사들이 모이는 여의도역 인근 입주 방안을 유력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한 임 회장 지시에 따른 것이란 후문이다. 이에 앞서서는 증권 계열사가 없음에도 투자정보 플랫폼 '원더링'을 출시하며 증권사 인수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만큼 내년 우리금융의 M&A 전략은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지주사들은 수천억원에서 수조원까지 실탄으로 쓸 수 있는 자금이 있기에 M&A시장 큰손으로 통하지만 유의미한 결과는 이루지 못했다. 그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금융당국 주도하에 추진되는 상생금융 압박과 건전성 관리를 꼽는다.

우선 수조원대 규모의 상생금융이 추진되는 상황이 금융권 M&A 관망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상생금융 수준이 2조원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데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이자 캐시백 형식으로 보면 5대은행별로만 2000억~4000억원 수준의 상생금융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은행연합회와의 구체적 방안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생금융에 투입되는 금액이 더 커질 수 있고, 추가적 비용지출이 불가피한 금융사들로서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금융사들에 대한 정부와 금융당국의 비판적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에서 M&A를 통한 비은행 부문 확장 역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것이란 우려도 존재한다.

또 금융권 전체로 번지고 있는 연체율 상승, 부실 위기 등이 M&A시장에 찬바람을 불게 했다. 이에 더해 각 업계가 품은 변수도 M&A를 주춤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증권사는 증시 상황에 따라 이익이 증감되는 구조라 리스크가 크고, 보험사는 올해 회계기준 변경 이슈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단순히 업종만 보고 인수절차에 뛰어들기보다는 자본 건전성과 수익을 고려하는 분위기다.

금융권에서는 내년에도 이같은 관망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경기 회복, 금리 인하 등 기대는 내년 후반기에나 실현될 것으로 전망되기에 올해 상·하반기로 추진됐던 상생금융이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금융사들의 자금출원이 또 이뤄질 수 있다.

늘어나는 가계부채와 연체율 상승으로 건전성 관리를 위한 금융사들의 충당금 적립이 역대 최대치라는 점도 자금 운용의 폭을 좁힐 수 있다.

이 가운데 내년 금융업권 M&A가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나이스신용평가사는 지난 7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가 현실화되면서 실적이 악화되는 회사가 M&A로 나올 것이라고 봤다. 보고서는 저축은행, 캐피탈사, 증권사 등 매물이 더욱 증가할 것이라면서 자금 체력이 우수한 은행금융그룹들이 M&A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증권사들의 부동산 PF부실이 심상치 않아 주목받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증권사 상반기 고정이하여신(NPL)은 3.7조원으로 지난해말에 비해 1.1조원 증가했다. 보수적으로 부동산금융 잠재부실가능 익스포져(1분기 기준)를 감안한다면 규모는 6조원이며, 고금리가 장기화될 시 30~50%가 최종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매물로 나오는 증권사들이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 경우 증권사 인수를 천명해왔던 우리금융으로선 급매물을 잡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만 대외적으로 불확실한 경영환경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기에 금융사들의 M&A는 보다 냉정한 업황 예측과 신중한 결정 하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변수들이 이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확고한 경영계획이나 투입자본 대비 향후 수익성, 부실한 금융사들의 경영정상화 비용 등을 모두 고려해 보다 철저하게 자본건전성과 수익성을 따질 필요가 있다"면서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는 금융사들의 목표지만 자금부담이 더해지는 상황이라 재무구조개선 및 비용부담에 있어 이사회와 주요 주주들의 개입도 강해졌고, 이에 따라 M&A전략에도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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